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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특집] 조계종 불교음악원 박범훈 원장

  • 새해특집
  • 입력 2021.01.05 11:40
  • 수정 2021.10.17 04:18
  • 호수 1568
  • 댓글 2

불보살님 찬탄하는 찬불가 울려 퍼지는 그곳이 영산회상

이론·실체 겸비 전문기관으로 자리매김
학회 설립으로 불교음악 이론 토대 마련

불교음악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소리로 표현한 것이다. 또한 불보살을 찬탄·공양하는 소리다. 사찰에서 부르는 찬불가를 비롯해 스님들의 염불소리, 영산회상곡·회심곡·산염불 등 민요, 전문적인 범패나 화청 모두가 불교음악이다. 불교음악은 사실상 불교의 시작과 궤를 같이한다. 하지만 불교계가 불교음악의 중요성을 인식해 체계적인 보존과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2015년 불교음악의 진흥과 교육의 기틀을 마련하고 작곡과 지휘 등 전문교육자 양성을 목표로 조계종 불교음악원이 출범했다. 한평생 불교음악 발전을 위해 헌신해온 박범훈(74·범성) 동국대 석좌교수가 6년째 불교음악원을 이끌며 산하 봉은국악합주단, 불교합창아카데미, 불음꽃합창단을 총괄 지휘하고 있다. 올해는 불교음악학회를 설립해 명실공히 불교음악의 이론과 실체를 겸비한 불교음악 전문기관으로 자리매김한다는 계획이다.

박 원장은 일찍이 전통 불교음악은 물론 신작 찬불음악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인 연구와 교육을 위한 전문기관의 필요성을 역설해왔다. 더욱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악인으로 세계적인 공연의 작곡과 지휘, 연주 등에 수많은 업적을 남겼고, 특히 불교음악의 학문적 연구와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때문에 불교음악원 원장 소임은 당연히 그의 몫인 듯 보였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일이 발생했다. 불교음악계의 일부 작곡가와 지휘자들이 불교음악원 설립 자체를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국악인 박범훈으로 인해 국악이 불교음악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게 이유였다.

“차라리 명칭을 불교국악원으로 하라고도 했습니다. 반대측의 주장은 당시 불교음악계의 현실이 그대로 반영된 것입니다. 불교합창단을 지도하는 지도자들은 대부분 서양음악을 전공한 사람들이고, 그들이 지도하는 찬불가는 솔직히 불교음악과 거리가 먼 이웃종교의 성가와 비슷한 곡입니다. 1970·1980년대 불교음악의 정체성을 고려하지 않고 작곡한 찬불가가 불교음악을 대표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불교음악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결여된 상황에서 제기된 문제였다. 인도의 불교음악은 인도음악이고, 중국의 불교음악은 중국음악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불교음악은 한국음악이어야 한다는 게 박 원장의 지론이다. 그렇다고 서양음악 기법으로 작곡된 새로운 찬불가가 폄하되어서도 안 될 일이었다. 다양한 찬불가의 탄생은 사찰 합창단의 창단으로 이어졌고, 각종 의식과 행사는 물론 포교에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교음악이란 용어 자체가 공유되지 않은 상황에서 당시 총무원장 자승 스님의 원력이 아니었다면 설치 자체가 불가능했던 일입니다. 불교음악원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한국음악을 지향하면서, 새로운 불교음악의 창달에 기여하고자 노력합니다. 의식음악은 의식음악답게 정통성을 지켜 전승·보전하고, 생활찬불음악은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게 불교음악원의 원칙입니다.”

불교음악원 운영 방침은 봉은국악합주단, 불교합창아카데미, 불음꽃합창단을 통해 구현되고 있다. 봉은국악합주단은 불교음악원이 설립될 즈음 창단됐다. 불교음악을 연주하는 합주단의 역사는 세종대왕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불심 깊은 세종대왕은 신하와 유생들의 반대에도 인왕산 자락에 불당을 짓고 봉불의식을 거행했는데, 당시 45명의 국악합주단과 22명의 가무단이 참여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처음 불교음악원은 5개 사찰에 10명으로 구성된 국악합주단을 창단해 각 사찰에서 찬불음악을 연주하고, 필요하면 함께 모여 대형 불교국악관현악단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추진됐습니다. 현재는 봉은사 한 곳에 불과하지만 불교음악의 역사적 전통을 이어가는 한편, 불교음악 연주에 대표성을 지난 합주단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대중을 위한 무대에서는 서양악기와 함께 재즈, 대중음악, 클래식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음악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그 가능성을 인정받은 만큼 다른 사찰에서도 국악합주단이 창단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불교음악원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불교음악의 정체성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다. 불가(佛歌) 가사에 불교음악적 특징을 갖춘 찬불가다운 찬불가 창작을 위해 찬불가창작위원회를 운영하고, 불자들이 찬불가를 함께 부를 수 있도록 이끌어 줄 전문인 양성을 위해 불교합창아카데미를 열었다. 특히 불교합창아카데미는 노래는 물론 몸짓으로도 불보살을 찬탄할 수 있도록 한국무용, 스포츠댄스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적인 지도가 병행된다.

“불음꽃합창단은 불교합창아카데미 수료자들이 모여 창단한 합창단입니다. 불교음악원에서 시행하는 합창교육과 더불어 김성녀 예술감독의 지도 아래 운영되고 있습니다. 찬불가와 가무가 함께하는 작품을 교육받아 매년 부처님오신날 즈음 불교음악회 무대에서 불교음악의 정체성과 역사성을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올 상반기 불교음악학회가 출범하면 불교음악원의 외형이 모두 완성된다. 불교음악학회는 불교음악원 설립과 동시에 세미나를 개최해 설립을 공포할 예정이었으나 조건이 마련되지 못해 지금껏 미뤄졌다. 불교음악학회는 불교음악을 전공한 학자들이 연구한 결과를 발표하고 불교음악 발전의 이론적 토대 제공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불교음악원의 6년은 불교음악 발전의 기반을 마련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구한말 용성 스님은 쓰러져가는 조선불교의 재건을 위해 찬불가를 만들어 보급했고, 1970·1980년대 등장한 새로운 찬불가는 우리의 불교문화를 풍성하게 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불교음악원의 내딛는 걸음걸음이 사찰마다 이어져 장엄한 영산회상이 곳곳마다 펼쳐지길 간절히 발원합니다.”

 

“부처님 가피로 이뤄온 삶, 전통 담은 불교음악으로 보은”

국악 연주하며 부처님과 인연…‘붓다’ 시작으로 교성곡 6편·찬불가 50여편 작곡
불교음악 정체성 회복 시급…‘찬불가’ ‘사홍서원’ 의식곡만이라도 불교음악답게

 

박범훈 불교음악원장은 명실상부 한국 전통음악과 불교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다. 우리나라 최초 민간 국악관현악단 창단을 주도하고 국립국악관현악단 초대단장 등을 역임하며 우리 민족의 예술적 정서와 교감한 불교음악을 통해 가장 한국적인 관현악을 발전시켜왔다.

중학생 때까지 트럼펫을 불었던 그는 사당패 꼭두쇠였던 인간문화재 남용운 선생의 눈에 띄어 한국국악예술학교(현 서울국악예고)에 입학했다. 당대 최고의 피리연주가 지영희, 최경만 선생에게 사사한 그는 사력을 다해 연습했고, 3년만인 1968년 멕시코올림픽 문화예술단원에 선발될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피리 연주로 세계 24개국을 순회하는 등 국내외 수많은 무대에서 왕성히 활동했다.

“학창시절 영산회상, 염불, 회심곡을 연주하고 승무를 보면서 불교를 알게 됐습니다. 주말이면 선생님들과 사찰에서 숙식을 해결하다 보니 자연스레 불교를 삶으로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국악을 통해 불교를 만난 셈입니다.”

국악인으로 탄탄대로를 걷고 있었지만 정작 대학은 서양음악을 다루는 중앙대 음악과를 선택했다. 우리 전통음악이 새롭게 거듭날 수 있도록 작곡을 공부해 보라는 스승들의 조언 때문이었다. 중앙대를 졸업한 그는 일본 무사시노음악대학에 진학해 작곡 공부에 7년의 세월을 더했다. 그곳에서 전통음악을 철저히 보전하면서도 전통에 기반해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내는 일본음악계의 움직임은 큰 자극이 됐다.

1984년 중앙대 음악대학 교수로 부임했다. 우리 전통음악에 서양음악을 더하니 해야 할 일들이 눈에 들어왔다. 우선 민간 국악관현악단 중앙국악관현악단을 창단해 지휘자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편곡을 통해 전통음악에 새로움을 덧씌우고, 한·중·일 3국 민족음악의 교류도 추진했다. 교수로, 작곡가로, 지휘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던 그가 불교음악 작곡에 나서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한 사찰에서 접한 찬불가 때문이다.

“우연히 참석한 사찰 행사에서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합창단을 보았습니다. 노래 가사는 분명 부처님 가르침인데 선율은 완전히 찬송가였습니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 한 일간지에 ‘법당 안의 피아노’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습니다. 유구한 역사를 가진 우리의 불교음악이 있음에도 국적 없는 찬불가를 만들어 법당에서 피아노 반주에 맞춰 부르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불교음악의 율(律)에 대한 지적이었다. 불교합창단 지휘자와 작곡가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어떤 곡이 불교음악다운 찬불가인지 내놔보라”는 성토도 쏟아졌다. 적지 않은 파장에 크게 당황하기도 했지만, 민족문화의 근간인 불교를 상징하는 음악은 우리 전통음악의 율과 합의해야 한다는 생각만은 변함이 없었다. 국악과 서양음악 작곡을 전공한 만큼 오히려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1991년 교성곡 ‘붓다’를 시작으로 1992년 ‘보현행원송’, 1996년 ‘부모은중송’, 1998년 ‘용성’, 2000년 ‘진감’, 그리고 2018년 ‘니르바나’까지 총 6편의 초대형 작품을 탄생시켰다. 여기에 불자들이 일상에서 함께 부르고 즐길 수 있도록 ‘찬미의 나라’ ‘무상계’ ‘목탁새’ 등 우리의 가락으로 새로운 찬불가 50여편을 작곡했다. 그의 손에서 태어난 불교음악이 하나씩 늘어갈수록 그의 불교공부와 신심의 깊이도 함께 깊어졌다.

“불심으로 만든 작품들이기에 우열을 가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꼭 하나를 꼽아야 한다면 교성곡 ‘보현행원송’입니다. 두시간여 공연이 끝난 후 무대인사를 드리는 데 객석에서 부축을 받고 있던 광덕 스님이 누구의 도움도 없이 단숨에 무대에 오르셨습니다. 더욱이 마이크를 잡고 법문까지 하셨습니다. 객석에서는 난리가 났어요. 법문을 마친 스님께서 제 손을 잡고 ‘그대는 보현행자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박범훈 불교음악원장은 “신축년 새해 마음 편히 모든 것을 맞이하며 기도·정진하면서 함께 날마다 좋은 날 만들어가자”고 인사했다.

광덕 스님의 인연으로 부처님 제자로 거듭나게 됐고, 불법을 찾아 동국대 대학원 불교학과에 입학했다. 그의 박사학위논문 ‘불교음악의 현대적 전래와 한국적 전개에 관한 연구’는 불교음악의 뿌리를 규명하고 한국음악의 전통성을 밝힌 한국불교음악사의 교과서로 평가받고 있다. 그럼에도 그를 불교음악으로 이끈 율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삼귀의, 사홍서원 등 법회에서 불리는 의식곡만이라도 불교음악답게 바뀌어야 한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국악과 민요는 물론 작곡과 연주, 작곡, 지휘까지 섭렵한 그에게 1995년 국립국악관현악단 초대단장 소임이 부여됐다. 4년 임기를 채우고 1년을 더해 5년간 국립국악관현악단을 이끌며 국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서울아시안게임·서울올림픽·한일월드컵 개막식 음악 총감독을 맡았고, 중앙대 총장과 청와대 교육과학문화수석비서관 등을 역임했다. 불교음악을 중심으로 전통문화를 발전시킨 공로로 2013년 불자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5년 일생일대의 사건을 겪게 된다. 청와대 수석 시절의 일이 문제가 돼 실형을 선고받고 2년간 수감생활을 해야 했다.

“재판을 통해 직권남용을 제외한 대부분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직권남용도 당시 대학 발전의 걸림돌이었던 각종 규제를 법 테두리 안에서 완화하도록 지시한 일을 문제 삼은 것으로 재심이 진행 중입니다. 이 일로 불교계와 예술계의 많은 분께 걱정을 끼쳤습니다. 하루하루 참회하는 마음으로 불교계와 예술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실천하고 있습니다.”

박범훈 원장의 하루는 단출하다. 오전 9시경 봉은사에 도착해 집무실이 위치한 매화당에서 곡 작업이나 강의 준비를 하고, 오후에는 봉은국악합주단을 지도한다. 최근 코로나로 공연마저 줄어 생활은 더 간소해졌다.

“2019년 겨울 신장에 암세포가 발견돼 수술을 받았습니다. 정신없이 살아온 세월 잠시 내려놓고 뒤를 돌아보라는 불보살님의 가르침인듯합니다. 걱정하고 신경 쓰면 한시도 편할 날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도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신축년 새해는 마음 편히 모든 것을 맞이하며 기도·정진하면서 함께 날마다 좋은 날 만들어가기를 기원합니다.”

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1568호 / 2021년 1월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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