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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부안 개암사 사천왕문

기자명 법상 스님

깨달음은 어리고 늙음에 있지 않다

노스님의 유나임명 반대 소식에 
응암 스님이 떠나면서 지은 게송
복사꽃에 자신 처지 빗대 표현

부안 개암사 사천왕문. 글씨 원담진성(圓潭眞性 1926~2008) 스님.
부안 개암사 사천왕문. 글씨 원담진성(圓潭眞性 1926~2008) 스님.

江上青山殊未老 屋頭春色放敎遲
강상청산수미노 옥두춘색방교지
人言洞裏桃花嫩 未必人間有此枝
인언동리도화눈 미필인간유차지
(강 건너 푸른 산은 아직 늙지 않았는데 / 집 앞의 봄빛은 더디 찾아오는구나. / 사람들은 동네의 복사꽃이 아직 어리다고 하지만 / 이런 나뭇가지는 꼭 인간 세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네.)

주련의 내용은 ‘선종잡독해’ 권2, ‘송원숭악선사어록’ 제2권, ‘오가정종찬’ 권제2, ‘선원몽구습유’ 제1권 등에서 나오는 내용이다. 참고로 ‘선종잡독해’는 ‘대혜선사선종잡독해’ 또는 ‘보각종고선사어록’의 다른 이름이다. 이를 줄여서 ‘잡독해’라고 흔히 말한다.

송나라 임제종의 응암담화(應庵曇華 1103~1163) 스님이 조동종의 수남수수(水南守遂 1072~1147)선사 아래에서 시자로 있을 때 어느 날 수남 스님이 멱살을 움켜잡고 “너의 공안을 하나 헤아려보자”했다. 그러자 응암 스님이 “온 누리가 하나의 공안이거늘 무엇을 헤아리려고 합니까?”했으나 수남 스님은 여기에 답을 하지 못했다. 이에 응암 스님은 수남 스님의 근기가 둔함을 알고 그의 곁을 떠났다. 그 후 호구소융(虎丘紹隆 1077~1136) 스님 아래서 수행했다. 호구 스님은 어느 날 응암 스님을 유나라는 직책에 임명하려 했다. 그러자 선원의 노스님들이 응암 스님은 나이가 어리다는 핑계로 반대했고 응암 스님이 위와 같은 게송을 짓고는 떠나 버렸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이 시문이 나오게 되는 연유다.

강 건너 푸른 산은 과연 무엇일까? 아마 피안을 말할 것이다. 여기서 피안이라는 것은 열반이라는 개념보다는 공부의 깊이를 말한다. 그리고 수는 특히, 유달리란 표현으로 쓰여 이어지는 미노를 뒷받침하고 있다. 미는 장차, 아직이라는 의미로, 노는 노련하다는 뜻으로 쓰였다. 고로 아직 노련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직 제대로 푸르지도 않았다는 의미로 아직 공부가 원만하지 못하다는 것을 비유하고 있다.

옥두라는 표현은 집, 방안, 실내를 뜻한다. 춘색은 봄철이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경치나 분위기를 말함이다. 그러므로 옥두춘색은 자신의 주변에는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봄이 오기 이전의 절기는 겨울이다. 겨울은 춥고, 꽁꽁 어는 계절이기에 아직 공부가 그러하다는 것을 말함이다. 방교지는 배움에서 벗어나려면 아직 멀었다는 표현이다.

동리는 마을 안이라는 표현이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소임을 임명하려고 하자 이를 반대한 회중의 노스님들을 지목하는 내용이다. 왜냐하면 인언회중이라 해도 될 것을 굳이 동리라는 표현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도화는 복사꽃을 말한다. 복사꽃은 봄철에 피는 꽃이다. 여기서는 다소 도교적인 표현으로 복사꽃 하면 무릉도원을 말하기에 이는 공부가 그러하다는 의미다. 고로 복사꽃은 당연히 이 시문을 지은 응암담화 스님 자신을 말한다. 눈은 어리다는 표현이다. 그러므로 나이가 회중의 노스님보다 어린 자신을 빗대어 말한 것이다.

유나라는 직책은 선원에서 대중의 기강을 총괄하여 담당하는 소임으로 대중의 수행에 법열을 유발시키는 것이기에 이를 열중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입승 또는 찰중이라고 흔히 표현한다.

이러한 복사꽃 나뭇가지는 인간 세상에만 있는 것이 아닌 자신이 곧 복사꽃이라는 것을 은근히 나타내고 있다.

무릉도원에 계곡과 폭포, 복사꽃이 있듯 우리가 사는 세상 곳곳도 무릉도원이다. 오늘날에는 감사함과 긍정의 마인드를 가졌다면 무릉도원이 눈 앞에 펼쳐질 것이다. 그러기에 부처님께서는 ‘정견’ 즉 ‘세상을 바르게 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법상 스님 김해 정암사 주지 bbs4657@naver.com

 

[1576호 / 2021년 3월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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