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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유튜브 인공지능과의 밀당

기자명 자현 스님

금생 안에 1000명이나 될까?

구독자 1000명을 확보하는 건
‘유튜브 시민권’ 얻는다는 의미
AI 속성 제대로 알아야 ‘성공’

‘얘야! 내 유튜브 계정 하나 만들어 봐라.’

2018년 11월 말 내가 카톡으로 젊은 선지식에게 했던 말이다. 유튜브를 구독만 하다가, 운영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관점을 요구한다.

나는 흔히 “절에 신도로 30년을 다니는 것보다, 행자로 3개월 사는 게 사찰에 대해서 더 많이 안다”고 말하곤 한다. 신도분들은 ‘설마?’ 할지 모르지만, 스님들에게 얘기하면 100% 공감받는 말이다.

이런 마법 같은 일이 유튜브에서도 일어난다. 처음에 생각 없이 저작권 동영상을 올렸다가, 삼진 아웃으로 계정을 정지 먹었다. 얼마 지나면 풀리겠거니 했으나 유튜브는 단호했다. 덕분에 기다리느라 차일피일 시간만 보내다, 유튜브가 얼마나 막강한 ‘갑’인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시작하자마자 정지를 먹으니 갑갑했다. 해서 보낸 것이 유튜브 계정 하나 새로 파달라는 게 위의 카톡이다.

계정을 새로 만드니, 그나마 있던 구독자도 다 날아가고 공(空)에서 다시 경기가 시작됐다. 당시 나는 불교방송과 불교TV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고, 그전에도 방송했던 것들이 있었다. 해서 이런 파일들을 주기적으로 올렸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당시는 썸네일이나 제목에 대한 생각도 별로 없었고, 유튜브의 신(神)인 인공지능에 대한 이해도 떨어졌다. 해서 하루 유입되는 구독자는 3명 정도가 고작인 고난의 대장정이 시작된다. 흔히 생각하기로는 방송 파일이 있으니, 쉽게 1000명은 됐을 것이라 판단하기 쉽다. 그러나 방송 파일은 주기적인 콘텐츠 부담을 덜어 주기는 했지만, 구독자 문제까지 해결하지는 못했다.

당시 나는 단행본을 40종 이상 출판했고, ‘한국일보’와 ‘불교신문’에 주기적으로 글을 올리고 있었다. 또 불교방송 라디오와 불교TV 라디오도 수년씩 진행한 경력에 내가 운영하는 네이버 밴드 3개에는 구독자가 4000명이 넘었다. 여기에 양 방송사에서 프로그램까지 진행하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유튜브 1000명은 ‘넘사벽’이었다.

이런 구체적인 개인사를 적는 것은 새롭게 유튜브를 시작하는 스님이나 불교인들이 좌절하지 않기를 바래서다. 중고거래 사이트에 가면 1000명 계정이 80만원에 거래되는데,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나름 이해가 되는 일이다. 그만큼 구독자 1000명은 어려운 숫자이다.

새로 개설한 계정이 두 달째 바닥을 기고 있을 때, 내가 보낸 카톡은 ‘금생 안에 1000명이나 될까?’였다. 유튜브에서 구독자 1000명이 중요한 것은 이 정도가 돼야 비로소 인공지능이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 인정해 주기 때문이다. 즉 일종의 시민권 획득인 셈이다.

실제로 유튜브는 구독자 1000명부터 서서히 폭발하기 시작한다. 나는 1000명에 도달하는 데 4개월이 걸렸고, 그 뒤로 8개월 동안 9000명이 늘어 1년 뒤 1만명이 됐다. 그리고 2년에 5만명을 찍었다. 증가 폭이 구독자의 증가에 따라, 더욱 가팔라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유튜브 인공지능은 구독자 500명 정도에서 한 번 은총을 내려준다. 바닥을 기다가 포기할까 봐 밀당으로 미끼를 던져주는 것이다. 이 기회를 잘 잡으면 1000명까지가 쉽고, 그렇지 않으면 다시 낮은 포복으로 기어야만 한다. 유튜브의 은총은 구독자 3000명과 5000명쯤에서 또 다시 발생한다. 포기할까 싶을 때마다 은총을 내려줘, 퇴전심이 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잔인한 상업적 인공지능이 아닐 수 없다.

구독자가 적은 채널에서 유튜브 알고리즘이 얼마나 노출해 주느냐는 채널의 성장과 직결된다. 그러므로 1만 명 이하에서는 인공지능의 도움을 잘 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유튜브님의 은총을 받는 방식은 크게 개근상과 우수상의 두 가지가 있다. 개근상은 일정한 주기로 동영상을 꾸준히 업로드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수상은 세시풍속 등 유튜브가 주목할만한 시류적인 것을 선제적으로 적기에 올리는 방식이다. 이제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과 같은 인공지능과의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물론 나 역시 이런 것을 몰라 개고생을 했더랬다. 즉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라고나 할까! 이것이 지금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이다.

자현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kumarajiva@hanmail.net

 

[1574호 / 2021년 2월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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