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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쯤 다 내려놓을 수 있을까요

기자명 희유 스님

마음 내려놓는 공부를 해도
경계에 당하면 욕심 올라와
맹인 나뭇가지 잡고 매달리듯
놓지 못한 삶 아닌지 돌아봐야

정월보름을 맞이해 선방에서는 해제를 했는데 우리 복지관 어르신들은 집에서 강제로 결제 아닌 결제를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선방에서는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리기 위해 내려놓는 공부를 하는데 어르신들은 지난겨울을 어떻게 보내셨을까 궁금해집니다. 

나이든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인생이 보인다고 합니다. 오늘 만난 어르신들은 한결같이 얼굴이 편안하고 환했습니다. 코로나19로 집에 계시면서도 나름대로 공부를 하셨나 봅니다. 나도 내려놓으려고 부단히 공부를 하지만 경계에 당하면 마음속 밑바닥에서 욕심이라는 놈이 스멀스멀 올라오기도 하고 때론 화내는 마음이 일어나 어리석은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어느 가수의 노랫말에 ‘어디로 갈까요. 어떻게 할까요. 아직도 내가 날 모르나봐요. 언제쯤 웃으며 날 볼 수 있을까. 언제쯤 모든 걸 다 내려놓을 수 있을까…(중략)… 어느 날 문득 생각해보니 내가 없으면 세상이 없듯이 날 위해 이제는 다 비워야하는데, 아직도 내가 날 모르나봐요’라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없으면 세상이 없으니 다 비워야한다’는 노래를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와 부처님 가르침이네’ 하고 감탄을 했습니다. 

예전 강원에 있을 때 일입니다. 관응 큰스님이 가끔 오셔서 대중을 위해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큰스님께서는 “내가 없으면 세상도 없다” 하시면서 눈을 한번 감아보라고 하셨습니다.  “뭐가 보이느냐”고 질문을 하시고는 잠시 후 다시 “눈을 떠보라”고 하셨습니다. “어떠냐, 세상이 어디에 있느냐”고 되물으시면서 “세계는 다 자신의 마음속에 있으니 내가 없으면 세상도 없다. 열심히 정진하라”고 당부하시던 기억이 납니다.

안거기간 정진할 때도 내려놓는 연습을 부지런히 합니다. ‘방하착(放下着). 마음속의 집착을 내려놓는다’는 뜻입니다. 마음속에 한 생각도 지니지 말고 텅 빈 허공처럼 유지하라는 뜻이죠. 텅 빈 마음, 즉 마음의 실제를 일컫는다는 것입니다. 안거 동안 열심히 방하착하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내려놓는다고 하니 이런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산속에서 실족해 절벽 아래로 굴러떨어지던 사람이 다행히 나뭇가지 하나를 붙잡고 대롱대롱 매달렸습니다. “살려달라”는 비명을 듣고 마침 길을 지나던 스님 한 분이 달려왔습니다. 나뭇가지를 붙잡고 매달린 사람은 앞을 못 보는 맹인이었습니다. 스님이 살펴보니 그가 붙잡고 있는 나뭇가지는 땅바닥에서 겨우 사람 키 반 정도 높이에 있었습니다. 손을 놓고 뛰어내려도 다치지 않을 정도의 위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스님이 외쳤습니다. 

“지금 잡고있는 나뭇가지를 그냥 놓아 버리시오. 그러면 더이상 힘 안 들이고 편해질 수 있소!” 

그러자 절벽 밑에서 맹인이 애처롭게 애원했습니다. 

“내가 지금 이 나뭇가지를 놓으면 천길만길 낭떠러지로 떨어져 즉사할 것인데 앞 못 보는 이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어 제발 나 좀 살려주시오.”

그러나 스님은 “살고 싶으면 당장 그 손을 놓으라”고 계속 소리쳤습니다. 결국 힘이 빠진 맹인이 손을 놓자 몸이 땅 밑으로 툭 떨어지며 가볍게 엉덩방아를 찧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몸을 가다듬은 맹인은 졸지에 벌어졌던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파악하고 멋쩍어하며 인사도 잊은 채 황급히 자리를 떠났습니다. 

희유 스님

실상을 알지 못하니 어리석은 생각을 하게 되고 마치 죽을 듯이 겁에 질려 있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이야기 속 맹인과 다를 바 없을지도 모릅니다. 손을 놓으면 편해질 것을 꼭 움켜잡고 놓지 못하는 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입니다. 
 

서울노인복지센터 시설장 mudra99@hanmail.net


[1575호 / 2021년 3월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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