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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한 만감(歲寒 滿感)

기자명 효탄 스님
  • 법보시론
  • 입력 2020.12.21 13:13
  • 수정 2020.12.21 17:42
  • 호수 1566
  • 댓글 0

예년보다 따뜻하다 싶더니 첫눈이 온 뒤 포근한 행복에 젖을 틈도 없이 영하 10도를 밑도는 매서운 추위가 이어지고 있다. 겨울 날씨야 이렇게 코끝이 찡하고 손끝이 아릴 정도의 추위가 되어야 그 맛이 나는 것이 아닌가! 상대적으로 무더위에 약한 나는 여름보다는 그렇게 맵싸한 추운 겨울이 좋다. 그러나 올해 코로나19 사태는 그 추위 못지않게 우리에게 공포심 가득한 겨울을 보내게 하고 있다. 우리나라 하루 확진자가 1000명을 넘어섰고 미국 등 유럽의 뉴스는 연일 눈을 휘둥그러지게 하고 있다. 여름이 되면 주춤할거라든지 겨울이 되면 나이질거라든지 그런 막연한 추측은 빗나간지 오래이고 코로나19는 연일 기록을 갱신하며 맹위를 떨치고 있다. 오직 백신접종을 고대하고 있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문득 완당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가 떠오르는 아침이다. 세한도는 국보 제180호 수묵화로, 조선 말기를 풍미했던 김정희의 문인화 이념의 최고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것은 제자인 이상적의 변함없는 의리를 추워진 뒤에도 푸른 소나무와 잣나무의 지조에 비유해 제주도 유배지에서 그려준 것이다. 단색의 수묵과 마른 필획만으로 이루어졌으며, 소재와 구도도 지극히 간략하게 다루어졌으나 이와 같이 극도로 생략되고 절제된 화면은 작가의 농축된 내면세계의 문기와 서화일치의 극치를 보여준다. 우리는 세한도 앞에서 코로나19 앞에 선 벌거벗은 인간의 민낯을 바라본다.

그동안 우리는 얼마나 분주하게 나부대며 내 욕망대로 살아왔는가.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고 인류는 이 지구상의 가장 독보적인 존재로, 무소불위의 존재로 ‘과학만능’ 만을 믿고 밀어붙이며 살아왔다. 소욕지족(小欲知足)을 비웃으며 우리는 역으로 대유만족(大裕滿足)을 추구하고 내달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모든 것은 인과응보의 법칙에서 조금도 벗어남이 없다. 그 결과 하늘 길이 끊기고 땅의 길도 끊기고 인간의 길마저도 끊기고 있다. 그나마 SNS 등 인터넷으로 소통하며 그 답답함을 벗어나려 하고 백신에 대한 기대도 적지 않지만 그 인내가 얼마나 갈지 의문이다.
거의 1년 전에 읽었던 정유정의 장편 소설 ‘28’이 생각났다. 정유정은 2007년 제1회 청소년문학상과 제5회 세계문학상을 받은 재능있는 여성소설가이다. 코로나19는 2019년 중국 우한에서 발생하였는데 소설 ‘28’은 2013년에 씌여졌다.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병이 소재인 소설 ‘28’은 ‘불볕’이라는 뜻의 ‘화양’이라는 가상 도시에 정체불명의 바이러스 전염병이 발생하면서 벌어지는 28일간 생존의 사투를 그린 작품이다. 작가의 선견지명도 놀랍지만 작품 안 묘사도 가히 공포 그 자체이다. 그러나 이러한 재난 역시 분명히 인과가 있는 것이다.

인과응보는 언제 어디서나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인과응보에 대한 개념을 좀 더 정직하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처방을 찾아야 하는데, 근본적인 대책과 논의보다는 현상 속에 급급하고 허둥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코로나19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우선은 멈추고 쉬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동안 모두 빨리, 많이를 추구하였으나 이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잘 쉬는 것인가라는 역설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부처님은 “우주는 자비의 구조”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우주는 인류에게 무엇을 자비롭게 베풀고 있는가?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일까? 무엇을 깨우쳐주려 하고 있는 것일까? 인간은 우주의 주인공이고 우주의 중심이 인간이라는 것은 인간우선, 인간위주가 아닌 ‘인간 향상’이 중심이라는 이야기이다. 우주는 인간 향상을 통해 진리를 구현하는 쪽으로 큰 흐름을 이루고 있다. 이번의 사태를 통하여 어떤 인간 향상을 가져올 것인가? 아니면 ‘인간 퇴행’을 가져올 것인가. 그 미래는 온전히 우리에게 달려있다. 세모에 세한도에서 부는 맵싸한 겨울 찬바람을 앞에 두고 ‘인간 향상’을 가져오는 미래가 되기를 결연한 각오를 가지고 간절히 기도해 마지 않는다.

효탄 스님 조계종 성보문화재위원 hyotan55@hanmail.net

 

[1566호 / 2020년 12월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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