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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일언지하 돈망생사

기자명 이제열

금강경 소리에 마음이 열리다

남종선 돈오돈수는 혜능서 유래
금강경 구절에 큰 깨달음 얻어
깨달음은 ‘문·사·수’로 완성되나
곧바로 부처 지견 드는 게 돈오

대한불교조계종은 선종을 표방하는 종단이다. 조계종이라는 명칭은 혜능선사가 조계산에 머물러 가르침을 폈기에 만들어진 명칭이다. 따라서 조계산은 혜능선사를 상징한다. 달마대사를 통해 전해진 ‘직지인심견성성불’의 심인법(心印法)은 혜능선사를 정점으로 만발한다.

혜능선을 일명 남종선이라고 부른다. 홍인선사의 문하에서 혜능과 함께 수행하던 신수선사가 북쪽에서 법을 폈으므로 이를 북종선이라 하고 혜능선사는 남쪽에서 법을 폈으므로 남종선이라 한다. 혜능의 남종선의 특징은 돈오돈수법이다. 이에 반해 신수의 북종선은 점수점오법이다. 돈오돈수가 단박에 마음을 깨쳐서 더 이상 닦을 것이 없이 그대로 부처가 되는 것이라면 점수점오는 점차로 수행하여 단계적으로 깨달아 마침내 부처가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남종선은 언하에 즉각적으로 깨닫는 것을 중시하고 북종선은 실천 수행을 중시한다.

남종선이 돈오돈수를 강조한 데는 혜능선사의 깨달음 과정에서 유래한다. 혜능선사는 본래 글을 몰랐으며 홀어미를 모시고 땔 나무를 팔아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이런 그가 어느 날 객점 집에서 땔나무를 팔고 돈을 받아 나오려는데 한 손님이 방 안에서 글 읽는 소리가 들려왔다. 손님이 읽는 경은 ‘금강경’이었다. 혜능선사는 들려오는 경이 어떤 경인지는 몰랐으나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무슨 기연이었을까? 손님이 ‘금강경’의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을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혜능선사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마음이 활짝 열려 큰 깨달음을 얻었다. 혜능선사는 곧바로 손님에게 방금 읽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손님은 ‘금강경’이라고 답하였다. 기주 황매현의 동선사라는 절에 홍인대사가 중생을 교화하시는데 그 곳에서 받은 경이라고 일러주었다. 또 손님은 혜능선사를 숙세의 인연이라고 생각해 은 10냥을 주더니 노모를 편히 모시라 하고 황매에 가서 홍인대사를 찾으라 하였다. 혜능선사는 곧바로 어머님과 하직한 다음 황매에 이르러 홍인대사를 친견하였다. 그 뒤로 혜능선사는 홍인대사의 법을 이어 육조(六祖)가 된 다음 조계산에서 회상을 열고 수많은 제자와 사람들을 교화했다.

이 일화에서 보듯 혜능선사가 깨달음을 얻게 된 계기는 경전 한 구절을 듣게 된 데에서 비롯됐다. 수행의 정도에 따라 마음을 차례로 깨달은 것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단박 깨달은 것이다. 어떻게 칠흑 같은 무명과 수미산 같은 업장이 스승의 말 한마디에 한꺼번에 해결될 수 있는지 체득해 보지 않은 사람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혜능선사의 이러한 돈오돈수법은 그 이전 중국 선종의 초조인 달마로부터 시작됐고 이후 오가칠종이 뒤를 이어 받아 중국선종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남종선의 특징은 ‘일언지하 돈망생사(一言之下頓忘生死)’로, 말 한마디 듣자마자 삶과 죽음을 뛰어넘는 가르침이다. 선종의 역사에는 언하에 돈오돈수를 이룬 수행자들이 수없이 많다. 혜능선사의 설법을 기록한 ‘법보단경’에는 선사가 대중에게 어떻게 수행하라는 구체적인 방법을 찾기 어렵다. 다만 스스로 ‘금강경’ 구절에 의해 깨달음을 얻은 까닭에 ‘금강경’의 수지독송만은 적극 권하고 있다. “선지식아 만약에 깊은 법계와 반야삼매에 들고자 하면 모름지기 반야행을 닦고 금강반야경을 지송하라. 곧 견성할 지니 이 공덕이 무량무변함을 경 가운데에서 분명히 찬탄하시지 않았는가? 이를 다 말로 할 수 없느니라.” 선사가 자신의 설법을 마하반야바라밀법이라고 명명한 것도 이 때문이다.

불교의 지혜에는 세 종류가 있다. 문혜(聞慧)와 사혜(思慧)와 수혜(修慧)이다. 문혜는 스승의 가르침을 들어서 생긴 지혜이고, 사혜는 사유하고 궁리해서 생긴 지혜이며, 수혜는 선정이나 기타의 수행 등을 통해 생긴 지혜이다. 깨달음은 이 세 가지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그렇다고 깨달음이 반드시 이러한 단계의 지혜를 통해야만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가르침을 듣자마자 곧바로 부처의 지견에 드는 일이 있다. 육조 혜능선사에게 들린 ‘금강경’ 소리는 세 가지 지혜를 뛰어 넘어 곧바로 부처의 지견에 들게 하는 돈오법문이었던 것이다.

이제열 법림선원 지도법사 yoomalee@hanmail.net

 

[1575호 / 2021년 3월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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