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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마을 대표이사 원상 스님

“사회적 약자 위한 ‘연꽃마을 100년 기틀’ 굳건히 세울 터”

법정·향봉·다운 스님 글서
산사풍경·구도열정 감동

출가언급 ‘칼’ 꺼낸 어머니
길떠나기 전 ‘자경문’ 건네

“소박한 나눔이 위업 달성”
각현 스님 뜻 길이 전해야

덕산공원·사옥 자리한
용인은 연꽃마을의 심장

중·장기 계획 수립해
하나씩 차분히 실현

​​​​​​​고독·구도·자유 담은 걸망
“내겐 여전히 아름다워”

“돈이든 명예든 ‘내 손에 쥐겠다’고 한 순간, 그것을 직감한 대중은 그 지도자를 따르지 않는다”고 강조한 원상 스님은 “그 누구보다 대표이사인 저 스스로에게 더욱 더 엄중히 적용하겠다”고 했다.

‘청, 홍, 백련화가 물에서 나서 물에서 자라지만 물에 젖지 않는 것과 같이, 여래는 세간에서 나고 세간에서 성장하지만 세간 법에 물들지 않는다.’(‘아함경, 청백련화유경’) 

진흙 속에 몸담고 있지만 결코 물들지 않는 연꽃은 정화, 청정, 불성, 해탈, 부처, 여래 등을 함의하며 초기·대승 경전 곳곳에서 피어났다. 그 깊은 뜻 전하려 부도, 석비, 석등, 석련지, 당간지주에도 새겨넣었다. 가만 보면 전각 기둥의 주춧돌에서도 환하게 웃고 있다.

이 땅에 자비사상을 구현하고 ‘효(孝)의 사회화’를 전개하며 불교 사회복지계의 새 지평을 연 덕산 각현(德山 覺賢) 스님이 우리에게 내보인 것도 ‘연꽃’이었다. 생전에 선보인 수상집 ‘원력이 있는 곳에 가피가 따른다’의 한 대목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부처님을 신봉하는 목적은 참다운 인간을 완성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가장 좋은 사회, 즉 극락세계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 소승은 지난 6년여에 걸친 법주사 청동미륵대불 대작불사를 회향하면서 진정한 미륵부처님 세계는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이 사바의 현실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천되어져 처처마다 불은(佛恩)이 가득한 세계여야 가능하리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이 곧 ‘마을마다 연꽃마을 마음마다 연꽃마음’이라는 슬로건을 앞세우고 노인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우리 연꽃마을의 근본 취지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품고 있는 청정심을 명료하게 인식·체득하기를 바랐고, 그 마음에서 솟는 나눔과 배려가 우리 사회에 넘실거리기를 원했음이다. 

각현 스님의 혜안과 통찰로 세워진 사회복지법인 ‘연꽃마을’은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았다. 현재 노인요양·아동복지·장애인 시설 등과 복지관·복지센터를 포함 한 60여개의 산하시설을 진두지휘하고 있으며 직원만도 2400여명이다. 한 해 예산만도 1000억원이다. 베트남 쾅남성 땀끼시로부터 6만6000여㎡(2만여평)의 부지를 기증받아 ‘사단법인 국제연꽃마을’도 설립했다. 불교사회복지 성공모델로 인정 받은 지는 이미 오래고, 처음에도 그러했듯 지금도 매년 상위 5%안에 드는 우수기관으로 선정되고 있다. 이제 새로운 비전을 토대로 또 한 번 비약할 때인데 그 선두에 원상 스님이 섰다.

원상 스님의 에세이 ‘토굴가’.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지만 고등학교 졸업 한 해 전 독서에 흠뻑 빠졌다. 하루에 한 권의 책을 독파해 갔을 정도다. 그 때 법정, 향봉, 정다운 스님의 글을 만났다. 행간에 깃든 수행자들의 구도심이 청년을 크게 흔들었다. 걸망 하나 지고 자유롭게 길 떠나는 스님의 뒷모습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 보였다. 원상 스님은 에세이 ‘토굴가’를 통해 걸망에 대한 단상을 전한 바 있다.

‘밀짚모자에 걸망 하나 지고 길 위에 서 있는 사람, 작은 것에 안주하지 않고 홀로 길을 찾아 떠나는 사람, 고독하지만 다가가 젖고 싶은 새벽안개처럼 신비스러운 자태, 그 시절, 나에게 아름다움이란 말없이 서 있는 수행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어머니 앞에 앉았다. 

“출가하겠습니다.”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의외였다. 기도일이면 절에 가 동참금 꼬박 내고, 그도 성에 안 차면 아들들 데려가 기왓장 나르게 하셨던 어머니 아니었던가. 자리에서 일어선 어머니는 무엇인가 가져와서는 탁자 앞에 내리꽂았다. 집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예리한 날이 서 있는 칼이었다.

“나 죽이고 가라!”

그렇게 큰 역정을 낸 어머니는 처음 보았다. 물러서야 했다. 두 달여가 지난 후 어머니 앞에 다시 앉았다.

“출가하겠습니다.” 

무거운 침묵이 또 내려앉았다. 다행이도 그 침묵은 묵인을 의미하고 있었다. 길 떠나기 전날 저녁 어머니는 기름 때 묻은 책 한 권을 건넸다. 통도사본 ‘초발심자경문’이었다.

“절에 가면 필요할 것이다.”

서울을 떠난 걸음이 속리산 법주사에 닿은 건 하얀 눈 내리는 저녁 무렵이었다. 가사 장삼 수한 스님들이 어디선가 나오더니 법당으로 향했다. 종각 한 귀퉁이에 앉아 태어나 처음으로 저녁예불 풍경을 바라보았다. 법고 소리 잦아들더니 범종이 울렸다. 그 정취 ‘토굴가’에 오롯이 담겨 있다.

‘가슴 높이 올라온 당목은 한 키 넘는 범종을 망설임 없이 달려들어 쿵! 내리칩니다. 종소리는 온갖 숙연으로 싸맨 세속의 응어리를 풀어헤치듯 시원하고 경쾌하게 사방에 퍼져 울립니다.’

행자 신분으로 처음 새벽예불을 올리고는 이렇게 되뇌었다.

‘나, 여기 오길 참 잘 했다.’

은사는 각현 스님과 맺어졌다.(1986) 

법주사 강원을 졸업한 후 마곡사, 통도사, 송광사, 봉암사, 대승사 등의 선원에 방부를 들이며 33안거를 성만했다. 기억에 남는 도량을 청하니 덕숭산 정혜사, 지리산 화엄사, 가야산 해인사를 꼽았다. 그 중 덕숭산에서 있었던 일화 한 토막을 들려주었다. 

“시월 보름 동안거 결제 당일이었습니다.”

수덕사는 본사 중 유일하게 저녁에 결제식을 갖는다. 

“저를 포함한 정혜사 대중들은 저녁 공양 마치고 함박눈 내리는 산길을 내려갔습니다. 여기저기서 ‘아이쿠’하며 자빠지고 엎어지면서도 호탕한 웃음을 나누었습니다. 큰 절에 도착한 저는 잠시 대웅전이 바라보이는 왼쪽의 요사채 처마 밑에서 눈을 피해 서 있었습니다. 수덕사 말사 스님들이 속속 도착해 법당으로 들어섭니다. 문득 가슴 벅찬 환희심이 일었습니다. 눈 밝은 스님들과 함께 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모든 게 성취된 것 같았습니다.”

만공 스님은 정혜사 능인선원 바로 아래에 금선대(金仙臺)를 짓고 사자후를 토하며 후학들을 지도했다. 이 암자에서 정진한 원상 스님이고 보면 덕숭산과의 인연이 유독 깊다. 

가부좌 트는 동안 만큼은 행정 소임을 맡지 않으려 애썼다. 법장·지관 스님 집행부에서 국장 소임을 권했지만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주사 산내 암자인 미룡당에 머물 때다. 세납으로는 30대였다. 큰 절에서 교무국장 소임을 맡아달라고 했는데 “능력 없는 사람이라 죄송하다”며 사양했다. 급기야 각현 스님이 올라와 한마디 했다. 

“중이 그만큼 절밥을 먹었으면 밥값을 해야지.”
“제가 밥은 먹어도 쪼매씩밖에 안 먹었습니다.”

기가 찬 각현 스님은 제자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날, 처음으로 은사스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살아오면서 두 가지 판단만은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젊은 날 출가한 것이고, 둘째는 수좌가 된 것입니다.’ 그러자 은사스님께서 이르셨습니다. ‘그러면 제대로, 열심히 해 보라!’ 그 말씀에 저는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습니다.”

누군가 제자를 핀잔하기라도 하면 그 자리서 “당신들이 무얼 안다고! 나도 가만있는데, 말하지들 마세요”라며 따끔하게 질책했던 은사스님이다.

“제가 해달라는 건 다 해주신 은사스님입니다. 반면 은사스님께서 하라는 건 하나도 하지 않았던 저입니다. 이제야 ‘그 하나’를 받듭니다.” 

불교 사회복지계의 새 지평을 연 각현 스님의 사리를 봉안한 연꽃탑.

원상 스님은 2019년 3월 연꽃마을 4대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그해 11월 각현 스님의 사리를 봉안한 연꽃탑 제막식을 봉행했다. 석공예분야 인간문화재 김옥수 명장이 심혈을 기울여 황동석을 깎았다.

“은사스님의 원력과 사상이 지금의 연꽃마을을 조성했고, 연꽃마을 대중들이 이 탑을 조성했습니다. 이 탑이 존속하는 한 연꽃마을은 중생과 사회적 약자를 위해 살고지고 할 것입니다.”

각현 스님의 업적을 기억하고 부처님의 자비사상을 실천하겠다는 약속의 다름 아니다. 

덕산공원에 들어선 연꽃마을 법인 사옥.

원상 스님은 연꽃마을의 숙원사업인 사옥도 마련했다. 법인 사무처와 법당 겸 교육관인 연화사, 각현 스님 기념관으로 구성됐다. 11월19일 법인 사옥 준공식이 봉행된다. 이날 의미 깊은 행사 하나가 더해진다. 

“연꽃탑과 사옥을 중심으로 한 공간을 정비하고 있습니다. 이 일대를 ‘덕산공원’으로 명명하고 각현 대종사님께 헌정할 것입니다. 형편 닿는 대로 공원 부지를 더 확보할 계획입니다. 은사스님께서 ‘원력이 있는 곳에 가피가 따른다’고 한 말씀이 아직도 귓전을 울립니다. ‘내가 베푼 작은 사랑 때문에, 내가 만든 작은 시설 때문에, 누군가 행복할 수 있다면 나는 하고 싶은 일을 가슴에 안고 업파(業波)에 넘실대며 살겠습니다.’ 덕산공원은 각현 스님이 평생에 걸쳐 품었던 그 뜻을 기억하고 되새기는 생생한 현장이 될 것입니다.”

불교계 최초 무료양로원인 연꽃마을 용인노인요양원.

그러고 보니 덕산공원 주변에는 경기도 용인시 1호(노인복지시설)이자 불교계 최초의 무료양로원인 ‘연꽃마을 용인무료양로원(현 용인노인요양원)’이 들어서 있다. 이 양로원을 짓기 위해 각현 스님은 인연 닿는 사찰과 불자들을 만나 ‘매월 1000원 후원’을 호소했다. 놀랍게도 3년 만에 2만5000여명의 후원자가 운집했고, 그 힘으로 무료양로원을 세웠다. 각현 스님의 원력이 빚어낸 첫 결실이자, 소박한 나눔이 위대한 업적을 이룰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었다. 바로 위에는 10년 전에 들어선 ‘용인노인전문요양원’이 있다.

“여기는 각현 스님의 원력이 깃든 공간이자 연꽃마을이 처음으로 뿌리를 내린 땅입니다. 여기서 연꽃마을의 중흥을 도모하고자 합니다. 지난 30년을 기억하고 새로운 30년을 그리려 합니다. 나아가 ‘연꽃마을 100년의 기틀’을 확립할 것입니다.”

이곳이 연꽃마을의 심장이 될 것이란 뜻이다. 그 꿈을 실현해 가는데 있어 스스로 다짐한 게 있다고 했다.

“지난 삶을 반추해 얻은 게 하나 있습니다. 수행할 때는 무엇이든 내려놓고 비우는 게 우선이라는 사실입니다. 돈이든 명예든 ‘내 손에 쥐겠다’고 한 순간, 그것을 직감한 대중은 그 지도자를 따르지 않습니다. 그 누구보다 대표이사인 저 스스로에게 더욱 더 엄중히 적용하겠습니다. 법인 직원과 시설장님, 자원봉사자분들의 말씀을 경청해  중·장기 계획들을 차분하게 계획하고 하나씩 하나씩 실현해 가겠습니다.”

출가한지 제법 세월이 흘렀다. 방 한편에 놓인 걸망이 어찌 보이는지 여쭈어보았다. 

“제게 걸망은 여전히 아름다움 자체입니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길을 걸었던 원상 스님이 있는 한 불교복지를 향한 열정과 도전·개척정신은 끊임없이 지속될 게 분명하다.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원상 스님은
속리산 법주사에서 덕산당 각현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1986) 법주사 승가대학 사교과를 졸업(1990)하고 해인사, 화엄사, 법주사, 정혜사, 봉암사, 대승사 등 선원에서 33안거를 성만했다. 천안 은석사, 대구 정법사, 단양 미륵대흥사 주지를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연꽃마을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에세이 ‘토굴가’가 있다.

 

[1560호 / 2020년 11월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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