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불교의 죽음관
1. 불교의 죽음관
  • 이재형 국장
  • 승인 2021.01.18 14:16
  • 호수 1570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삶에 끌려 다니지 않지만 죽음에도 끌려 다니지 않으리라

유교에서 죽음 기피한 것과 달리 불교에선 깨달음 출발점
고승들 죽음 예고, 앉거나 서서 입적…능동적 생사관 담겨
붓다는 죽음 잊지 않는 자라야 자유로워질 수 있음을 역설
육조 혜능 스님은 삶에 자유로운 이는 죽음에도 자유로울 수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사진은 중국 남화선사에 봉안된 혜능 스님의 진신(眞身).
육조 혜능 스님은 삶에 자유로운 이는 죽음에도 자유로울 수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사진은 중국 남화선사에 봉안된 혜능 스님의 진신(眞身).

유교 중심의 전통사회에서 죽음은 철저히 가려지고 외면됐다. ‘아직 삶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 수 있겠느냐(未知生 焉知死)’는 공자의 말처럼 모든 사고의 주파수는 죽음이 아닌 삶에, 내세가 아닌 현세에 맞춰졌다. 반면 죽음은 두려움과 기피의 대상이었다. ‘죽을 사(死)’와 발음이 같다는 이유로 ‘넷 사(四)’까지 꺼려했으며, 건물의 4층을 ‘F층’으로 표시하기도 했다.

죽음에 관한 견해는 현대에 이르러 크게 바뀌었다. 죽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삶의 본질에 대한 사유와 재발견으로 이어진다는 게 오늘날 학계의 통설이다. 1960년대부터 유럽과 미국에서는 대학 교양과목으로 ‘죽음학’을 개설해 가르치고 있으며, 일본에서도 죽음 교육을 공식 교육과정으로 채택하고 있다. 근래 국내에서도 죽음을 다룬 책과 강연이 많아지고, 죽음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연구기관도 느는 추세다.

불교는 유교, 도교와 함께 동아시아 문명의 근간을 형성하고 있지만 죽음에 대한 관점은 확연히 다르다. ‘삶도 아직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라는 공자의 주장과는 반대로 불교에서는 ‘죽음을 모르는데 어찌 삶을 알 수 있겠느냐’는 입장을 견지한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윤회의 속박으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것인지를 문제 삼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죽음을 말하는 것이 금기가 아니라 출발점이며 최종 종착지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불교의 해탈이 단지 죽음의 극복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삶도 동일한 극복의 대상으로 간주한다. 삶과 죽음은 윤회라는 동일한 과정에서 나타나고 반복되는 서로 다른 양상일 따름이다. 그래서 불교는 생과 사를 함께 언급하며, ‘생사일대사인연(生死一大事因緣)’을 해결하는 것을 궁극적인 수행 목적으로 삼았다. 죽음을 기피하는 유교, 불로장생을 추구하는 도교, 천국에서의 영생을 추구하는 기독교와 명확히 다른 점이다.

고승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은 여느 종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하다. 누워서 세상을 떠나는 일반적인 경우 이외에도 꼿꼿이 앉아서, 혹은 선 상태로, 심지어 거꾸로 선 채로 생사를 벗어난다.

불교에서는 왜 이런 다양한 죽음의 방식이 나타나는 걸까. 어디서든 스스로 주인이 되어 적극적으로 살아가라는 임제선사의 ‘수처작주(隨處作主)’에서 그 의도를 찾을 수 있다.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은 우리를 고통스레 옭아매는 탐냄, 성냄, 어리석음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으며, 동시에 생사의 굴레에서 자유로워졌음을 의미한다. 깨달은 자는 삶의 주인인 동시에 죽음의 주인이기도 하다. 삶에도 끌려다니지 않지만 죽음에도 끌려다니지 않는다. 육신이 극히 노쇠하거나 자신의 법을 다 펼쳤다고 판단하면 삶에 집착하지 않고 죽음이 찾아올 때까지 마냥 기다리지도 않는다.

많은 고승들은 자신의 죽음을 예고한다. 자신이 언제 죽게 될 것임을 알아맞히는 ‘예언’이 아니라 자신이 언제 입적하겠다고 분명히 밝히는 ‘예고’인 것이다. 앉아서 죽고, 서서 죽고, 거꾸로 죽는 이 모든 행위들은 그동안 자신이 살아온 주체적인 삶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진리의 시현인 셈이다.

물론 고승들의 죽음이 기이한 형태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생명을 위해 기꺼이 죽음을 선택하거나, 자신의 시신을 굶주린 짐승을 위해 보시하는 일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법문을 마치고 그 자리에서 입적하는가 하면, 제자들과 담소를 나눈 뒤 마치 잠자리에 들듯 죽음을 맞이하고, 때로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시퍼런 칼날에 목을 들이대는 역사기록도 적지 않다.

고승들에게 죽음은 지극히 일상적이다. 누구나 두렵고 고통스러워하는 죽음의 순간이 평상시처럼 담담하거나 되레 유머가 흐른다. 죽음이 밥 먹고 잠자는 일상의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으며, 자신의 시신에도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마조 선사의 법을 이은 은봉 선사의 열반은 기이하면서도 일상성을 잘 드러낸 사례다. 어느 날 그가 제자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많은 장로들이 열반할 때 흔히 앉아서 가거나, 누워서 가는 이들이 많은데, 혹시 서서 그대로 왕생한다면 전례 없는 신기한 열반의 모습이 아니겠나?”

이때 제자 중 한 사람이 서서 열반에 든 사람이 있었다고 말하자, 은봉 선사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그러면 거꾸로 물구나무를 서서 열반에 들었다는 사람은 없겠지?”라고 물었다. 그러자 제자는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라고 답했다.

은봉 선사는 크게 기뻐하며 곧바로 두 손으로 땅을 짚고 다리를 공중으로 번쩍 들고 물구나무를 섰다. 그리고는 호흡을 끊고 열반에 들었다.

동서고금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죽음의 형태다. 하지만 이런 기이한 형태의 죽음조차 삶의 측면에서 보면 그리 신비할 것이 없다. 동네 아이들도 물구나무는 쉽게 설 수 있는 동작이다. 죽음의 순간에 오히려 가장 일상적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생과 사에 끌려 다니지 않는 자유로움을 보여준 것이다. 육조 혜능 스님이 입적할 때 제자들에게 당부한 말에서도 불교가 지향하는 죽음의 일상성은 명확히 드러난다.

“이제 내가 너희들과 작별하리라. 내가 떠난 후에 세상의 인정으로 슬피 울지 말라. 사람들의 조문과 돈과 비단을 받지 말 것이며 상복도 입지 말라. 성인의 법이 아니며 나의 제자도 아니니라. 내가 살아 있던 날과 마찬가지로 단정히 앉아 움직임이 없고 고요함도 없으며, 태어남도 없고 사라짐도 없으며, 감도 없고 옴도 없으며, 옳음도 없고 그름도 없으며, 머무르거나 떠나감도 없어져 탄연히 적정하면 이것이 바로 큰 도이니라.”(돈황본 육조단경)

삶에 자유로운 이는 죽음에도 자유롭다. 삶이 그렇듯 죽음도 자연스러움이다. 죽음이 두렵고 고통스럽게 여겨지는 것은 무상, 고, 무아의 이치를 알지 못하는 억겁의 무명 때문이다. 연기의 이치를 깨달은 이에게 죽음은 생로병사라는 순환의 일부분이며, 두려워하거나 기피할 것이 못 된다.

불교사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죽음의 일상성과 초탈함은 고타마 붓다의 입멸 과정에서 이미 시작됐다. 카필라국의 왕자 고타마를 출가와 수행으로 이끈 것은 태어나면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실존적 자각이었다. 죽음에 대한 깊은 고뇌가 그 조건이 되는 삶의 탐구로 이어지고, 다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문제로 귀착됐다. 29세 때 왕궁의 화려함을 뒤로 하고 출가한 붓다는 35세에 마침내 위 없는 깨달음을 이루었다. 무상한 오온의 실상, 무상한 삶과 죽음의 실상을 알지 못하기에 중생은 거기에 집착하고 고통을 겪게 된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집착이 중생의 습관으로 남아있는 한 삶과 죽음이 반복되는 윤회 과정에서 중생은 고통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그것은 팔정도의 실천을 통해 극복될 수 있었다. 이후 붓다는 45년간 전법의 길을 걸었다. 한량없는 자비심으로 무수히 많은 중생을 제도했으며, 마지막 순간까지 온몸으로 진리의 길을 보여주었다.

붓다의 입적은 80세에 이뤄졌다. 그해 붓다는 라자그리하를 출발해 최후의 유행길에 올랐고, 갠지스강을 건너 바이샬리로 향했다. 그곳에서 최고의 기녀 암바팔리를 교화하고 그녀가 기증한 망고 숲에서 우안거를 지냈다. 이때 붓다는 3개월 뒤 자신이 입멸에 들 것임을 예고했다. 얼마 뒤 붓다는 다시 여행을 떠났고, 대장장이 춘다의 공양을 받은 뒤 돌이키기 어려운 중병을 얻었다. 붓다가 쿠시나라를 지날 때였다. 사태의 위중함을 알아챈 아난의 근심이 깊어지자 붓다는 이렇게 말했다.

“아난이여, 그대는 나의 입멸을 한탄하거나 슬퍼해서는 안 된다. 아난이여, 그대에게 늘 말하지 않았던가. 아무리 사랑하고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도 마침내 헤어짐이 찾아오는 것이라고. 그것을 어찌 피할 수 있겠는가. 아난이여, 그대 자신을 믿고 자신을 의지하되, 다른 것을 믿고 다른 것을 의지처로 삼지 말라. 법을 믿고 법을 의지처로 하되, 다른 것을 믿고 다른 것을 의지처로 삼지 말라.”

붓다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오늘밤 열반한다는 사실을 쿠시나라 사람들에게 전하라고 일렀다. 그 지역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붓다를 친견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슬픔에 젖어 사라쌍수 아래의 붓다를 예경하고 눈물을 흘리며 비통해했다. 밤은 점점 더 깊어졌고, 붓다의 기력은 쇠약해져 갔다. 이때 한 늙은 수행자가 이 소식을 전해 듣고 허겁지겁 찾아왔다. 붓다가 입적하기 전에 그동안 품어왔던 의문들을 묻기 위해서였다. 아난은 더 이상 붓다를 번거롭게 해드리지 말라며 만류했다. 이를 지켜보던 붓다가 늙은 수행자를 가까이 불렀다. 그러고는 수행자의 질문을 다 듣고 난 뒤 자상히 법을 설했고, 마침내 그도 깨달을 수 있었다. 그가 붓다의 마지막 직제자 수밧다였다. 붓다는 그곳에 모인 제자들을 향해 마지막 말을 남겼다.

“비구들이여, 잘 들으라. 내 그대들에게 간곡히 당부하노니, 인연 따라 생기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은 예외 없이 무너지게 마련이다. 부디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여 그대들 스스로를 구하도록 하라.”

붓다는 얼굴을 서쪽으로, 머리를 북쪽으로 향하도록 했다. 가사를 네 단으로 접어 오른쪽 옆구리에 고였으며, 다리를 포개고 누웠다. 그런 뒤 지극히 편안한 모습으로 열반에 들었다. 위대한 성인 붓다의 마지막 모습이다. 여기에는 적멸의 순간까지 흐트러짐 없는 붓다의 모습과 타인에 대한 무한한 자비심이 드러난다.

죽음은 우리의 삶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 모든 생명은 태어나는 순간 죽음을 향해 떠나는 외로운 여행자다. 붓다는 죽음을 잊지 않는 자라야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음을 일생을 통해 보여주었다. 티베트불교에서는 ‘현생의 삶이란 죽음의 순간을 맞는 준비과정’이라 역설한다. 앞으로 이 연재에서는 고승들의 다양한 죽음 방식을 유형별로 소개한다.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며, 지금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모색해보고자 한다.

이재형 편집국장 mitra@beopbo.com

[1570호 / 2021년 1월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초심자 2021-01-19 09:58:41
어디서에도 읽기어려운 귀한!주제인듯 합니다. 앞으로 기대하며 잘 보겠습니다~~스스로 구하는 자유로운삶에 큰 도움이 될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