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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칼럼-나쁜 속담

기자명 박완서
  • 사설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거의 이십년전 일이다. 우편물 중에 〈우리들〉이라는 국민학교 학급 문집이 들어 있었다. 갱지에다 등사판으로 밀어서 수작업으로 묶은 초라함 때문에 눈에 띄는 그 문집에는 그것을 편집한 담임선생님의 간단한 편지가 들어 있었는데 구슬처럼 쪽 고르고 영롱한 필치였고, 문집의 필체하고 같았다. 꽤 두꺼운 문집을 선생님 혼자 힘으로 작업했다는 걸 알 수가 있었다. 별난 열정을 가진 분도 다 있다 싶은 일종의 호기심 때문에 띄엄띄엄 훑어보다가 어느틈에 마음을 가다듬고 처음부터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때는 바야흐로 유신 말기의 암담한 시절이었다. 아이들은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를 달달달 외우지 않으면 안되었고, 중고등학생도 가슴에다 맨날 무슨 표어라도 달고 다니지 않으면 안되었다. 전체주의 사회란 무엇을 하는 것보다는 겉으로 나타내 하는 척하는게 더 중요했고 그 중 가장 효과적으로 하는 척하는 방법이 표어를 여기저기 써붙이거나 달고 다니는 일이었고, 그게 제일 심한데가 초등교육의 현장이었다.

몇마디의 목청높은 폭압적인 구호가 일사불란하게 한가지 목표를 향해 온국민을 몰고가려는 사회에서 가장 억압받고 위축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창조적인 정신이다. 창조적인 작업은 떡잎부터 자를 기세로 어린이들의 노래나, 그림, 글짓기까지 새마을 정신이 획일화시키고 있을 때였다. 국가적시책에 입김을 가장 민감하게 받는 공립의 초등교육기관에서 어쩌자고 이선생님은 아이들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겁없이 말하라고 과감하게 부추기고있었다. 그 문집은 아이들이 글짓기 시간에 일부러 쓴 글뿐 아니라 저희끼리 주고 받은 편지, 선생님한테 쓴 편지, 일기, 독후감, 심지어는 그 시대에 한창 인기있던 TV 연속극을 아이들 나름의 눈으로 비판도 하고 재미나하기도 한 글까지 온갖 글들이 실려 있고 그 글들은 하나같이 당시의 경직된 규범을 벗어나 눈치보지 않는 정직성과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살아있는 글들이었다. 나는 마치 멍청한 군중속에서 임금님은 벌거숭이라고 외치며깔깔대는 어린이를 만난 것같은 신선한 충격을 맛보았다. 어떻게 그 반 아이들에겐 그런 놀라운 일이 가능했는지, 그건 아이들의 글 사이사이에 최소한도로 그러나 적절하게 끼어든 선생님의 글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선생님의 글은 아이들의 고민에 대한 적절한 답, 기발한 생각에 대한 맞장구, 틀린 생각에 대한 익살스러운 핀잔 등 다양했지만 일관되게 흐르는 건, 위선적인 글짓기와 길들여진 고정관념으로부터 아이들을 자유롭게 해주려는 섬세하고도 진지한 노력이었다.

그는 물론 공립학교 선생님이니까 몇 년마다 학교를 옮겨 다녀야 했고,한 학교에서도 매년 담임맡은 반이 바뀌었다.

그러나 그가 내는 문집의 이름은 어느 학교 어느 반에서고 한결같이 〈우리들〉이었고 한 해도 거르는 일이 없었다. 〈우리들〉을 매개로 해서 맺어진 그와 나의 우정은 이십년 가까이나 되는 동안 우리 가족에까지 이어져,우리 아이들 모두가 존경하고 따르고 어려운 일을 의논하는 선배겸, 가장영향을 많이 받은 선생님이 되었다.

그 좋은 선생님, 한청희 선생님의 이름이 괌에서 희생된 KAL기 참사자 명단에 끼어 있었다. 그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걸 나는 지금도 믿을 수가없다. 육신이 아무리 빈 껍데기라해도 왜 시체 정도는 남겨야 하는지도 알것같다. 최초의 경악과 비통은 가라 앉았지만 문득 그를 떠올리면 그 빈자리가 너무 큰 데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심정은 물론 우리 가족 뿐만이 아닐 것이다. 사회 각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그의 제자들이 장례식에서 얼마나 비통하게 울부짖었는지 평생 결혼도 안해서 자식이 없는 걸 늘 안스러워 하던 그의 동기간들도 놀라고 한편 흐뭇해 했다고 한다. 한 사람의 목숨의 무게는 이렇게 크다. 그가 제대로 살았고, 할 일을 많이 남겨 놓았을때는 더하여, 살아남은 사람을 휘청거리게 한다.

이번 KAL기 참사를 놓고 한·미 양국이 벌이는 진상규명은 국력을 건 긴줄다리기를 연상시켰다. 국력을 건 일이기에 누구 책임인가가 밝혀지기보다는 힘 센 자가 이길지도 모른다는 걱정까지 하게 된다. 그래도 우리쪽 과실이 아닌 걸로 밝혀지길 바라는 것도 팔이 안으로 굽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그러나 모든 대형사고가 그렇듯이 이번 사고도 어느 쪽의 일방적인 과실이라기보다는 쌍방의 복합적인 과실일 가능성이 많다. 대외적으로는 우리 잘못이 없는 것으로 되더라도 우리끼리는 우리쪽 책임에 대해 묻고, 구체적인과실이 털끝만 하더라도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도록 기억하고 추궁하고 감시해야 하지않을까. 우리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랴?'에 동의(同意)해선 안된다. 그건 나쁜 속담이다. 소를 잃어도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 더군다나우리는 소가 아니라, 사람이다.


박완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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