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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살리는 종교

전염병의 기세가 오래도록 꺾이지 않고 점점 심해져 간다. 그로 인해 겪게 되는 직접 간접적인 고통이 세상을 무겁게 덮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은 종교에서 위안과 안식을 찾고 삶의 희망을 얻고자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종교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실망을 넘어 절망을 느낄 정도로 한심하다. 사회적 고통을 키우기도 하고 고통에 눈감기도 한다. 사람들이 겪는 현실의 고통에 대해서 참된 종교라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것일까.

최근 개신교의 선각자들이 기독교의 절망을 통감하고 적나라하게 교계의 현실을 비판함과 동시에 스스로 잘못을 고백하면서 획기적인 개혁의 길을 가겠다는 ‘다시 희망’을 선언했다. 20개 항에 달하는 개혁의 방향을 살펴보면 “교회 건물을 줄여 사회적 약자를 구제하라” “상속유산의 십일조를 공유경제에 기부한다” “교단 운영에서 남녀의 차별 및 직급 간 차별을 없앤다”와 같은 파격적인 내용들로 가득 차 있다. 사회적 고통에 눈감지 않고 적극적으로 동참해 해결해 나가겠다는 자기희생적 구체적 결단들이 큰 감동을 주면서 그런 기독교에 다시 희망과 기대를 갖게 한다.

“중생이 아프니까 내가 아프다” “한 중생이라도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홀로 고통을 떠나지 않겠다”고 말하는 불교는 오늘의 한국사회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위기도 절망도 느끼지 못하고 어떤 변화와 개혁도 모색하지 않는 불감증과 무기력증에 빠진 것은 아닌가? 고통에 대한 실존적 자각과 그것의 해결을 정면에서 추구하는 것이 불교의 근간이 아니던가? 전염병이 유행하는 세속과 단절한 채 현실의 고통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침묵한다면 그런 불교를 누가 찾을까? 적어도 무엇이라도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예를 들어 비어 있는 요사채와 템플 스테이 공간 등을 코로나 환자들을 치유하는 공간으로 개방하고 필요하고 가능한 서비스와 봉사를 제공한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자원봉사자를 하겠다고 줄을 설 것이고 그런 불교에 다시 희망을 가지리라고 생각한다. 춘원 이광수는 소설 ‘원효대사’에서 배고픈 아이에게 젖을 주며 하는 “젖 먹으라”는 따뜻한 소리가 ‘법화경’을 읽는 독경소리보다 더 우렁차게 가슴을 때린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사람을 살게 하는 구체적 실천이야말로 종교의 사회적 기능이자 역할이 아닐까.

위나라의 백규는 시장에 물건이 넘쳐날 때는 다른 사람보다 높은 가격에 그것을 사들이고 시장에 물건이 귀해졌을 때는 오히려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판매하여 사람들의 필요에 맞추어 주었다. 백규의 이러한 장사방법은 상품의 수요공급과 가격을 알맞게 조절함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어려움에서 구했다. 그러한 장사방식은 사람을 살리는 인술이었고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장사의 성인이라 불렀다. 장사를 이윤만 남기기보다는 사람을 남기는 것이라 알고 실천하는 사람이 있고 장사를 사람을 살리는 방도로써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사람이 있다. 하물며 사람을 구원한다는 구호를 내건 종교가 고통 받는 사람을 외면하고 거짓과 위선의 벽 속에 숨는 것은 도리가 아닐 것이다.

현실과는 다른 이상세계를 추구하는 것이 종교의 본령이라 할지라도 그 세계가 현실과 단절되거나 현실과 무관하게 존재할 수는 없다. 참된 이상은 현실로부터 출발하고 현실에 되돌려 현실에서 구현되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것은 이상이 아니라 몽상이나 공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는 현실에서 살아남을 수도 없다. 최근 한국의 종교는 점점 더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다. 종교가 자신의 본령에 충실하지 못하고 타락한데다 텅 빈 권위의 껍데기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실을 외면하고 현실의 문제들에 대해서 적절한 대응을 못하거나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대한 진솔한 참회와 반성을 토대로 힘든 사람들에게 안식처가 되어주고 평화와 위안을 주며 희망으로 사람을 살리는 종교로 다시 태어나기를 촉구한다.

정영근 서울과학기술대 명예교수 yunjai@seoultech.ac.kr

 

[1563호 / 2020년 12월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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