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언제 안겨도 넉넉한 어머님 품같은 후덕한 산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산은 백두산에서 발원해 금강산. 태백산. 속리산. 덕유산을 거쳐 지리산에서 끝난다. 한반도를 세로지르며 흐르는 `백두대간'이 그것을 말해준다. 곤륜산에서 발원한 중국대륙의 세 지기 중 가장 좋다는 북쪽의 북룡이 흘러 마루를 이룬 곳이 백두산이다. 이 백두산의 지기가 백두대간을 따라 남으로 흘러 흘러 그 최후의 힘을 뭉친 곳이 지리산이다. 그래서 지리산은 서산대사 휴정 스님이 말한 것처럼 "웅장하나 수려함은 떨어지는" 남성적인 산이다.
`백두산 지기가 흘러내린 산'이거나 `백두산의 맥이 잠시 정류하였다'는 뜻의 `두류산'으로 달리 불리는 것도 지리산이 백두산의 지기를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지리산은 한반도 남부에서 백두산을 대변하는 영산으로 추앙받는다. 신라.고려시대에는 오악의 하나로, 조선시대에 사악신의 하나로 나라에서 국가와 백성의 행복을 빌며 제사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렇듯 지리산이 우리 민족의 숭상을 받아온 산이기에 민족의 주체의식을 상징하는 의미를 띠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이리라.
지리산의 서북쪽 기슭, 경남 마천을 향해 흘러가는 만수천 강변 완만한 분지 위에 고즈넉이 자리잡은 실상사는 민족주의적 풍수사상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사찰이다.
실상사는 증각대사 홍척 스님이 "이곳에 절을 세우지 않으면 우리 나라산천의 정기가 일본으로 건너간다"고 하여 신라 흥덕왕 3년(828)에 창건한 절이다. 신라 구산선문의 하나인 실상산문을 이룬 이 절은 산문의 2대조 수철스님과 3대조 편운스님이 절을 크게 중창하여 선풍을 떨쳤던 곳이다.
운산 스님(실상사 주지)은 "우리나라의 국운이 실상사의 융성과 궤를 같이 한다"고 말한다. 실상사가 번창하면 나라 또한 융성하고 실상사가 쇠락하면 나라의 국운 또한 쇠퇴한다는 것이다.
운산 스님은 "그래서 숭유억불 정책으로 불교가 침체 속에 허덕일 때도 실상사만은 국가의 지원을 받았다"고 전한다.
실상사는 세조 14년(1468)년에 큰 화재로 폐허가 되었다. 이 절을 중창하고자 숙종 16년(1690)에 침허스님을 비롯한 스님 2백여 명이 `실상사가 번창하면 국운 또한 융성한다'는 상소문을 세차례에 걸쳐 올렸다고 한다. 숙종은 이 상소문을 받아들여 26년(1700)에 국가 지원으로 36동의 건물을 세워 중창을 이루도록 했다는 것이다.
실상사의 비보사찰로서의 성격을 파악케 하는 구체적인 예이다.
일반적으로 양택풍수의 경우 몇가지 제한이 있다. 그것은 지반이 단단하고, 급경사면을 피해야 하며, 일광이 좋고, 풍부한 물이 있어야 한다. 또 바람막이 역할을 할 산이 있어야 하고, 배수가 잘 되어야 한다는 것 등이다. "이곳 저곳을 살피고 이곳이 명당이다 싶으면 어김없이 사찰이 있다"는 지관들의 우스겟 소리를 들지 않더라도 사찰은 이런 입지 조건을 잘 갖추고 있다. 그런데 유독 실상사만은 바람막이를 할 산을 등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지리산 천왕봉을 마주하며 자리잡았다. 왜일까,
실상사의 이런 좌향은 비보사찰로서의 성격에 연유한다.
"이곳은 덕유산에서 흘러온 지기와 지리산의 지기가 만나는 곳입니다. 삼정봉에서 천왕봉에 이르기까지 주로 1천미터급의 봉우리들이 실상사를 외호하고 있지요."
운산 스님이 말하는 실상사 주변의 형세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을 주변봉우리의 형세를 살펴 매화꽃이 떨어져 향기를 낸다는 `매화낙지형' 형세로 평가하기도 하고, "주변의 용맥과 수맥이 연꽃과 같다"하여 `연화부수형'의 길지로도 평가한다.
"이곳에서 만난 지리산과 덕유산의 지기는 천왕봉을 넘어 일본인들이 민족적 영산으로 여기는 후지산으로 빠져 나갑니다. 그래서 실상사가 흥하면 일본이 쇠락하고 반대로 일본이 흥하면 실상사가 쇠락한다고도 하지요. 약사여래를 모셔 지기가 일본으로 넘어 가지 못하도록 차단한 것도 그런 이유에섭니다."
운산 스님의 이 말에서 실상사의 독특한 좌향은 일본으로 지기가 빠져 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운산스님이 말한 약사여래는 실상산문의 제2조 수철 스님이 4천근의 철로 조성한 불상이다. 이 불상은 다른 불상과 달리 좌대가 없다. 그냥 맨바닥에 모심으로써 일본으로 빠져 나가는 지기를 막는 거대한 쇠말뚝 역할을 하도록한 것이다.
지금은 소실되고 주춧돌만 남았지만 범종각 뒤에 있던 5층 목탑지도 그런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운산 스님은 전했다.
실상사의 금당인 보광전 안에 있는 종에도 그런 비보적 장치가 마련되어있다. 이 종의 당좌(종을 치는 부분)에는 일본 지도가 그려져 있는데, 이지도를 매일 침으로써 일본으로 흘러가는 지기를 교란시키겠다는 의도다. 이종을 치면 일본이 망한다는 소문이 돌아 일제 말기에는 주지 스님이 문초를당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실상사가 자리한 곳은 완만한 산간분지이다. 더욱이 그 옆으로 만수천이 흐르고 있어 지기가 모이기 보다는 사방으로 흘러나가기 십상이다. 그래서 실상사가 비보사찰 역할을 하고 있는 까닭에 이곳의 지기가 함부로 새나가지 못하도록 조치해 두고 있다.
보광전 앞에 있는 2기의 석탑이 그것이다. 이 2기의 석탑은 규모와 양식이 비슷하고 상륜부가 거의 완벽하게 남아있는 등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불국사 석가탑 상륜부의 복원 때 모델이 되기도 했다. 실상사 개산과 같은 시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 탑은 지기의 의지처를 마련해 방사를 막기 위해 건립한 것이다. 하지만 만수천의 지기 방사를 막기 위해 내를 따라 파두었다는 두무소는 현재 그 위치를 알 수 없다.
"지리산 빨치산 토벌 때 지리산 화전민을 소개시키기 위해 지리산의 지기를 전해 주는 절 옆 언덕을 벌목했습니다. 올봄엔 나무를 심어 지기가 온전히 전해지도록 할 생각입니다."
복원불사와 함께 지기를 보존함으로써 실상사의 부흥을 꾀하는 운산 스님의 나무심기 계획을 들으며, 일본의 침략을 막기 위한 비보사찰로 실상사를 경영했듯이 외침만이 아니라 왜색문화의 유입을 막기 위한 정신적 지주로실 상사가 영원히 남아 있기를 기원한다.
남원 실상사=이창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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