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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천년의 허구와 무명

기자명 정승덕
서기 1000년대라는 숫자 헤아리기가 끝나고, 여기에 다시 1000년을 더한 2000년대라는 숫자 헤아리기가 곧 시작된다고 하여, 밀레니엄 또는 '새 천년'이라는 말이 난무하고 있다. 단지 시간의 경과를 표시할 뿐인 이 말들이 인류에게 낙원이 도래하고 있는 듯한 희망의 징표로서 우리를 부추긴다. 또 한편으로 그것들은 재앙이 대기하고 있는 듯한 공포의 징표로서 우리를 위축시키기도 한다.

다가오는 새 천년은 인류에게 희망과 공포를 모두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새 천년을 공포보다는 희망의 시대로 믿고 싶어 하면서 들뜬 분위기에 편승해 가는 것은, 인간의 근본적인 무지인 무명(無明) 때문일 뿐이다. 무명으로 인해 우리는 고통의 감내를 요구하는 진실보다는 달콤함으로 위장된 허구를 추종하기 쉽다.

새 천년이 예고하는 양면 중에서 낙원은 허구에 가깝고 재앙은 진실에 가깝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징후는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으며 구체적인 증거들도 이젠 상식으로 인지되어 있다.

환경 파괴는 20세기의 인류가 함께 저지른 업이다. 이 업의 과보가 인류와 지구의 모두에게 전체적으로 미치고 있으므로, 인류는 이 과보를 극복하는 일만으로도 벅차다. 이런 터에 인류는 새로운 업을 짓고 있다는 데서 새 천년의 재앙을 예견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새로운 업이란 유전자 조작을 통한 생명 질서의 파괴이다. 지금 우리는 환경 조작의 시대를 거쳐 본격적인 생명 조작의 시대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다. 이사실을 실감시켜 주는 것이 인간을 복제해 준다는 최근의 광고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네 사람이 자기를 복제해 달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근래에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 다이옥신 파동은 인간의 편의를 위한 인조 환경의 부산물이다. 환경 개선이라는 명분의 환경 조작이 예기치 않은 재앙을 초래하고 있는 명확한 현실을 직시한다면, 생명 개선이라는 명분의 생명조작 역시 예기치 않은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는 점은 인과론의 기본 지식으로써 예감할 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진작 유전자 조작으로 메기만큼 큰 미꾸라지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외국에서는 머리 없는 올챙이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 기술을 인간에게 적용하면 머리 없는 인간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유전자 조작이 전망하는 환상적인 미래와 함께 3∼4 미터가 넘는 거인이나 머리가 없는 인간과 같은 괴물이 등장할 미래도 상상해 보자.

우리의 식탁에는 이미 유전자 조작에 의한 식품이 올라와 있다. 우리가 먹고있는 콩의 30% 정도는 유전자 조작으로 생산된 것이다. 이 같은 식품이 인간의생명에 어떤 부작용을 일으키는지에 대해서는 검증된 바 없다. 그래서 더욱 재앙의 가능성은 큰 것이다. 다만 해외에서는 이 같은 식품을 경계해야 한다는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불길한 징후를 엿볼 수는 있다.

생명 조작의 기술이 인간에게 적용되어 나타날 수 있는 재앙은 결코 윤리적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이제까지 사실로 입증되어 온 불교의 인연법은 그 재앙이인간이라는 존재에 총체적으로 미칠 것이라는 사실을 예고하고 있다.

21세기를 맞는 우리가 되새겨야 할 것은 인간의 미래가 인간 자신의 자유 의지에 의해 결정된다는 불교의 인연법이다. 제삼자인 조작자가 생명체의 양상을 변경할 수는 있을지언정 생명체의 자유 의지인 업까지 변경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조작되거나 복제된 생명체는 원본이 되는 생명체의 의지나 기대와는 전혀 다른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냉철하게 명심할 필요가 있다.


정승석/동국대 교수·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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