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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개 - 하

자애는 생명을 아끼는 동체대비 지향

개의 고통에 연민 느끼기보다
벌레의 생명 대한 무착 태도가
더 깊은 대자대비 배우게 해

인도에서 개와 관련된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마하바라타(Mahābharata)’에 등장하는 떠돌이 개의 이야기이다. 주인공 유디슈티라(Yudhiṣṭhira)는 쿠루왕조를 세우고 후손에게 나라를 물려준 후 천계(天界)에 이르는 길을 떠난다. 험한 여정 끝에 가족들은 모두 죽고 천계로 가는 마차에는 유디슈티라와 우연히 만난 떠돌이 개만이 오르게 된다. 천계의 신 인드라는 하늘에는 천한 개가 머물 곳은 없다고 하면서 개를 내리게 하지만 유디슈티라는 개를 버릴 수 없다며 자신도 마차에서 내린다. 이 이야기는 유디슈티라의 ‘동정심’이나 ‘자비’로 풀이되어 왔으나, 현대학자들은 ‘잔인하지 않음(ānṛśamsya)’의 독특한 덕목으로 해석한다. 또한 이 덕목을 불가피한 살생과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불교가 내세우는 “어떤 생명도, 나아가 어떤 존재도 해치지 말라”라는 불살생(不殺生, ahiṃsā)의 이상주의에 대응하기 위해 힌두교가 새롭게 제작한 현실적 덕목이라고 보았다.

불교의 이상적인 불살생과 자비행의 균형 잡힌 조화를 보여주는 개에 관한 불교의 유명한 에피소드로는 빠뚤 린포체(Patrul Rinpoche)의 ‘나의 완벽한 스승의 말씀(The Words of My Perfect Teacher)’에 나오는 ‘무착(無着, Asaṅga)과 개 이야기’가 있다. 대승 유식학파의 대표적 논사 무착은 미륵(彌勒, Maitreya)보살을 친견하겠다는 발원을 세우고 오랜 기간 동굴에서 명상하였다. 결국 실패하고 산을 내려오던 중 늙고 병든 개가  다리 한 쪽에 구더기가 덮인 채 신음하는 것을 발견하는데, 그에 자신도 아파하는 자비심을 발현하게 된다. 무착은 자신이 개를 구제하게 되면 그 살을 파먹고 사는 구더기의 생명이 온전치 못하게 될 것을 알아차린다. 구더기를 상해하거나 죽이지 않고 개를 구제해야 하는 도덕적 딜레마에 부딪힌 무착은 자신의 허벅지 살을 잘라내어 이 문제를 해결한다. 그는 구더기를 자신의 혀끝에 살짝 얹어 자신의 살로 옮겨 그 살을 파먹게 하여 벌레를 살리고, 개가 겪는 끔찍한 고통도 덜어주기로 한다. 무착이 그 행동을 실행에 옮기자 개는 미륵보살로 화현하여 무착의 눈앞에 선다. 미륵보살은 무착에게 처음부터 난 너와 함께였으나 너의 업장이 두터워 보지 못했으나 개에 대한 대자비심이 나를 보게 한 것이라 말해준다.

무착과 개의 이야기는 불살생과 자비라는 불교의 이상적 격률(格率)의 완성이기 때문에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하지만 너무나 이상적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게 만든다. 무착은 불쌍한 개에게 자비심을 느끼고 개를 구제하면서, 동시에 개와 구더기를 차별하지 않고 동등하게 자비를 베푼다. TV에서 동물구조단체가 개나 고양이를 구조할 때 살이 썩어가는 개체에게서 벌레를 떼어내어 제거할 때 우리는 마음속으로 ‘잘되었다’라고 외쳤을지 모른다. 이러한 태도는 인간이 가장 사랑하는 동물인 개에게 우리가 편향적인 자애(慈愛, maitrī)의 태도를 보인다는 것을 입증한다. 인간은 인간 외에 개라는 종(種)에게만 눈맞춤하는 상호응시(mutual gazing)를 통해 사랑의 호르몬 옥시토신(oxytocin)을 분비한다고 알려져 있다. 개를 가족과 같이 여기며, 반려견을 잃었을 때 상실감을 느끼는 펫 로스(pet loss) 증후군을 앓게 될 정도로 깊은 감정적 교류를 나누고 있다.

하지만 불교윤리학자 피터 하비(Peter Harvey)는 “자애는 개나 고양이만이 아니라 바다가재처럼 ‘귀엽지도 않고 정이 쉽게 가지도 않는’ 피조물에게도 골고루 발휘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논리로 본다면 개에게는 지나친 애착을 삼가하는 이욕(離欲, vairāgya)을 발휘해야 하고, 벌레는 살충제로 무조건 박멸하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불가피하게 벌레를 죽일 경우에도 의도성(cetanā, 思)을 갖는 고의적이고 잔인한 행위는 하지 말아야 한다. 개의 고통에 연민을 느끼고 자애로 대하는 태도보다 하찮은 벌레의 생명을 대하는 무착의 태도에서 더 깊은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본질을 배우게 된다. 자애는 아름다운 존재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추하고 해로운 존재일지라도 그 생명 자체를 내 몸처럼 아끼는 동체대비(同體大悲)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김진영 서강대학교 철학연구소 연구교수 purohita@naver.com

 

[1574호 / 2021년 2월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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