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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해제법어 형식과 내용

방장스님 해제법문 읽혀지지가 않는다

예부터 글 쓰는 교육 마친 다음에 화두 들고 실참하게 해
그 과정 마친 스님들이 대중에게 존경 받고 시대 이끌어
오늘날 해제법문 의미 전달 어려워…생생한 체험 전달 중요

당송시대 선원에선 법문이 수시로 이뤄졌다. 사진은 중국 선종을 대표하는 선사 중 한 분인 조주 스님이 머물며 법을 펼쳤던 백림선원. 법보신문 자료사진.
당송시대 선원에선 법문이 수시로 이뤄졌다. 사진은 중국 선종을 대표하는 선사 중 한 분인 조주 스님이 머물며 법을 펼쳤던 백림선원. 법보신문 자료사진.

이번에는 출가불자 즉 스님들을 대상으로 한 해제법어(解制法語)의 ‘형식’과 ‘내용’을 말해보고자 한다. 결론을 먼저 말하면, 지금 같은 ‘형식’으로는 의미 전달이 제대로 안 된다. ‘내용’도 화두 들기 분상에서 일어나는 살아있는 체험이어야지 시문학 흉내나 내어서는 안 된다.

안거란 선종 사찰에서 스님들이 모여 살며 스승의 지도를 받는 수행이다. 그때의 스승을 ‘아사리’ 또는 ‘화상’이라 부르는데, 선원장 및 방장 내지는 조실이 그런 급에 해당한다. 사실 이 문제를 불교철학 교수가 논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어려운 일이다. 잘못하면 선승 지도자를 비판하는 모양으로 비칠 염려도 있다. 그렇다고 저분들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는데도 가만히 있는 것은, 오히려 빛나는 우리 선종을 배반하는 일이다. 설사 그렇더라도 수행하는 자체만으로도 필자는 그분들이 고맙다.

말하기 어려우면 피하는 것도 지혜이다. 또는 좀 더 숙고했다가 다음에 말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런데 수행자를 지도하는 문제는 피할 수도 더 미룰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같은 이름하에 다양한 불교(佛敎)가 이미 우리 사회에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문에서 양질의 스님을 길러내야 하는데, 그 책무가 방장과 선원장에게 있다. 그리고 그 교육의 한 과정이 법어(法語)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말하고 있듯이, 우리 사회는 이미 ‘다(多)종교 사회’이고, ‘다(多)사상(철학) 사회’이고 다(多)문화 사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방불교’ 내지는 ‘초기불교’라는 이름하에 다양한 ‘수행이론’이 소개된 지 오래다. 명상도 별의 별 이름의 명상들이 유행한다. 이런 속에서 선종의 깃발을 걸었으면, 선종의 종지와 종풍으로 제자를 길러야 한다.

중국 당나라 시대의 철학, 그 중에서도 선과 화엄 철학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필자는 당나라 후기에 그런 유사한 일이 있었던 것을 잘 알고 있다. 당나라 시대는 서역 내지는 유럽과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사상적으로도 다양했다. 게다가 ‘오경정의(五經正義)’가 국가적으로 공표되면서 유교(儒敎) 관련 서적들이 정비되었고, ‘명경과’로 나라의 인재를 선발했다. 한편 당 황실의 지원을 받은 도교(道敎)의 상청파는 ‘도교의추(道敎義樞)’를 출간했다. 또 ‘삼동옥강(三洞瓊綱)’(총3700권)을 편수하여 송대의 ‘운급칠첨(雲笈七簽)’과 명대의 도교대장경 ‘정통도장(正統道藏)’ 제작의 길을 터놓았다. 게다가 ‘숭현과’ 과거시험으로 도사(道士, 도교의 성직자)들이 배출되었다.

불교 내부 사정도 만만치 않았다. 인도를 다녀온 현장법사에 의해 유가유식파의 서적들이 번역되었고, 게다가 위진남북조시대 길장 스님과 혜원 스님은 수당으로 이어지는 다리 역할을 했다. 불교의 고승들은 다양한 철학들 속에서 갈피잡기에 골몰했고 저마다 결과물을 제시했다. 그 과정에서 밖으로는 유교와 도교와 경쟁했고, 안으로는 소위 각 종파의 우열을 논하기 시작했다. 두드러진 종파만 해도, 지론종과 삼론종과 천태종, 그리고 당나라 시대에 들어서는 법상종과 화엄종이 번성했다. 이런 지식 환경 속에서 선불교가 신흥 종교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온갖 천대와 고생은 양·당·송 3대의 ‘고승전’ 곳곳에 보인다.

이런 배경 속에서 ‘부처님의 가르침’ 즉 ‘불교(佛敎)’의 핵심이 무엇이냐? 수행은 어떤 방법으로 할 것인가? 이런 굵직한 문제들을 종파마다 제시했다. 시대가 조금 내려오기는 하지만 오대와 송대를 지나면서 정토종까지 합세했다. 중원 땅에서 펼쳐지는 이런 찬란한 철학은 ‘중화(中華)’를 꽃피워 ‘변방(邊方)’을 갈라놓았다.

한반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조선 초기 사찰 분포 상황을 보면, 화엄종, 천태종, 남산 율종, 조계종, 자은종, 열반종 등이 대세였다. 그러나 조선의 불교 탄압은 긴 세월 ‘무종산승(無宗山僧)’을 만들었다. 그래도 자립정신이 강했던 조계 선승들만은 산속에서 법맥을 이어왔다. 순조 때에 화엄교학 관련 책을 실은 상선이 임자도에 표류하면서, 법맥으로는 선승이면서도 교학을 연구하는 풍조가 생겼다. 그리하여 (1)먼저, 규봉의 ‘도서’, 자선의 ‘기신론필삭기’, 규봉의 ‘원각경약소초’, 청량의 ‘화엄경소초’로 교육의 가닥을 잡았다. 그런 (2)다음에, 사교입선(捨敎入禪; 교를 버리고 선으로 들어간다)하여, 고봉의 ‘선요’, 대혜의 ‘서장’, 도원의 ‘전등록’, 혜심의 ‘선문염송’으로 수행의 갈피를 잡았다.

이렇게 책 읽고, 글 쓰는 교육을 다 마치고, 그런 다음에는 화두를 들어 실참하게 했다. 실제로 그런 과정을 온전하게 다 밟는[履歷] 이들은 드물었지만, 기준만은 서 있었다. 그런 스님들이 조정이나 당시 사대부들에게 존경을 받았고, 시대를 이끌었다.

현대사회가 되면서 다양한 지식 환경은 더 넓어졌다. 서유럽의 방대한 철학과 종교 사상이 들어왔다. 모든 승려들이 이것을 공부할 필요는 없지만, 지도층 누군가는 공부해야 한다. 그리하여 자신이 속한 종교의 입장에서, 아니 더 내부적으로 들어가 자신이 속한 종단의 종지에 입각하여, 지금 이곳을 살아가는 세상과 제자들에게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이렇게 살아가자”, “저렇게 살아가자”라고 말이다. 그럼 과연 대승권에 그런 사례가 있는가? 있다. 티베트 불교계에는 달라이라마가 있다. 일본 불교계의 종단은 거의 종립대학을 세웠고, 그곳 교수는 모두 승려로서 종문의 교학을 담당한다. 중국의 경우는 교학에 능통하고 고전 언어에 뛰어난 이제 막 50세를 넘은 방장(方丈) 80여명이 각 산문에 포진해 있다.

불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 사상도 분석과 논증을 피해갈 수 없다. 믿음에 의한 선언만으로 진리가 되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논증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모든 것은 행동으로, 언어로, 생각으로, 즉 신구의(身口意) 3업으로 소통되어야 한다. 소통이 중요하다. 합리적 논증에서 밀리는 종교는 이미 서구에서는 몰락하기 시작했고, 한국도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지난 2월26일(음력 1월15일)로 각 선종의 산문에서 해제를 했고, 그에 따르는 방장 스님들의 해제법문이 신문지상에 실렸다. 도저히 읽혀지지가 않는다. 한글이면 한글의 문법에 맞추어 써야 하고, 한문이면 한문 문법에 맞추어 써야 한다. 그것도 전거 있고 우아한 즉 전아(典雅)한 문체로 말이다. 중화(中華)의 꽃을 피웠던 당나라 시절, 유·불·도 3교, 다시 불교 내부의 다양한 종파 속에서, 당시만 해도 신흥종교였던 선불교의 수행승들이 남긴 어록들을 보자. 글도 좋고, 뜻도 좋다. 짧은 시기에 단박에 천하 지성인들의 마음을 휘어잡았다. 종문의 자손이라면서, 아직도 ‘쉰내 나는 국[殘羹]’을 남들 먹으라고 내놓을 수는 없지 않을까.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ananda@yonsei.ac.kr

[1576호 / 2021년 3월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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