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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회와 마테오 리치의 이중성

기자명 이병두

“종교 평화 없이 세계 평화 없다”는 말을 귀에 따갑도록 들어온 사람들은 이제 “당연한 일인데, 특별히 강조할 필요가 있느냐?”고 생각하면서 종교평화라는 말 자체가 식상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당연한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고 인류 역사에 숱한 피를 뿌리게 하니 문제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세계사 수업 시간에 배운 ‘중국 선교에 나선 가톨릭의 베네딕트 수도회와 예수회 사이의 차이점’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 배운 대로 “베네딕트회는 배타적이어서 중국 당국과 문제를 일으킨 데 반하여 예수회는 제사와 같은 중국의 전통을 존중하여 선교 활동을 할 수 있었지만, 로마교왕청에서 예수회의 선교 방법을 불법이라고 결정하면서 중국을 떠나게 되었다”는 식의 단편 지식이 수많은 우리 국민의 상식이 되었다. 게다가 현 로마교왕 프란체스코가 예수회 소속이고, 2014년 그가 방한하면서 몰고 온 ‘효과’ 덕분에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예수회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된 국민들이 많다.

하지만 이 상식에 근거해서 “예수회는 선한 곳”이라고 여기면 크게 오해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인물로, 명나라 말기 중국에 와 머물렀던 마테오 리치가 1583년 처음 중국에 들어와 활동을 시작할 때에는 ‘불교가 기독교 전파의 적수’라고 판단하고 스님처럼 행동하였다. 승복을 입고 교회당에는 선화사서래정토(僊花寺西來淨土)라는 편액을 걸었다. 베이징에 다녀오는 사신들을 통해 우리나라에도 전해진 가톨릭 교리서 ‘천주실의(天主實義)’에 ‘신편서축국천주실의(新編西竺國天主實義)’라는 이름을 쓰고 편저자 이름에도 ‘인도 승려[天竺國僧]’이라고 표시하는 식으로 겉으로 불교를 내세운 채 불교 교리를 집중 공격했다.

그러다 어느 정도 현지 사정을 알게 되어 중국 선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불교가 아니라 유교’라고 판단한 뒤로는 승복을 벗고 유복(儒服)으로 갈아입고, 유교 경전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서 중국 지배층‧지식인 사회에서 시작해 전 중국인에게 기독교를 전파하고자 했다.

전례논쟁의 경우에도 교묘하게 대처하여 이탈리아어로 쓴 책과 보고서에서는 “조상 숭배에 종교적 성격이 없다”고 말하였지만, 중국과 조선 지식인과의 대화나 한문으로 쓴 책에서는 “고인의 영혼은 언제나 불멸하기 때문에 유교에서 고인을 제사 지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양 기독교 신자를 위한 것과 유학자를 위한 해석과 설명이 180도 달랐던 것이다.

인터넷에서 세계 종교사를 조금만 살펴보아도 예수회가 창립 초기부터 ‘하느님의 군대’라는 자기 확신을 가지고 철저한 복종과 엄격한 규율로 무장한 채 ‘전투적으로 세계 전도를 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던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님과 유학자로 위장했던 마테오 리치의 경우처럼 현지 사정에 따라 복장을 자유롭게 하고 현지 관례에 따르는 시늉을 할 수 있게 한 것을 우리가 ‘관용적’이라고 오해한 것이고 솔직히 말하면 그 교활함에 속은 것이다.

서강대 교수로 간화선 수행자로 유명해지고 성철 스님 관련 세미나에 와서 논문을 발표하여 박수를 받은 예수회 소속 서명원 신부가 한국 불교에 온갖 찬사를 늘어놓다가 영어로 쓴 책에서는 “성철 스님이 1980년 10‧27법난과 1987년 민주화 투쟁 당시에 침묵한 사실을 역사가 잊지 않을 것”이라고 써서 논란이 된 적이 있지만, 마테오 리치 등 예수회 선교사들의 방식을 알고 있던 이들에게는 놀랄 일이 아니었다.

이웃 종교와의 진지한 대화와 평화 구축 노력을 게을리 하면 안 되는 것이 당연하고 이제까지 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지만, 그들에게 속고 뒤통수를 맞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종교간 대화 모임에 참여하는 이웃종교인들 사이에서 나오는 “밥값 잘 내는 곳이 불교”라며 비웃는 소리를 이제 그만 듣기 위해서라도 이웃종교 역사를 공부해야 할 것이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568호 / 2021년 1월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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