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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향기-희곡작가 이만희

기자명 법보신문
  • 사설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삶의 본질 천착하는 언어의 마술사"

연극인 이만희. 그는 하얀 폴라티에 감색 쟈켓을 걸치고 새털처럼 가뿐하게 사무실로 들어섰다. 가방도, 노트도, 그 흔한 호출기 하나 없이, 그나마의 두 손조차 버거운 듯 바지 주머니에 찌르고 서 있었다. 어쩐 일이요? 오랫만이요. 사무실이 갑자기 왁자해지면서 수인사가 오고갔다. 그가 글을 쓰고 그가 직접 연출한 작품 ‘용띠위에 개띠’가 한창 공연중인데, 정작의 그는 우리와의 약속을 빌미로 오랫만에 출현한 것이다. 조금치의 간격이 있을 때, 늘 설레일 수 있다는 그만의 덤덤한 지론을 엿볼 수 있다. 아니면 일단 작가의 손을 떠난 작품에 대해 선 집착을 거두는 작가로서의 근성 탓인지도 모를 일이다.

대학로 소극장에서 공연중인 ‘용띠위에 개띠’는 이만희씨 스스로에게도그렇겠지만,독자나 관객들에게도 퍽 낯선 작품이다. 희곡작가인 그가 직접연출까지 맡았다는 점도 그렇거니와, 그 작품이 다름 아닌 희극이라는 점에서 더 그렇다. 히뜩 지나가는 웃음속에도 허전한 삶의 그림자를 담그곤 하던 그가 ‘진짜’로 웃는 연극을 만든 것이다. 머리를 써서 숨은 그림을 찾을 필요없이 마음 턱 놓고 그저 웃으면 되는 연극. ‘그것은 목탁 구멍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 ‘피고지고 피고지고’ ‘불 좀 꺼주세요’ ‘문디’ 등 다소 묵직하고 사색적이었던 그간의 작품들을 기억하는 이들에겐 의외가 아닐 수 없다.

“연출요? 계획했던 건 아니구요. 배우들하고 워낙 친하다보니 하게 된것 뿐입니다. 앞으로 계속 연출할 생각도 없구요. 그리고 희극을 쓰게 된건, 가족극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됐습니다. 어느 누구하고라도 함께 들어와 마음껏 어깨를 흔들면서 웃었으면 해요.” 그가 갑작스럽게 가족극을 생각케 된 것은 우연한 동기에서 였다. 한 아버지와 딸이 모처럼 연극을 보겠노라고 대학로로 나들이를 나섰는데, 하필 얼결에 선택한 연극이 요즘 한창 얘기되는 벗기고 벗는 연극이어서 서로 난감한 마음에 애를 먹었다는 사연을 들었다. 그런데 서로를 어울러야 할 무대가 서로의 얼굴을 붉히게 했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어찌된 일인지 그의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고심끝에 그는 생경한 일이었지만, 가족극의 형태로 희극 ‘용띠위에개띠’를 쓰기 시작했다. 종내 추구해 왔던 작품세계를 백팔십도 돌려 새로운 작품을 썼을 때, 그 작가의 심중을 살피는 일만큼 두근 거리는 일은 없다. 대변혁 뒤에 가려진 야사처럼 근사한 이야기거리도 기대되기 마련이다.작가입장 또한 그럴 것이다. 허나 그는 이러한 심심한 답변으로 그 궁금증을 일축한다. 다만 그 속에서 “나는 연극인 이만희입니다.”라는 강찬 심성을 느낄 수 있을 뿐이다. 무심히 들어넘길 허물조차, 연극계를 논하는말이라면 나름의 답을 구하는 모습, 그 자체가 어쩔 수 없는 연극인으로서의 그를 느끼게 하는 까닭이다.

그의 이름 석자를 모르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그의 작품 몇개 대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불황이었다고 하는 연극판에서 그의 작품만은 불이 꺼질 줄 몰랐다. ‘피고지고 피고지고’ ‘그것은 목탁구멍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 그리고 ‘불 좀 꺼주세요’ 등 아직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 제목들은 표어처럼 선명하게 남아있을 정도다. 특히 ‘불 좀 꺼주세요’는 20개월 넘는 장기 공연에 15만명을 웃도는 관객을 동원해, 오랫동안 세간에회자되기도 했다. 그에 따라 그에겐 여러가지 별칭이 따르기 시작했다. ‘흥행작가. 언어의 마술사 이만희!’ 그러나 그이는 이런 이름들이 달갑지않다. 성공은 곧 상업화라는 이상한 등식에서 비롯된 곱지 않은 시선 때문이다.

“언어의 마술사라는 말은 편치 않습니다. 하지만 희곡작가는 언어에 관한한 나름의 자신감이 있어야 하는게 사실입니다. 희곡에는 다른 장치가 없기 때문이죠. 온전히 대사로서 인물의 역정과 삶의 질곡을 다 담아내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언어에 대해 무척 세심해야 하죠. 하지만 그게 단순히말장난처럼. 언어적 기술만 뛰어나다면, 감동까지 얻을 수는 없을 겁니다”

언어와 행동은 그에게 나란히 포행하는 두박자이다. 언어가 행동을 받쳐주고, 행동은 언어를 딛고서야 앞으로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만희씨는 연극을 예술로만 포장하지 않는다. 그에게 연극은 예술인 동시에 분명한 그의 직업인 까닭이다. 남들이 예술 운운할때 조차 그는 철저히 직업인으로서 연극을 이야기 한다. 다소 이기적이고 부르조아적인 사고라는 지적도 받는다. 하지만 그의 신념엔 변함이 없다. 연극인이라면, 그리고 평생 연극을 하려면, 적어도 연극으로 밥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중간에 포기하고, 손사레를 치며 돌아서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는 투철한 직업의식으로 연극에 임한다. 그런 마당에 직업이냐 예술이냐? 하는 분별은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의 두 발이 온전히 연극을 딛고 서 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할 뿐이다

“백상 예술상을 받을 때였어요. 시상식장에서 당시 드라마로 작가상을받는 이와 자리를 나란히 하게 됐습니다. 그 작가분 말씀이 1주일에 2백50매를 그냥 정신없이 썼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제 원고는 다합해서 5백매였거든요. 그리고 그 5백매를 쓰는데 8년이 걸렸습니다. 재미나기도 하고…헛헛하기도 하고… 한참 웃었습니다.” 3천일 동안 원고지 5백매, 결국 한장 쓰는데 6일을 소모했다는 얘기다. 그렇게 지난한 세월을 딛고 나온 작품이 바로 ‘그것은 목탁구멍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였다. 도법과 탄성이라는 두 수행자의 삶을 다룬 작품인데, 스님이라는 캐릭터도 낯설었을 터이고, 또 그 주제 또한 아름다움과 추함이라는 삶의 본질을 다루고 있어 사뭇무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목탁구멍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는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수행이라는 극한의 상황으로 표현해낸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큰 공명으로 울렸다. 그 하나의 울림을 위해 그는 8년의 세월을 원고지와 씨름한 것이다.

‘그것은 목탁구멍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에서 그를 느낄 수 있는 건우연은 아니다. 그의 삶을 두고 가장 중요했던 순간, 그가 천착해 왔던 세계가 바로 불교였고, 급기야 동국대 인도철학과 3학년때, 산문을 열고 들어섰던 그이다. 산사에서 고적하게 내면의 거울도 닦고, 부산했던 삶에 여백을 마련하기도 했던 시절. 그러나 그를 놓아주지 않았던 화두는 문학과 수행이라는 두 갈래 길이었다. 결국 아름다움에 대한 그의 끼를 져버리지 못한채 그는 다시 세상속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는 수행의 길을 떠나왔으되 그리 멀리 떠나있지는 않다. 다만그는 세상속에서, 더 작게는 무대위에서 이야기할 뿐 이다. 집착할수록 가난해지고, 죽음이라는 한계 상황과 끝없이 대결하는 우리네 삶의 질곡을 이제는 이제는 덤덤히 바라보자고 말이다. 그렇게 바라볼 때 아픔조차 기쁨만큼이나 눈부실 수 있다고, 11월 사위어가는 가을에 새로운 막을 힘차게 걷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취재수첩-질곡 깊은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스스로의 삶 돌아본다

마흔 넷, 가보지 않은 세월이지만, 회억과 회한이 먼저 들이칠 시간이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그는 마흔 네살의 지금 더 할 수 없이 행복하다고 했다.

갈등도, 욕망도 잠시 접을 수 있기에, 그 어느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고, 미리 앞당겨 달려가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어쩔수 없이 다가오는 아픔이나 슬픔조차 눈부시다고 하는 그의 낯빛을보면서 문득 해바라기를 떠올렸다. 가끔 들이치는 햇살에 마음껏 얼굴을 비비며 빙글빙글 도는 해바라기.

연극인 이만희씨는 그렇게 삶을 바라보고 있었다. 작품속에서 등장하는삶의 질곡이 유독 깊은 인간 군상들. 그는 그 속에서 슬픔보다는 질펀한 삶의 체취를 보았다.

병이 깊었던 유년 시절, 갑작스런 가난으로 헤어져 있어야 했던 어머니,뜻하지 않게 부목살이를 해야 했던 산사에서의 생활, 그런 틈새 어디서 그는 햇살이 들이치는 창문을 찾았을까. 아마도 그에게 있어, 그 드넓은 창구는 바로 연극이었으리라.

사람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펼쳐내는 작가의 자리에서 그는 조명을 밝히듯, 천천히 스스로의 삶을 바라볼 수 있었고, 이제 그는 그 조명기구를 높이 펴들고 세상밖으로 빛을 보낸다.

공연장을 나서면서, 그가 언젠가 무심히 떨군 한마디를 다부지게 챙겨들었다.

“일그러지고 썩어문드러진 삶이 어찌 아름답질 않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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