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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엘리자베스 키스, 폴 자클레의 ‘신부’ ‘그녀들의 삶에 평화가 깃들었기를’

기자명 손태호

혼례를 앞둔 그 신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서민에게 허용않던 색동 ‘녹원삼’…혼례에서 만큼은 허용돼
병풍 앞 체념한 신부 얼굴엔 혼례날 고달픔이 그대로 느껴져
외국 화가의 재치있는 표현으로 당시 시대 상황 읽을 수 있어

폴 자쿨레 ‘신부’.

얼마 전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보니 청첩장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요즘은 청첩장도 온라인으로 받곤 했는데 오랜만에 직접 봉투에 든 초대장을 받았습니다. 봉투를 열고 보니 사촌 누님 딸의 결혼청첩장이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올해는 청첩장도 별로 받아본 기억이 없습니다. 언론에서도 청년들이 코로나19 영향으로 결혼을 연기한다는 뉴스도 심심치 않게 보도되고 있고 힘들게 결혼식을 치룬다해도 가까운 친인척만 모여 단출하게 한다는 뉴스도 기억이 납니다. 오촌 조카가 어려운 시기에 결혼을 한다니 생각나는 그림이 있었습니다. 바로 ‘신부’라는 그림으로 두 명의 외국화가들의 서로 다른 두 점의 그림입니다. 

첫 번째 그림은 프랑스 화가 폴 자클레(Paul Jacoulet, 1896~1960)의 ‘신부’입니다. 혼인날 초례청에 나가기 전 신부가 대기하고 있는 모습인데 왼손을 입에 댄 채 새초롬한 표정으로 다소곳이 앉아 있습니다. 족두리와 한복의 화려한 색감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초야에 대한 설렘 때문인지 귓불과 얼굴에 살며시 홍조가 피어나고 오색 구슬로 장식된 족두리 화관과 오색 비단을 차례로 잇댄 활옷의 소매는 마치 치마폭처럼 넓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활옷은 소매에 붉은색·녹색· 노란색·분홍색·흰색 등 색동이 있는 ‘녹원삼’입니다. 녹원삼은 원래 공주, 옹주, 궁녀나 사대부 부녀자가 입었던 예복인데, 서민들도 혼례 때만은 녹원삼을 입되 금박은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신랑도 흉배가 있는 관복을 입었는데 이런 복식이 허용됐던 것은 조선시대에 그만큼 혼례가 인생에서 중요한 행사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혼례를 앞둔 신부의 약간 들뜬 모습과 그 앞에 있는 왕골바구니와 떡이 초례청에 나가기 전 대기실의 풍경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노리개와 자수는 가장 공들여 표현했는데 당시 화가가 한복의 화려한 색과 정교한 공예품에 얼마나 매혹됐는지 알 수 있습니다. 프랑스 태생 폴 자쿨레는 일본에서 교사를 한 아버지로 인해 어릴 적 어머니와 일본으로 건너와 자랐습니다. 그는 자라며 일본에서 서양화와 일본 판화를 공부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화풍에는 일본색이 강한 편입니다. 아버지가 사망한 후 어머니가 한국 경성제국대학 교수와 재혼해 한국에 머물자, 어머니를 만나러 다섯 차례 방문하며 한국의 곳곳을 다색판화로 남겼습니다. 그는 한국에 대한 따뜻한 그림을 남기고, 한국인을 양녀로 삼을 만큼 한국에 대한 애정이 높았습니다. 그러나 작품은 일본 판화의 영향이 강하여 우리가 감상하기에는 조금 낯설어 보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 그림은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Elizabeth Keith, 1887~1956)의 ‘신부’입니다. 엘리자베스 키스에 대해서는 ‘아기를 업은 여인’ 작품을 통해 한 번 소개했던 화가로, 일제강점기 시절 한국을 주제로 삼아 활발한 작품 활동을 전개했고 서양인으로서는 한국을 주제로 한국에서 최초의 전시회를 개최한 뛰어난 여성 화가입니다. 엘리자베스 키스는 ‘신부’를 주제로 두 점 그렸는데, 한 점은 그녀의 장기인 채색동판화이고 다른 한 점이 바로 이 수채화입니다. 이 작품도 앞선 폴 장쿨레 작품과 동일한 주제로 혼례식 신부의 모습입니다. 한국 전통의 이불과 화조화가 그려진 병풍 앞에 신부가 앉아 있습니다. 고개는 앞으로 살짝 숙였고 손은 앞으로 내려 색동소매가 앞으로 펼쳐져 있습니다. 복식은 폴 자쿨레 ‘신부’의 활옷과 동일한 녹원삼이고 족두리 화관도 동일합니다. 쪽 뒤에는 도투락댕기라 부르는 붉은 천이 길게 늘어져 있습니다. 얼굴 광대에는 붉은 연지를, 이마에는 곤지를 찍었는데 붉은 점을 얼굴에 찍는 이유는 귀신이 붉은 색을 무서워하기에 잡귀가 예쁜 신부 주변에 얼씬거리지 못한다는 오랜 믿음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예쁜 옷과 연지곤지를 찍었어도 가볍게 눈을 감고 있는 신부의 얼굴은 왠지 어두워 보입니다. 그늘이 진한쪽 얼굴과 왠지 축쳐져 보이는 어깨, 포즈에서 풍기는 뭔가 체념한 듯한 모습은 인생에서 가장 즐거워야 할 결혼식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엘리자베스 키스는 책에서 ‘신부’에 대해 이런 설명을 첨부하였습니다.
 

엘리자베스 키스. ‘신부’. 1938년. 채색동판. 24×37㎝. 개인.

“한국에서 제일 비극적인 존재! 한국의 신부는 결혼식 날 꼼짝 못하고 앉아서 보지도 먹지도 못한다. (중략) 얼굴에는 하얀 분칠을 하고 뺨 양쪽과 이마에는 빨간 점을 찍었다. 잔치가 벌어져 모든 사람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기지만 신부는 자기 앞의 큰상에 놓인 온갖 먹음직한 음식을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된다. (중략) 하루 종일 신부는 안방에 앉아서 마치 그림자처럼 눈 감은 채 아무 말 없이 모든 칭찬과 품평을 견뎌내야 한다. 신부의 어머니도 손님들 접대하느라고 잔치 음식을 즐길 틈도 없이 지낸다. 반면에 신랑은 다른 별채에서 온종일 친구들과 즐겁게 먹고 마시며 논다.”  (엘리자베스 키스 ‘Old Korea’ 中)

엘리자베스 키스는 혼례날 신부의 고달픔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우울한 신부를 그린 것일까요? 하지만 신부의 고달픔은 혼례 날로 끝나지 않습니다. 조선후기 이후 여성에게 결혼이란 조상의 제사를 받들고 시부모를 섬기고 아들을 낳아 대를 잇게 하며 생활을 책임져야하는 무시무시한 시집살이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시집살이'는 공주나 귀족 같은 특별한 몇몇을 제외하곤 피할 수 없는 시련이었습니다. ‘시집살이’의 제일가는 고통은 터무니없이 강한 높은 노동에 있습니다. ‘소를 잃으면 며느리를 얻으라' 는 말처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온갖 집안 노동에 매달려야 했습니다. 이런 노동에 힘겨워 조금이라도 소홀해지면 쫓겨나고, 참고 버티다 병이 나고 괴로워하다 스스로 목숨까지 끊는 일까지도 빈번하였습니다. 엘리자베스 키스는 이런 신부의 암울한 미래까지도 표현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나라 미래의 가장 큰 문제는 결혼인구 감소와 출산율 저하라고 합니다. 이능화는 ‘조선여속고’에서 조선은 아무리 가난해도 결혼은 중요한 사속관념이라 하였지만 이는 전부 옛말에 불과합니다. 결혼과 출산은 본인의 선택이고 자유이며 설령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도 한 인간으로서 이미 완전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날아오는 청첩장이 반가운 이유는 그래도 결혼이 더욱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 두 외국 화가들 앞에 선 신부들의 삶에도 평화와 행복이 깃들었기를 기도합니다.  

손태호 동양미술작가, 인더스투어 대표 thson68@hanmail.net

 

[1559호 / 2020년 11월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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