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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칼럼-돈도 만들고 전쟁도 만드는 꽃

기자명 리영희
  • 사설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지금 “돈”을 가진 사람들이 넋을 앓고 공포에 떨고 있다. 한국에서만인줄 알았더니 전세계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모든 나라에서 주식시장이 붕괴한다고 아우성들이다.

어제 밤 텔레비전 뉴스시간의 첫소식은 증권시장이 대폭발했던 1987년 10월 “암흑의 월요일”(블랙 먼데이)이 정확히 10년만에 다시 찾아왔다고 겁에 질린 소리이다. 지구상 도처의 증권시장에서 침통·경악·낙담·절망·분노·통곡……하는 인간들의 얼굴과 몸짓이 비쳐졌다. 바로 그 전날 “하루동안”에 증권폭락으로 재산을 잃은 사람들의 피해가 한국에서만도 몇 조억원에 달한다고 하니 그럴만도 하다.

나처럼 증권이니 주식이니 투기니……하는 “돈놀이”와 무관하게, 어쩌면 조금은 경멸하는 마음으로 살아온 사람에게는 그런 사람들의 처지에 동정심을 갖게 되기보다는 황당무게하다는 생각이 앞선다. 증권시장이나 주식행위가 자본주의 금융·경제 운영의 원동력이고 윤활유임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일종의 생명체라는 그 기능의 중요성도 익히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나의 경제생활 윤리관으로는 “돈놓고 돈먹는” 식의 도박판의 행태같아서 거부감이 앞선다. 돈버는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다.

어쩌면 나의 경제윤리는 아직도 자본주의 이전의 유교적 관념을 벗어나지못한(않은)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정직한 노동과 봉사의대가로,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은, 다른 종류의 노동과 봉사의 가치에 비해서 대체로 공정하고 공평한 만큼의 보수의 교환과 유통으로 운영되는 경제방식과 개인생활의 제도…… 이것이 내가 바라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정서적으로도 그렇다. 증권·주식 또는 복권 같은 것에 뎀비는 목적은 그금액이 많건 적건, “일확천금”을 꿈꾸고 기대하는 마음에서이다. 매일 매순간, 신문의 증권동향의 깨알같은 숫자를 들여다 보면서, 아침에는 기뻐날뛰고 저녁에는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과 두려움과 “기대의 배신”에 분노하는 삶이란, 상상만 해도 겁이 나고 역겹다.

나의 아파트에도 “돈놓고 돈먹는” 기대감과 “희열”로 사는 분들이 여럿 있다. 내가 그들과의 사귐에서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지 않도록 조심스러운 표현으로 나의 생각을 말하면, 그들의 답변은 한결같다. “이 선생, 모르는 말씀이야!”그러면서 나를 “딱한 사람”이라는, 연민인지 멸시인지불간키 어려운 표정으로 바라보곤 했다.

지난 며칠 사이 이 사람들이 아파트를 들랑거리는 횟수가 늘고, 발걸음이급해졌다. 엘레베이터에서 마주쳐도 그전 같지가 않다. 인사도 받았는지 않았는지, 승강기가 땅에 닿기까지의 잠시동안을 안절부절하지 못한다. 문이열리기가 무섭게 달려나간다. 그분들이 달려나간 공간에서 소리를 듣는다.

“이 선생, 모르는 말씀이야! 돈이 돈을 물고 오는 재미! 이거 증권하는 사람만이 아는 기쁨이요!”

나는 그 “돈이 돈을 물고 오는 재미”는 영원히 맛보지 못하고 인생을마칠 것 같다. “돈”을 “신”으로 모신 사람들의 삶! 그 “돈의 신”이아침에 웃으면 기뻐서 춤을 추고, 저녁에 얼굴을 찌프리면 사색이 되어서 침통·경악·낙담·절망·분노·통곡·자실……을 해야하는 삶!

한국의 증권놀이 인구는 약 7백만명이라 한다. 그들의 가족까지 합치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에게 이 월요일은 과연 “암담한 월요일”이 었으리라 싶다. 우리 아파트에서 그 “돈이 돈을 물어 오는 재미”를 설교하신 분도, 동내의 부인들의 귓속말이 나에게까지 전해진 바로는, 한 사람은 자그만치11억원, 다른 사람은 3천만원을 그 월요일에 “날려버렸다”고 한다. 그들의 받들어 모시는 자본주의 “돈의 신”은 꾀나 짓궂은 신인 것 같다. 인간의 선의를 농락하는 취미로 사는 잔인한 신일께다.

듣자니, 자본주의 정신의 기재(奇才)인 세계의 컴퓨터산업의 왕자 미국인빌 게이츠는 “캄캄했던 월요일” 하루에 17억 6천만 달러(우리 돈으로 1조6천5백4십4억원)의 재산손실을 보아, 또 세계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미국뉴욕 증권시장의 경련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미국의 억만장자들로서, 그 하루사이에 총4십억 달러(약 3조 7천억원)이상의 재산을 날렸다니, 자본주의의 신의 작난에는 공평한 일면도 있다.

우리들이 마치 인류의 유일한 경제적 생존약식인 양 믿고 받들고 있는 자본주의에서 주식시장 공황(恐慌)은 피할 수 없는 체제적 질병이다. 자본주의의 “본태성 주기적 질환”이다. 이번의 “캄캄한 월요일”이 세계적 자본주의 체제의 파탄인 “공황”으로 까지 심화할 지는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체제의 총체적 폭발로서의 “공황”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1929년 10월 24일(木요일) 저녁, 세계의 자본주의 경제·금융의 심장인뉴욕 증권시장의 대폭발로 촉발된 경제·금융 공황은 자본주의 화폐제도의토대인 금본위(金本位)제도를 삽시간에 붕괴시키고, 전세계의 자본주의 기능을 며칠 사이에 마비시켰다. 모든 나라에서 실업자의 홍수가 생겼다. 이것이 자본주의 경제사에 길이 남는 유명한 “암흑의 木요일”(BlackThursday)이다.

“암흑의 木요일”은 세 가지의 결과를 초래했다. 하나는 사회주의적 경제체제의 대안적 확산이고, 둘째는 정부의 인위(정책)적 금융조작으로 노동고용을 창출하려는 케인즈이론의 탄생이다. 세째는, 자본주의 경제의 침체와 마비를 대대적인 무기생산과 군비확장으로, 즉 전쟁준비를 다구치는 방법으로 타결하려 했던 자본주의 국가들의 전쟁정책이다. 결과는 누구에게나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10년 뒤인 1939년, 마침내 제2차 세계대전은 터졌다.

주식·증권의 긍정적 기능만을 찬양하는 일부 경제학자와 주식꾼들은 증권시장을 “자본주의 꽃”이라고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꽃’은 돈을 만들어 주는 한편으로 군비확장과 전쟁을 만들어내는 “독을 품은 꽃”이기도하다.


리영희/본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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