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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조사선’의 ‘무생법인(無生法忍)’ (끝)

기자명 선응 스님

임제할 덕산방이 무생법인 증득 가능

부처 집착해 구하면 부처에 속박
조사 집착해 구하면 조사에 속박
서산 뜻은 사견 생하지 않게하고
자성청정심을 깨닫도록 하는 것

80장은 “임제(?~867)의 ‘고함(喝)’과 덕산(德山宣鑑,782~865)의 ‘몽둥이(棒)’는 ‘무생법인(anutpattika‐dharma‐kṣānti)’을 증득하게 하여, 정수리로부터 밑바닥까지 뚫고 투과한다. 큰 기틀과 작용이 막힘없이 자재해서 온 몸으로 출몰하거나 온 몸으로 짊어진다. 물러나 ‘문수(Maňjuśrī, 대승지혜)‧보현(Samantabhadra, 보살행)’의 대인 경계를 지킬지라도 ‘진실’을 근거해서 말하면 이 임제와 덕산도 도둑마음의 귀신을 면하지 못한다”이다. ‘운문록’과 뇌암(雷庵正受,1146~1208)의 ‘가태보등록’ 내용이다.

서산대사가 “늠름한 ‘취모’는 날카로운 칼날을 건드리지 않는다”고 하고, 다시 “밝게 빛나는 차가운 빛 구슬은 물에서 아른거리고, 텅 빈 허공에 구름이 흩어지니 하늘에 달이 떠가네”라고 게송했다.

81장은 “‘대장부’라면 ‘부처’를 보거나 ‘조사’보기를 원수같이 한다. 만일 ‘부처’를 집착해서 구하면 ‘부처’에 속박되고, 만일 ‘조사’를 집착해서 구하면 ‘조사’에 속박된다. ‘구함’이 있으면 다 고통이니 일 없는 것만 못하다”이다. ‘임제록’ 내용이다.

해석하시길 “‘부처나 조사가 원수와 같다’는 것은 (선귀2장)‘바람 없는데 파랑을 일으킨 격’의 결론이다. ‘구함이 있으면 다 고통이다’는 것은 (선귀4장)‘있는 그대로 옳다’의 결론이다. ‘일 없는 것만 못하다’는 것은 (선귀4장)‘생각을 생하면 곧 잘못이다’의 결론이다. 여기에 도달하면 천하 사람이 혀를 끊고, 신속한 ‘생사’의 윤회를 멈추고 쉴 것이다. 위태로움을 구하고 어지러움을 평정하는 것은 단하(丹霞天然,736~824)가 ‘목불을 태운 일’, 운문(?~949)이 ‘개먹이로 주는 것’ ‘노파가 부처를 보지 않는 것’ 등과 같이 다 삿됨을 꺾고 정법을 밝히는 수단이다. 그러면 필경은 어떠한가?” 하시다.

단하선사가 ‘목불’을 태우며 “‘사리’를 얻으려고 한다”고 한 일화와 ‘오등회원’에서 ‘유아독존’에 대한 운문(864~949)의 평과 부처님 당시, 한 늙은 노인의 가린 손에 부처님이 나타나신 ‘일화’다. 게송 “항상 강남의 3월 풍경을 기억하니 자고새 우는 곳에 온갖 꽃이 향기롭다”는 ‘인천안목’에서 풍혈(風穴延沼, 896~972)선사가 ‘주관‧객관’에 대한 답이다.

82장은 “‘신령한 광명’은 어둡지 않으니 ‘만고’에 빛난다. 이 ‘문’에 들어 와서 앎과 분별을 두지 말라!”이다. ‘경덕전등록’에서 평전(平田普岸,770~843)이 항상 ‘몽둥이’로 가르치면서 설한 게송이다. 다시, “‘신령한 광명은 어둡지 않다는 것’은 (선귀1장)‘밝고 밝아서 매우 신령하다’의 결론이고, ‘만고에 희유하다는 것’은 (선귀1장)‘본래 생멸이 아니다’의 결론이며, ‘알고 분별하지 말라’는 것은 (선귀4장)‘이름을 고수해서 알 수 없다’의 결론이다. ‘문’은 범부와 성인이 출입하는 뜻으로 하택(荷澤神會,670~762)이 ‘‘앎’의 한 글자는 많은 ‘묘’의 ‘문’이다’고 한 것과 같다. 아! ‘이름과 형상을 얻을 수 없는 것’으로부터 ‘알고 분별하지 말라’에서 결론하니, 한편의 갈등을 한 ‘구(莫存知解)’로 다 파한다. 그러나 처음과 끝이 하나의 ‘분별’이고, 중간에 많은 ‘일화’를 든 것은 일반적인 규정, ‘서론‧본론‧결론’과 같다. ‘앎’과 ‘분별’의 두 글자는 불법을 크게 해치기 때문에 특별히 거론해서 마친다. 하택이 ‘조계(혜능)’의 적자(남악회양,677~744)가 될 수 없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그래서 “이와 같이 종지를 들어 소리 높여 밝혔으나, 서쪽에서 온 눈 푸른 스님이 크게 비웃는다. 그러면 필경은 어떠한가?”하다. ‘증도가송’에서 중봉(中峯明本,1238~1295) 게송이다. 다시 서산대사가 “아하! 밝은 달은 홀로 밝아 강산은 고요한데, 스스로 한번 크게 웃으니 천지가 놀라네”라고 게송하시다. 기묘년(1579,선조12) 서산(1520~1604) 제자 사명(四溟鍾峯,1544∼1610)이 편찬하고 ‘발문’하기를, “서산의 뜻은 ‘돈오’로 ‘사견’를 생하지 않게 하고 ‘선교일치’ 수행으로 ‘자성청정심’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고 하다. 서산과 사명은 허응당 보우(1509~1565)가 복원한 승과제도로 득도한 스님이다. 1592년 임진왜란에서 서산의 격문을 받고 승병을 모아 전공했으며 일본에서 삼천여명의 동포를 데리고 1605년 4월에 귀국했다.

선응 스님 동국대 불교학 박사 sarvajna@naver.com

 

[1567호 / 2020년 12월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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