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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극락왕생’ - 상

기자명 유응오

삶의 현실 오롯이 드러낸 판타지

대한민국 콘텐츠대상 수상작
관음보살 등 불교인물 등장
소박한 멋 돋보이는 그림체
간명한 서사에 훈훈한 감동

2019년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인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한 고사리박사의 ‘극락왕생(極樂往生)’은 장르는 판타지이지만 우리 사회 현실과 삶의 희로애락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웹툰은 비가 오는 날마다 합정역에서 당산역으로 가는 지하철 2호선에 귀신이 나타나면서 시작된다. ‘당산역 귀신’은 자신을 보는 인간에게 다가가 ‘낭만 고양이’를 불러달라고 할 뿐 이렇다 할 해코지는 않는다. 당산역 귀신의 소식을 듣고서 지옥을 관장하는 지장보살을 협시하는 도명존자가 무작정 인간세계로 향한다. 당산역 귀신을 지옥으로 끌고 가기 위해서이다. 도명존자에게 귀신은 육도윤회를 거부하는 죄인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당산역 귀신을 끌고 가려는 순간, 도명존자는 관음보살을 친견하게 된다. 관음보살이 도명존자에게 “우리는 여기 당산역 귀신, 박자언에게 한 해의 시간을 다시 주려고 합니다. 스물여섯 해의 인생 중에서도 그에게 가장 중요한 한 해를 다시 살게 해주겠습니다. 도명은 그 한 해 동안 박자언의 보리심이 피어나도록 도우면서 한 해가 끝나는 날 박자언을 극락왕생 시키십시오”라고 지시한다.

하여 박자언은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한 해인 고등학교 3학년 때로 돌아가고, 이런 박자언을 돕기 위해 도명존자는 인간세계에 머물게 된다. 박자언과 도명존자는 인간계와 귀신계는 물론이고 극락과 지옥을 넘나들며 자신들 앞에 펼쳐지는 기이한 사건들을 해결해간다.

이 작품의 최고 미덕은 순수함이다. 그렇다고 해서 박자언의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이 순수했다는 것은 아니다. 박자언이 돌아보건대,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지독하게 끓는 변덕’과 ‘원인을 알 수 없는 사소한 마찰에 끝없이 서로를 소모시키던 기억’으로 인해 ‘하루하루가 작은 신경전의 연속’이었고, ‘서랍 한 칸만 한 교실 안에 아침부터 밤까지 꼼짝 없이 갇혀 서로를 미치게 만들던’ 나날이었다. 박자언에게 가장 중요한 한 해는 극락이 아닌 지옥도의 풍경에 가까운 것이다. 그런데 박자언은 이 지옥 같은 일상에서 기이한 일들을 겪으면서 자비심을 깨닫게 된다.

박자언은 노름귀들과 내기를 한다. 박자언이 노름귀들이 숨긴 물건을 10분 내에 찾을 경우 노름귀들은 박자언의 소원을 들어줘야 하며, 반대로 찾지 못할 경우 박자언이 노름귀들의 소원을 들어줘야 하는 것이다. 박자언이 이런 내기를 하는 이유는 계단에 넘어져 무릎이 찢어지는 재경의 사고를 막는 동시에 노름귀들이 지옥으로 끌려가는 것도 막기 위해서이다.

내기에서 이긴 박자언은 노름귀들에게 “앞으로 또 내기를 하더라도 사람을 괴롭히지 말라”고 한다. 박자언은 인간들도 좋고 귀신들도 좋은 ‘윈-윈(win-win)’ 전략을 짠 것이다.

노름귀들과의 내기에서 이기고 돌아온 박자언에게 친구들은 생일 케이크를 선물한다. 생일이 겨울방학 기간 중이어서 속상해 하는 박자언을 위해 친구들이 일부러 생일파티를 준비한 것이다. 생일파티를 하면서 박자언은 ‘좋다가도 밉고, 한없이 얄미웠다가 세상에서 제일 정다웠다가, 뜨겁다가 차갑다가, 마음만 먹으면 돌아설 수 있을 것처럼 혹독해놓고 정작 헤어질 날엔 다시없을 반전인 양 비통해하고, 잠을 설치고, 또 미워하고, 잠시는 그립고, 그래도 그러지 말 걸 후회하는’ 게 우리 삶의 인연사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이런 박자언을 보면서 도명존자는 ‘아무리 윤회전생 속에 미욱해 빠진 존재라도 긍휼히 여기는 그 마음’을 지녔기에 ‘관음보살님께서 극락왕생할 기회를 다시 주셨음’을 알게 된다.

‘극락왕생’은 그림체도 애써 멋을 부리지 않아 소박한 멋이 있고, 서사도 간명한 가운데 훈훈한 감동을 준다.

유응오 소설가 arche442@hanmail.net

 

[1562호 / 2020년 11월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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