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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김홍도 ‘절로도해’

기자명 손태호

달마대사의 선, 바다 건너 조선으로 전해지다

신비롭고 탈속한 인물 등장하는 단원의 도석인물화 중 대표작
신심 깊던 단원, 양자강을 바다·승려를 조선 스님으로 바꿔
달마대사 이후 성행한 선불교가 조선까지 전해진 것 보여준 듯

김홍도 作 ‘절로도해’, 지본담채, 105×558.3cm, 간송미술관.
김홍도 作 ‘절로도해’, 지본담채, 105×558.3cm, 간송미술관.

지난달 코로나19가 조금 잠잠해졌을 때 전라남도로 ‘예술기행’을 다녀왔습니다. 해남 대흥사, 무위사 등 여러 고찰을 돌아보는 즐거움도 컸지만 강진만 생태공원에서 만난 풍경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강진만의 안쪽 깊은 곳까지 들어온 바닷물과 그 물에 부서지는 햇빛, 창공에서 군무를 뽐내는 철새들, 끝도 없이 펼쳐진 갈대밭 등 실내생활에 지친 여행객에 말할 수 없는 시원함을 전해주었습니다. 현대 도시인에게 가장 좋은 위로는 자연임을 다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참 동안 갈대밭을 걷다 보니 갈대와 관련된 그림이 여러 점 생각났습니다. 그중에서 오늘은 조선시대 불세출의 화가 단원 김홍도의 작품 ‘절로도해(折蘆渡海)’를 감상해보고자 합니다.

스님으로 보이는 인물 한 명이 갈대를 밟고 서 있습니다. 스님은 정면 아래를 지그시 응시하면서 깊은 생각에 잠긴 표정이고 양손은 옷 속에서 맞잡고 있는 모습입니다. 복장은 안쪽에 흰색 내의가 보이고 바깥쪽 가사는 굵은 선으로 힘있게 그렸습니다. 체구에 비해 옷이 다소 커 몸의 굴곡이 전혀 드러나지 않습니다. 스님은 허리를 둘러싼 요의(腰衣)를 착용하고 있습니다. 김홍도는 풍속화의 인물에는 요의를 전혀 그리지 않았으나 신선들의 그림인 ‘군선도’ ‘신선도’ ‘선동취적’ 등 신비롭고 탈속한 인물이 등장하는 ‘도석인물화’에서만 요의를 표현했습니다. 

허리 뒤에는 물주머니로 보이는 물건이 있어 이 인물이 수행자임을 분명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인물의 자세는 가만히 서 있지만 옷자락에 바람이 느껴져 어디론가 이동하는 모습입니다. 스님이 밟고 있는 갈대의 중심 줄기는 선 하나만 사용하여 그렸지만, 옆으로 뻗은 잎은 두 선을 이용해 갈대 잎의 특징을 정확히 그렸습니다. 발 앞쪽으로는 무심히 찍은 점만으로 수북한 갈대꽃을 표현했습니다. 진한 먹의 갈대꽃이 하단 좌측에 있으니 머리 뒤쪽으로 화제와 낙관을 배치했는데 이는 단원 특유의 대각구도법을 사용해 균형을 맞춘 것입니다. 

먼저 ‘기우유자(驥牛游子)’라는 유인을 찍은 후 ‘折蘆渡海(절로도해)-갈대를 꺾어 타고 바다를 건너다’라고 제목을 적었습니다. 그리고 단원이라 서명 후 ‘만래권농역일관(晩來勸農亦一官)’ 인장을 찍었습니다. 이 인장들은 뜻으로 보아 연풍현감 이후 사용했던 인감들로 여겨져 이 작품은 50대 완숙기의 작품으로 추정됩니다.

그렇다면 ‘절로도해’는 어떤 의미의 그림일까요? 우리 불자들은 대부분 아시겠지만 이 장면은 달마대사가 양나라 무제를 만난 후 낙양 소림사로 가기 위해 양자강을 건너가는 장면입니다. 이때 달마대사는 꺾은 몇 개의 갈댓잎을 타고 건넜다고 전해집니다. 이는 달마대사의 신통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려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당시 남조시대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 이야기가 기록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한참 뒤 고려시대 ‘조당집(祖堂集)’(952년)에 “몰래 강북으로 건너갔다(潛廻江北)”는 기록입니다. 

그 후 ‘석씨통감’(1070)에서 이 부분을 “갈대를 부러뜨리며 강을 건넜다(折蘆渡江)”고 문학적으로 변형시켰습니다. 그 뒤 송나라 ‘조정사원’에서 “갈대를 타고 강을 건넜다(僧蘆而渡江)”고 내용이 바뀌더니, 드디어 명나라 영락제 때 ‘신승전(神僧傳)’ 중 ‘달마전(達磨傳)’에서 “갈대 한 가지를 꺾어 강을 건넜다(折蘆一枝渡江)”고 확정해 버렸습니다. 처음과는 뜻이 완전히 바뀐 것입니다. 이런 변형은 모두 황제 앞에서도 당당했던 달마대사의 곧은 자세와 높은 도력을 칭송하면서 나타난 과장입니다. 

그 뒤 화가들은 이 이야기에 따라 갈대를 밟고 강을 건너는 달마대사의 모습을 많이 그려냅니다. 조선시대 심사정, 김홍도, 조석진 등에서 근대화가 김은호까지 갈대를 타고 강을 건너는 장면을 화폭에 남겼습니다. 그 중 김홍도는 강에서 슬쩍 바다로 바꾸고 승려의 모습도 조선 승려의 모습으로 바꿔 그렸습니다. 김홍도는 왜 강을 바다로 바꿨을까요? 신심이 돈독한 불자였던 김홍도가 원래 이야기를 몰랐을 리 없습니다. 단원은 달마대사가 양자강을 건너 강북으로 간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동쪽 바다를 건너 조선으로 넘어온 것으로 의미를 확장한 것입니다. 김홍도는 달마대사 이후 성행한 선불교가 조선까지 전해진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갈대는 조선시대 회화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소재입니다. 갈대(蘆)를 게(蟹)와 함께 그린 그림을 전려(傳臚)라 하였는데, 이는 과거에 급제하면 임금이 내려주는 음식인 전려(傳臚)와 중국어 독음이 같기에 장원급제를 바라는 그림입니다. 또 갈대밭에 기러기가 함께 있는 그림을 노안도(蘆雁圖)라 부르는데 이는 발음이 동일한 노안(老安)과 같은 의미로 여겨 노후의 안락함을 기원하는 그림으로 많이 그려졌습니다.

갈대는 경전에 등장할 만큼 불교와 인연이 깊은 식물입니다. ‘본생경’에는 부처님이 코살라국을 유행하던 중 비구들이 갈대를 꺾어 바늘통을 만들고자 하였으나 갈대의 속이 비어 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한 비구가 “부처님, 어찌하여 갈대 속이 비었습니까?” 묻자 부처님은 전생에 원숭이 왕이었던 시절 연못가에 살던 나찰귀신으로부터 원숭이들을 보호하고자 갈대의 속을 비워 멀리서 물을 마시게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또 ‘잡아함경(雜阿含經)’에는 갈대의 경전, 즉 ‘노경(蘆經)’이 따로 있는데 이 경전은 특이하게도 세존의 설법이 아닌 제자 사라불 존자가 묻고 마하구치라 존자가 대답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연기법을 설명하는 유명한 이야기인 ‘갈대의 비유’가 나옵니다. 

달마대사가 바다를 건너 조선으로 넘어왔다는 절로도해. 달마는 왜 동쪽으로 갔을까요? 원래 고향이었던 천축에서 중국으로 온 이유와 동일한 이유일까요? 단원 김홍도는 그 답을 이렇게 그림으로 남겼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답을 보여주시겠습니까?

손태호 동양미술작가, 인더스투어 대표 thson68@hanmail.net

 

[1563호 / 2020년 12월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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