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종교인들이 존경받지 못하는 이유를 통해 바라문들을 교화하다
59. 종교인들이 존경받지 못하는 이유를 통해 바라문들을 교화하다
  • 이필원 교수
  • 승인 2021.04.05 13:25
  • 호수 158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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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이라서가 아니라 존귀한 행동할 때 존경해야

직업의 귀천 구분은 무의미
정당함과 그렇지 못함 있어
탐진치를 벗어난 행동이라야
존중과 공경을 받을 수 있어

인도에 계급제도인 카스트제도가 확립된 것은 우빠니샤드 사상이 등장할 무렵인, 대략 기원 전 7~6세기 무렵이다. 이 시기에 또한 기존의 바라문교를 비판하는 사문들(자유사상가)이 등장하게 된다. 불교 역시 사문종교 가운데 하나였고, 그래서 부처님도 종종 ‘사문 고따마’라고 불렸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종교인들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는 경우가 많다. 흔히 성직자라고도 하는데, 힌두교/바라문교의 사제들은 성직자라고 불릴 수 있다. 그리고 개신교의 목사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불교의 스님들은 성직자라는 말이 온당치 않다. 대신 수행승으로 불려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수행승은 먹고 살기 위해 출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정도 꾸리지 않는 것이다. 만약 가정을 꾸리거나 재화를 위해 출가했다면 수행승이 아니라 직업인이라고 불려야 할 것이다. 성직자 역시 직업인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보면 성직은 없다. 어찌 직업에 귀천이 있고, 성스러운 직업과 속된 직업이 있을까. 정당한 직업과 그렇지 못한 직업이 있을 뿐이다. 

‘맛지마 니까야’ 150번 경이 ‘나가라윈다의 장자들에 대한 경(Nagaravindeyya sutta)’이다. 이 경전에 등장하는 나가라윈다는 코살라국(Kosala)에 속한 바라문들의 집성촌이다. 부처님께서 이곳을 방문하시자 바라문의 장자들이 몰려와 부처님께 인사올리고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이들 바라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을 하셨다.

[붓다] 장자들이여, 다른 외도들의 유행자들이 그대들에게 다음과 같이 ‘어떤 수행자들이나 바라문들이 존중받지 못하고 존경받지 못하고 공경받지 못하고, 공양받지 못하는가?’라고 질문한다고 합시다. 장자들이여, 이와 같이 질문 받으면, 이 외도의 유행자들에게 이와 같이 답해야 할 것입니다.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시각이나 청각이나 후각이나 미각이나 촉각이나 정신에 의해 인식되는 대상에 대하여 탐욕을 떠나지 못하고 성냄을 떠나지 못하고, 어리석음을 떠나지 못하고 마음이 평화롭지 못하고, 신체적으로나 언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시비를 불러오는 일을 행하면, 이와 같은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존중받지 못하고 존경받지 못하고 공경받지 못하고 공양받지 못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비록 우리도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정신에 의해 인식되는 대상에 대하여 탐욕을 떠나지 못하고 성냄을 떠나지 못하고, 어리석음을 떠나지 못하고 마음도 평화롭지 못하고, 신체적으로나 언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시비를 불러일으키는 일을 행하지만, 그들 존귀한 사문이나 바라문들에게서 보다 높은 올바른 행위가 보이지 않으면, 우리는 그들을 존중하지 않고 존경하지 않고 공경하지 않고 공양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장자들이여, 그대들이 이와 같이 질문 받으면, 그 외도의 유행자들에게 이와 같이 대답해야 할 것입니다. 이들 장자들은 기본적으로 바라문 계급으로서 성직자에 해당한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이들에게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것과 관련한 설법을 하신 것이다. 수행승이나 성직자들이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것은 경문에 나오듯이, 그들의 삶이 일반인들과 달리 도덕적으로 훌륭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의 삶이 탐욕에 찌들어 있고, 분노에 차 있으며, 어리석다면 우리가 그들을 존경할 아무런 이유도 없는 것이다. ‘상윳따 니까야 결발수행자의 경(Jaṭilo sutta)’에서 먼발치에서 결발행자들을 보고 존경의 인사하는 코살라의 빠세나디왕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대왕이여, 그들이 도덕성(계)을 갖추고 있는가 하는 것은 함께 오랫동안 같이 살아보아야 알지 짧은 동안에는 알 수가 없습니다. 주의 깊어야 알지 주의가 깊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지혜로워야 알지 우둔하면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은 겉모습만 보고 고개를 숙이지는 않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수행자나 성직자는 자신의 행위가 존경받을 만한 것인지 깊이 성찰해 보아야 할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바라문 장자들은 기뻐하며 재가신자가 되었다.

이필원 동국대 경주캠퍼스 교수 nikaya@naver.com

[1580호 / 2021년 4월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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