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리와 관세음보살
1. 소리와 관세음보살
  • ​​​​​​​이제열
  • 승인 2021.01.05 18:13
  • 호수 156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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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보살에게 소리는 관의 대상

보고 듣는데서 번뇌가 생겨나
소리는 번뇌이자 깨우침 매개
관음보살은 고통 소리를 관찰
소리 관하는 것, 불교 고유 특성

무한히 펼쳐진 세상, 그 속에는 보이는 모습만큼이나 들리는 소리 또한 다양하다. 사람 소리, 동물 소리, 자연 소리 등 세상은 소리로 꽉차있다. 사람은 소리 속에서 태어나 소리 속에서 죽는다. 인간이 맨 처음 듣는 소리는 어머니의 심장소리라고 한다. 어머님의 쿵쿵 뛰는 심장의 역동적인 소리를 시작으로 세상의 다채로운 소리들과 만나게 된다. 만약 세상에 소리가 없다고 가정해 보자. 세상을 살아가는 생명들의 삶이 어떠했을지는 상상이 가지 않는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소리들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지만 이와 관련된 이야기들은 아주 많다.

부처님 가르침에 따르면 중생의 번뇌는 눈으로 보이는 대상들과 귀에 들리는 소리들에 의하여 가장 많이 일어난다고 한다. 중생 대부분의 번뇌는 형상과 소리와 관련한 것들이다. 그러나 보이는 형상과 들리는 소리들이 모두 번뇌만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어떤 형상과 소리는 때로 중생을 어리석음으로부터 깨우쳐 주고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불교는 소리를 그냥 듣고 번뇌 쪽으로 흘려보낼 대상이 아니라 잘 듣고 잘 살펴서 보리(깨달음)쪽으로 돌이키라고 가르친다. 또한 부처님과 보살들이 중생을 제도함에 있어서 소리를 중하게 여긴다. 소리는 이래저래 불교와는 뗄 수 없는 관계다. 이런 점에서 불교와 소리는 생소하면서도 매우 흥미롭다고 할 수 있다.

본래 소리라는 것은 귀와 연결하여 듣는다고 표현한다. 눈으로는 형상을 보고, 코로는 냄새를 맡고, 혀로는 맛을 보고, 몸으로는 감촉을 알고, 마음으로는 대상을 파악하는 것처럼 소리는 귀를 통해 듣게 되어 있다. 때문에 한자에서는 들음과 관련한 글자인 ‘들을 청(聽)’자나 ‘들을 문(聞)’자에는 모두 귀이(耳)자가 붙는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불교에서는 이러한 소리들에 대해 단순히 듣는다고만 말하지 않고 관(觀)한다는 말을 사용한다. 여기서 관이란 자세히 본다는 의미로 소리는 단순히 귀로 듣는 대상만이 아닌 자세히 보아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 예전 시골 냇가를 가면 두루미나 황새가 흐르는 물속을 집중하여 들여다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한자의 ‘볼 관(觀)’자도 서 있는 황새의 두 눈이 뭔가를 보는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다. 세상의 소리도 그렇게 관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소리를 두고 ‘들을 청’자나 ‘들을 문’자 외에 불교에서 관이라는 말을 사용하게 된 근거는 불교 신앙의 대표적 숭배 대상인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영향 때문으로 여겨진다. 관세음보살의 이름 자체가 세상의 소리를 관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천수천안(千手千眼)을 소유한 관세음보살은 중생을 제도함에 중생이 괴로워하는 소리를 귀로 듣지 않고 눈으로써 관한다. 이때의 눈은 육안이 아닌 지혜의 눈이다.

중생의 괴로움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중생 스스로가 고통인 줄 아는 괴로움이고 다른 하나는 고통인줄 모르는 괴로움이다. 중생이 고통인 줄 아는 괴로움은 입으로 소리를 내어 “나는 괴롭다”는 말을 하지만 고통인 줄 모르는 괴로움은 말을 할 리가 없다. 그러나 관세음보살은 중생들이 자신의 몸과 마음이 괴로운 줄 느끼든 못 느끼든, 중생은 괴로움에 잠겨 있다는 사실을 보고 안다. 관세음보살의 관에 의하면 중생의 몸과 마음에서는 괴롭다는 소리 아닌 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관세음보살이 이러한 중생의 괴로움을 없애주려면 중생의 괴로운 소리를 단순히 듣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을 것이다. 바로 괴로움의 원인과 본질이 무엇인지 완전히 파악해야만 가능하다. 그러려면 소리를 세밀하게 관해야 한다. 관세음보살에게 소리는 들음의 대상이 아닌 관의 대상인 것이다.

이와 같이 소리는 귀와 관련되어 있지만 불교에서는 관세음보살이 소유한 지혜와 연결 짓는다. 소리를 귀로만 듣는 중생에게 전혀 다른 차원의 관을 통해 알게 한다는 것은 다른 종교와 차별화된 불교만이 지닌 독특함이라 하겠다.

이제열 법림선원 지도법사 yoomalee@hanmail.net

 

[1568호 / 2021년 1월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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