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25 참전 '법흥결사대' 넋어린 현장을 가다

기자명 김태형
  • 사설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맨주먹 피흘리던 계곡엔 산딸기만

법흥사 무대로 김성내 스님 등 27명 활약
시신 묻힌 골짜기 방치·당국 관심 절실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보덕사 인근 송장골. 다시 돌아온 6.26에 이곳에는 반세기가 지나도록 가슴에 사무친 한을 풀지 못하고 비명에 간 원혼들의 슬픈 노래가 메아리치고 있다.

세월의 무상함속에 구부러진 허리 한번 제대로 못펴고 송장골에 묻힌 원혼들은 바로 6.25 당시 영월군 수주면 법흥리 법흥사를 무대로 결사대를 조직, 몽둥이와 맨주먹으로 인민군과 맞서 싸우다 살해된 16명의 '법흥결사대' 대원이다.

이들의 전사(戰史)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지난해 9월 향토사학자 한상웅씨에 의해서다. 한상웅씨에 따르면 오래전부터 법흥사 인근에 이름모를 인골(人骨)이 발견돼, 이 인골의 주인공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법흥결사대의 실체를 발굴하게 됐다.

법흥결사대는 법흥사 김성내 스님을 비롯 영월지역에서 우익 또는 경비대 등에서 활약하던 25명과 인민군으로 징집됐다가 탈영해 결사대에 합류한 2명을 포함 27명으로 구성돼 있었다. 40여자루의 단도와 물푸레나무 몽둥이로 무장한 결사대는 7월4일 부터 9월 30일까지 3개월가량 법흥사를 근거지로 게릴라 활동을 전개, 인민군을 수십명 사살하고 각종 총포류를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다.

숫적 열세와 전투장비의 부족 속에서도 결사항전을 벌였던 결사대는 1950년 8월말 법흥사 노전에 은거하고 있던중 인민군들의 집요한 추적에 발각돼, 27명의 대원중 5명이 탈출하고 22명이 보덕사 인근 송장골에서 총살당했다. 다행히 이 가운데 6명이 극심한 부상을 입고 천우신조로 구출됐다. 당시 살아 남은 11명의 결사대원들 대부분은 인민군에게 체포되는 과정에서 받았던 모진 고문의 후유증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고 현재 이명준씨와 송대희씨 등이 생존, 법흥결사대의 실체를 오늘에 전하고 있다.

편안한 안식처 하나 없이 구천을 떠돌던 법흥결사대 영령들은 자신들의 근거지였던 법흥사를 맴돌면서 반세기동안 묻어두었던 한을 하소연하다가 지난해 9월 5일 법흥사 주지 도완 스님 등이 마련한 천도재를 통해 미흡하나마 맺힌 한을 풀수 있었다.

법흥결사대를 세상에 알린 한상웅씨는 "보덕사 인근 송장골에는 법흥결사대 16명의 유골이 아직도 암매장돼 있다"며 "보훈관계당국과 영월군 등에서 이들의 유골을 수습 한후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고 후손들이 긍지를 갖고 살수 있도록 작은 위령탑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6월 13일 송장골 현장을 안내한 영월군 영월읍 김정홍(75)씨도 당시의 상황을 전하며 "유족들에 대한 보상이나 예우에 앞서 유격대 활동을 했던 영령들에 대한 명예회복 차원에서 추모비를 세워 위로해야 한다"고 말했다. 16명의 결사대원들이 뒤엉켜 잠든 송장골에는 임들이 뿌린 선혈을 기억하기라도 하듯 붉은 산딸기가 슬픈 향기를 토하며 익어가고 있었다.


영월 = 김태형 기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