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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온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건강검진을 받는다. 겨울이 졸린 듯 하품을 하고, 봄이 막 기지개를 켜고 기상하려는 순간에. 어쩌면 나 또한 생동하는 봄의 기운을 빌려 한 해 동안 별 탈 없이 잘 지내기를 바라는, 의학적인 주문(呪文)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랬었다. 여태껏 봄은 언제나 ‘오는(生)’ 것이었지 결코 ‘가는(滅)’ 것은 아니길 희망했었다. 군대 가던 그해의 까마득했던 봄 한 번을 제외하고는…. 이날치 밴드가 ‘범’ 내려온다고 소리치며 흥겹게 춤을 춘다. 내 눈에는 ‘범’보다 먼저 ‘봄’이 내려 왔지만, 뭐 ‘봄’이나 ‘범’이나! 

마침내 백신접종이 시작되었다. 코로나19가 발생한 지 402일째 되는 날이라고 한다. 백신을 운반하는 특수차량의 행렬과 삼엄한 호위는 마치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다. 제발 백신이 코로나19에 시달리는 국민을 안심시켜 줄 최종 병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코로나가 우리의 일상을 엉망으로 만든 지도 1년이 훌쩍 지났다. 사람들은 지쳤고 인내심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마스크의 착용 여부를 둘러싸고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는 크고 작은 다툼들은 이런 저간의 사정들과 무관치 않은, 결코 웃지 못할 사건들이다. 우리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온몸으로 실천할 것을 강요받았다. 가장 기본적인 사회관계를 금지당한 참기 어려운 기분을 도대체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코로나 블루란 신조어도 생겨났다. 코로나19의 세계적인 유행은 인류에게 위험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대자연의 경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연기적 인과의 사슬이 빚어내는 업보의 의미를 다시 한번 더 떠올려 보았다. 

처음엔 사회적 거리두기란 것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집에서 싸간 도시락으로 점심과 저녁을 해결하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식당에 갈 필요도 없었고.

그러다 어느 날 초대받은 식당에서 코로나19 신고식을 톡톡히 치렀다. 짜증 섞인 직원의 안내 목소리도 귀에 거슬렸지만, 방문 시간과 이름 및 연락처를 정확하게 적으라고 당당하게 요구하는 그의 태도에 불현듯 진심(瞋心)이 스멀스멀. 좋아하는 스파게티를 먹는 둥 마는 둥. 애꿎은 식당 주인에게 화난 얼굴을 할 수도 없고, 참. 시간이 흐를수록 사회 분위기는 점점 더 경직되었고, 서로에 대한 불신의 장벽도 높아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디지털의 시대가 곧바로 공포의 시대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했다. 가게마다 QR코드와 얼굴인식 기능을 갖춘 장비들이 설치되는가 싶더니, 사람들도 나들이하기를 꺼리거나 아예 중단해 버렸다. 이런 풍경은 왠지 낯설고 어색하다. 적어도 나에게는. 사람 사이에 감히 기계가 끼어들어 간섭하는 것과 같은 이 불편함. 나의 동선(動線)이 어디엔가 무삭제기록으로 남는다는 찜찜함은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그 무엇과도 같은 것.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는가를 마음만 먹으면 추적할 수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은 아무도 바라지 않은 것일 터. 말로만 듣던 원형 감옥에 갇힌 불안감이 이런 것일까 싶다.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무기력증. 무서운 빅 브라더의 시대가 현실이 되었다고 혀를 차는 사람도 있었다. 하긴 내가 너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오는 봄이야말로 진짜 봄이다. 가는 봄은 벌써 봄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봄과는 다른 이름인 초여름으로 불리지 않던가. 나는 기원한다. 봄은 ‘가는 봄’이 아니라 ‘오는 봄’이기를, 아쉬워하며 손 흔드는 봄보다 맨발로 뛰어나가 맞이하는 봄이기를, 그리고 올봄에는 어제 대신 오늘과 내일을 함께 꿈꿀 수 있기를. 그런데 우리가 좋아하는 봄노래의 제목은 왜 한결같이 ‘봄날은 간다’여야만 할까. 백설희의 옛 노래도 김윤아의 요즘 노래도 모두 ‘봄날은 간다’이니 말이다. 그대여! 정녕 봄날은 오는가, 가는가.

허남결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 hnk@dongguk.edu

 

[1576호 / 2021년 3월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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