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통도사  금강계단
2. 통도사  금강계단
  • 법상 스님
  • 승인 2021.01.19 10:06
  • 호수 157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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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진면목 앞세워 반야사상 드러내

당나라 동안상찰 선사 게송
공·유 집착 막고 공으로 이끌어
부처님은 자성 증득하라 가르쳐
통도사 금강계단 / 글씨 해강 김규진(1864~ 1933).
통도사 금강계단 / 글씨 해강 김규진(1864~ 1933).

初說有空人盡執 後非空有衆皆捐 龍宮滿藏醫方義 鶴樹終談理未玄
초설유공인진집 후비공유중개연 용궁만장의방의 학수종담이미현

처음에는 공을 설하니 모두 집착하더니 / 뒤엔 공도 공유 아니라 하니 모두 버리네 / 용궁에 가득한 경율론 의사의 처방과 / 학수(鶴樹)에 마지막 설법도 현묘한 이치는 아니로다.

이 주련은 당나라 때 수행했던 동안상찰(同安常察, ?~931) 선사가 지은 열수의 게송인 ‘십현담(十玄談)’에 나오는 두 구절을 인용한 문장이다. 동안상찰 선사의 십현담은 ‘경덕전등록’ 권29, ‘연등회요’ 권30, ‘만(卍)’속장에 실려 있는 열수의 게송이다. 통도사 금강계단 주련은 ‘십현담’ 가운데 다섯 번째인 연교(演敎)에서 인용한 것이다.

공(空)은 모든 존재는 불변하는 속성과 독립된 실체가 없다는 것을 말하고, 독립된 실체는 곧 자아(自我)를 말한다. 불교에서 공은 다양한 조건에 의해 상호 작용하기 때문에 조건에 따라 각기 변하고 스스로 독립해 존재할 수 있는 성품이 없음을 말한다. 존재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자성이 없다는 뜻이기에 무자성(無自性)이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공’을 설하자 또 ‘공’에 집착해 공이라는 본질을 어긋나게 받아들이고 있다. 공에 집착하는 것을 공집(空執)이라 하고 유(有)에 집착하는 것을 유집(有執)이라고 하며 이 두 가지의 집착을 공유이집(空有二執)이라고 한다. 여기서 공집은 모든 것이 궁극에 없다고 하는 집착을 말한다. 이에 반해 모든 것은 절대불변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집착하는 것을 ‘유집’이라고 한다.

이렇듯 통도사 금강계단의 주련은 공을 앞세워 반야사상을 드러내고자 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은 공, 유 두 가지 견해를 일으키는데 이는 망상분별로 생기는 그릇된 견해이다. 대승불교가 인도에서 성립할 때 크게 두 파로 갈라져 성립하게 된다. 이들은 모든 존재의 본질을 공 또는 유라고 주장해 논쟁의 시발점이 된다. 이를 공유논쟁(空有論爭)이라 한다.

주련의 내용을 잘 보면 ‘공’도 ‘유’도 집착 하지 않게끔 해 결국 공으로 이끌고 있다. 이 논리를 공과 유를 모든 버린다는 뜻의 공유쌍견(空有雙遣)이라 한다. 

결론적으로 부처님의 말씀은 방편으로 내세운 가설일 뿐이기에 말하고자 하는 요점을 알아들어야 한다. 

‘용궁만장’이라고 하는 것은 용궁에 가득한 불교 경전이라는 뜻이다. 이런 표현은 중국불교 특유의 전개 방식으로 신비감을 더해주는 표현일 것으로 필자는 보고 있다. 그러기에 통도사 주련에서 나타내고 싶은 표현은 ‘비록 수많은 대장경이 있더라도 이는 의원의 약방문’이라는 것이다. 방의(方醫)라는 표현은 의원의 약방문이다. 이는 중생의 병을 고치기 위해 제불의 가르침을 비유하는 표현이다. 

학수(鶴樹)는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장소를 말한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니 더불어 대자연도 모두 슬퍼해 숲이 하얗게 변했다하여 이를 ‘학림’ 또는 ‘학수’라고 표현한다. 종담(終談)은 마지막 말씀이란 뜻이다. 곧 부처님의 최후설법을 표현한 것이다.

부처님의 팔만대장경은 의원의 약방문일 뿐이고 학수의 마지막 설법도 현묘한 이치는 아니라는 것은 무슨 말일까?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일러주고자 하는 궁극적 목표는 무엇일까? 바로 자성(自性)을 깨달으라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도리를 부처라고 하며 견성(見性)이라고 한다. 스스로 증득해 깨치지 못한다면 숱한 문자의 바다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현묘한 이치를 깨닫기 위해서는 마음이 곧 부처라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고로 불교는 신을 추종하는 것이 아닌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가르침을 전해주는 종교인 것이다. 

법상 스님 김해 정암사 주지 bbs4657@naver.com

 

[1570호 / 2021년 1월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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