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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천박한 방송

기자명 윤원철
  • 사설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얼마 전에 유명 일간지 사회면 머리 기사에 출가 수행길에 나선 몇 명의젊은이들 이야기가 보도되었고, 지난주에는 그 일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이텔레비전에 방송되었다. 신문 기사의 경우에는 흠잡을 문제가 별로 없었다고 생각된다. 그 일과 관련해서 거론할 만한 사항들을 간략하게나마 두루 짚고 있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종교학자들의 긍정적인 시각과 부정적인 견해를 모두 소개하여 균형을 이루고자 하였다. 흠이라면 그 학자들이 각자 그런 견해를 내면서 전제하였을 간단치 않은 근거 이야기가 기사에는 생략되었다는 점인데, 신문 기사라는 것이 지면의 제약 때문에 워낙 그럴 수밖에 없다고 체념해 줄 수 있다. 그러나 같은 소재를 다룬 지난주의 텔레비전프로그램은 매우 천박했다.

우선, 모두들 이 사회에서 크게 영달할 요건을 갖춘 그 젊은이들이 출가한 이유가 과연 무엇인지 알아보겠다는 식으로 그 프로그램의 취지를 표현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출가란 그런 요건을 갖추지 못한 사회의 열등생들이나 택하는 길이라는 말인가? 명문 대학 출신으로 높은 지위가 보장되었거나이미 달성되었고, 서른 언저리의 나이로 흔히 말하듯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들이 그 모든 것을 다 떨쳐버리고 출가하여 수행 길에 나선 경우여서 특별히 관심이 끌렸다는 점 그 자체는 심하게 탓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애지중지하는 그런 세속적 가치를 스스로 떨쳐버릴 만큼중요한 그 무엇을 종교적 가치에서 찾는 이들도 있다는 사실을 무겁게 여겼어야 했다. 그리고 그 종교적 가치란 과연 무엇인가를 탐색해 주어야 했을 텐데, 그 프로그램은 철저하게 세속적인 시각과 센세이셔널리즘을 바탕으로 제작됨으로써 아예 그런 종교 문제를 다루지 않았던 것만 못했다.

출가한 이들의 소재를 추적해서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쳐서는 카메라를숨겨서 들이대고 피하려는 이들을 쫓아 다니는 과정은, 마치 가출한 비행청소년을 추적하거나 파렴치한 범법 현장을 기습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요즘 여러 가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많이 애용하는 수법인데, 정말 중요한 주제는 생각하지 못하고 센세이션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그 천박함에 경악할 뿐이다. 얼마 전에는 청소년 문제를 다룬 어떤 영화에 여러가지 일탈적인 방황의 경력을 직접 겪은 청소년들이 배우로 출연했다고 해서 화제가 된 일이 있었는데, 그 청소년들을 출연시킨 어느 대담 프로그램에서도 그런 천박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었다. 어린 나이지만 여러 가지 어려운 경험을 통해서 자기의 삶에 대해 나름의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가치관과 신념을 세우게 된 그들을 불러놓고, 정작 청소년 문제에 관해 물어보고 들어야 할 이야기는 제쳐놓은 채 그들을 무슨 신기한 동물들처럼 대하고 있었다. 생방송을 망치지는 말아야 하겠다는 예의 때문에 억지로 끝까지 참고앉아 있었다는 그 아이들이 훨씬 성숙했고, 청소년 문제의 핵심에 대해서는아무 생각 없이 웃기는 질문만 해대는 어른들이 정 유치한 의식 수준이었다.

현대 사회에서 텔레비전을 비롯한 대중언론매체는 국가의 공권력에 버금가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것을 담당하는 이들이 그 힘의 크기에 버금가는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를 심각하게 의심케 하는 사례가 너무많다. 무지막지한 손에 공권력이 장악되면 나라 전체가 재앙에 빠지듯이,대중언론매체의 힘이 천박한 손에서 행사되면 이 사회 전체의 살림살이가 천박해지기 십상이다. 제발 각성하기를 바라고, 감당 못할 무거운 소재라면 아예 접근을 삼가고 조신하게 오락이나 생산하고 있는 조심성만이라도 갖추기를 바란다.


윤원철/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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