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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제50칙 문조주도(問趙州道)

일상에서 벗어난 어떠한 깨달음도 없다

‘도’ 묻는 승에게 성 밖의 길로 대답
수행도 길을 가는 것과 다르지 않아 
일상의 삶 떠난 깨달음 생각한다면
일생을 두고 신발값만 낭비하게 돼

승이 조주에게 물었다. “도란 무엇입니까.” 조주가 말했다. “성 밖에 있다.” “그 도[길]에 대하여 물은 것이 아닙니다.” “그럼 어떤 도에 대하여 물었는가” “대도(大道) 말입니다.” “대도는 장안까지 통한다.”

삼조대사는 ‘신심명’에서 깨침에 대하여 분별심을 내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분별심이란 이것과 저것을 서로 비교하고 재며 따지고 헤아리는 마음이다. 만약 이와 같은 분별심에서 벗어나면 지극한 깨침이란 특별히 어려울 것이 없다. 그 분별이란 바로 중생의 속성이다. 따라서 수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특별히 경계해야 할 가르침이다. 삼조의 이 말은 조주가 인용하여 납자들에게 교화하는 방법으로 널리 활용하였다.

본 문답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한 승이 깨침[道]이란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그에 대하여 조주는 너무나 정직하게 답변한다. 성 밖에 나 있는 길[道]이라고 응수한다. 이것은 단순한 언어유희가 아니다. 조주의 입장에서는 이미 질문하고 있는 승의 마음을 꿰뚫고 있었기에 우선 순차적으로 도가 지니고 있는 의미를 가장 일상적이고 비근한 것을 예로 들어 답변하고 있다. 그러나 승은 자신의 깜냥은 돌아보지 않은 채 벌써 저 멀리에서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조주는 멀리 있는 답변보다는 우선 승이 명백하게 이해할 수 있는 답변을 제시한 것이다. 그러자 승은 성 밖에 있는 것으로 사람이 걸어 다니고 있는 길이 아니라 대도(大道)에 대하여 물었다고 말한다. 그에 대하여 이제 조주는 천연덕스럽게 승이 의미하고 있는 대도야말로 장안까지 통하는 것이라고 응수한다. 대도는 통하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을 다시금 환기시켜주고 있다. 조주가 답변한 대도는 동서남북으로 막힘없이 종횡으로 통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묘용으로 드러나 있으며, 행주좌와의 일상생활에서 항상 묘용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대도를 걷다보면 설치되어 있는 이정표를 확인하면서 목적지를 향해 가면 된다. 길을 가다보면 산이 있고 강이 있으며 험난한 길이 있고 돌아가야 하는 길이 있다. 이것이야말로 수행하는 납자가 수행의 과정에서 반드시 경험하고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따라서 조주가 비록 성 밖에 나 있는 길을 가리켜주었다고 해서 그것이 성 밖의 길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승은 이처럼 친절한 가르침에 대하여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조주가 내뱉는 언구에 얽매여 있다. 조주의 답변은 승으로 하여금 그대가 생활하고 있는 일상의 삶의 방식으로부터 벗어나서는 어떤 수행도 없고 어떤 깨침도 없으며 어떤 교화도 없다는 것을 드러내주고 있다. 깨침에 대하여 마치 현실의 중생적인 삶과 판이하게 다른 어떤 개념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신기루를 쫓는 격으로 일생을 두고 신발값만 낭비하고 만다. 조주의 답변에는 승이 현재 처해 있는 상황을 제대로 점검해볼 것을 지적해주는 가르침이 들어 있다. 또한 승이 질문하고 있는 깨침[道]의 개념 가운데는 일방적으로 출세간적인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세간적인 의미가 함께 작용하고 있다는 가르침을 보여주고 있다. ‘대도는 장안으로 통한다’는 말은 깨침이야말로 우리네 일상에서 보고 들으며 느끼며 알아차리는 행위를 조금도 벗어나 있지 않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곧 승이 경험하고 있는 일상의 세간법과 불법에서 제시하고 있는 출세간법이 타성일편이 되어 있는 까닭에 미워하고 사랑하는 분별심을 벗어나서 달리 신통방통한 깨침의 경험을 추구하지 말라는 것이다. 깨침에 대하여 아득히 먼 딴 세상의 거시기로만 간주하여 자신이 보기도 어렵고 듣기도 어렵다고 간주하는 것은 끝내 조주의 친절한 가르침을 수용할 수가 없다. 이에 조주는 깨침에 대하여 때로는 차를 마시는 것이라고 말해주었고, 마당에 서 있는 잣나무라고 말해주었으며, 나귀의 창자에 들어 있는 똥 속의 굼벵이라고도 말해주었다.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571호 / 2021년 1월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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