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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합천 해인사 법보전

기자명 법상 스님

깨달음 이루는 도량은 내가 있는 자리

남전한규 스님이 설법한 게송
깨달음 이룰 특별한 자리 없으니
현실 자각해 깨어있는 삶 살아야

합천 해인사 법보전 / 글씨 남전한규(南泉翰奎, 1868~1936).
합천 해인사 법보전 / 글씨 남전한규(南泉翰奎, 1868~1936).

圓覺道場何處  現今生死卽是
원각도량하처  현금생사즉시
(깨달음을 이룰 수 있는 도량은 어느 곳인가? 지금 생사가 있는 바로 이 자리다.)

이 주련은 글을 쓴 남전한규(南泉翰奎 1868~1936) 스님이 1908년 해인사에서 대중에게 설법한 내용을 새겨 대장경판을 봉안하고 있는 법보전 좌우에 걸어놓은 게송이다. 일제강점기를 겪은 스님은 올곧은 수행자였으며 명필로도 이름을 떨쳤다. 해인사 구광루, 성주 선석사 등에 묵적이 남아있다.

“원만한 깨달음을 이룰 수 있는 도량은 어디에 있는가?”하고 먼저 선문답처럼 질문을 던져놓고 나서 여기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사람들은 깨달음을 이루는 곳을 찾는다며 산 좋고 물 좋은 곳을 찾지만 부질없는 짓이다. 왜냐하면 도는 거기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도량은 깨달음을 성취하기 위해 수행하는 공간을 말하며 이를 갖춰 말하면 보리도량이라 한다.

원각에 대해 조선의 함허득통(涵虛得通 1376~1433) 선사는 “원에는 세 가지 뜻이 있다. 그 첫째는 자각의 원융이다. 둘째는 각타의 그 원융이요. 셋째는 구경의 그 원융이다. 미혹함을 단절하고 공덕을 이뤄 장애가 다하면 각이 원만해지기에 이는 자각의 원융이다. 세 가지 근본을 널리 섭수해서 원각에 함께 귀의한다면 이것은 각타의 원융이다. 증득하되 증득한 바가 없으며, 변화하되 변화한 바가 없어서 증득과 변화가 지극히 원융해서 지극하지 않은 바가 없는 것은 구경의 원융이다. 

각에도 세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본각이며, 둘째는 시각, 셋째는 본각과 시각 둘이 아닌 그 각이다. 그러기에 본각을 대(大)라고 이름을 하는 것이며, 자각을 방(方)이라 이름함이며, 각타를 광(光)이라 이름함이니 자타의 각이 만족함에 또한 본각과 같음이기에 원각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현금생사즉시’를 글자 그대로 보면 ‘현재 생사가 있는 여기’라는 표현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문자를 쫓아가기 급급한 해석이다.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지금 내가 있는 바로 그 자리’라는 뜻이다. 

모든 일을 미루는 자는 어떤 일도 해낼 수 없는 법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항상 다음으로 기약하기를 좋아하기에 대부분 허망한 신기루 쫓는 삶을 살아가기 마련이다. 

‘번뇌즉보리 생사즉열반’ 번뇌가 곧 보리고 생사가 곧 열반이라 했다. 법을 구하는 자가 외물에 현혹돼 청산유곡만 찾는다면 바로 그 생각을 일으키는 순간부터 어긋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유마경’ 의 ‘불도품’에는 ‘모든 번뇌가 여래의 씨앗이다. 마치 대해의 깊은 밑바닥에 들어가지 않으면 보물을 얻을 수 없는 것 처럼 번뇌의 대해에 들어가지 않으면 일체지의 보물을 얻을 수 없는 것’이라 했다. 수행자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비관해 자꾸 벗어나려 하면 안 된다. 독사 피하다 여우 만난다는 옛말처럼 주어진 현실을 자각하고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임제의현(臨濟義玄) 스님의 가르침에는 ‘수처작주’란 말이 있다. 어디서나 주인이 되라는 표현이다. 어떤 상황을 맞더라도 주체로써 자기 자신을 잃지 말고 매사에 반응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천당이나 지옥, 역경이든 순경이든 어떠한 말에도 속박되지 않고 자유자재로 자기의 견해에 따라 움직이는 경지다. 임제록에도 ‘밖에서 들어오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결코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한 찰나라도 미혹된다면 곧 마구니가 마음으로 침입할 것’이라고 했다.

도를 이룰 수 있는 특별한 길지가 있을 리 없지만 순간순간 자신을 놓치 말고 깨어있는 삶을 산다면 내가 서 있는 그 자리가 곧 원각도량이 되는 것이다.

법상 스님 김해 정암사 주지 bbs4657@naver.com
 

[1571호 / 2021년 1월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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