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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줄에 매달려 극락 꿈꾸기

기자명 임헌영
  • 사설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일본의 작가 아쿠다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는 소품 ‘거미줄’에서 어느 날 아침 극락 연못가를 산책하던 석가님의 시선을 통하여 인간의 추악한 이기주의를 부각시켜주고 있다. 연꽃이 뒤덮고 있는 연못 아래로는 삼도천(三途川)을 비롯해 바늘신이나 피의 지옥 등등이 내려다 보였는데, 석가님의 시선을 끈 간다타란 남자도 그 피의 지옥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살인 방화범인 간다타는 숲속 길에서 거미 한 마리를 밟아 죽이려다가 미물이지만 목숨을 짓밟기에는 불쌍하여 살려준 기록이 있어 석가님은 그를 구원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연꽃잎 위의 거미 한 마리를 본 석가님은 그 거미줄을 피의 지옥 암흑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간다타 앞으로 내려보내 그 줄을 잡고 올라오게 만들었다. 원래 도둑이었던지라 간다타는 줄타기에 능숙해 거미줄을 타고 피바다로부터 쓱쓱 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정신없이 한참 거미줄을 꽉 잡고오르다가 잠깐 쉴 틈에 아래를 내려다 보니 자기 뒤에 다른 사람들이 줄줄이 거미줄에 매달려 올라오고 있었다. 그 가느다란 거미줄이 자기 혼자 부여잡고 오르기에도 아슬아슬한데 이렇게 되니 곧 끊어지지 않을까 너무나두려운 나머지 그는 마구 거미줄을 흔들고 아랫쪽 사람들을 짖뭉개 까내리는가 하면 “이 줄은 내꺼야”라면서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때까지 그렇게 탄탄하던 거미줄이 갑자기 뚝 끊어지면서 간다타를 비롯한 모든사람들이 일제히 피의 지옥으로 곤두박질 해버리고 말았다.

석가님은 “저 혼자만 지옥으로부터 빠져 나오려는 간다타의 무자비한 마음이, 그리고 그 심보에 합당한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삽화의 지옥과 거미줄과 석가님을 오늘의 우리 사회에서 전개되고 있는 어떤 일과 바꿔 읽어도 좋을 것 같다. 가령 대통령 선거를 대입시켜 보자. 아마 후보자들은 낙선이 곧 지옥과 같은 고통이라고 여겨 한오라기 지푸라기가 아니라 거미줄이라도 잡고싶은 심정일 것이다. 그래서 선거에서는왕이나 진배없는 유권자(곧 석가님)에게 제발 구원의 거미줄을 내려 줄 것을 애원하고 싶을 것이다.

누군지는 모르나 아마 제일 먼저 암흑 속에서 그 거미줄을 본 후보가 타고 오르자 뒷사람들도 줄줄이 따르게 되었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앞서 오르던 사람이 뒷사람에게 어떻게 했을까는 이미 위의 소설 ‘거미줄’에서본 대로일 테고, 또 뒤사람들은 어땠을까를 상상해 보라. 천재작가 아쿠다가와가 작품에서 생략해 버린 부분, 즉 간다타의 뒤를 따르던 사람들이 무슨 짓을 했을까를 상상해 보라.

온갖 욕설을 퍼대며 자기 앞 사람의 발목을 부여잡고 끌어 내려 버린 채자신이 앞서 오르려고 무슨 짓을 못했을까를 묘사하지 않은 것은 분명 아쿠다가와의 산책이다. 아니, 석가님이 조금만 더 여유를 두고 그들의 내분을 지켜봐 줬다면 아마 그 뒷 장면이 나왔을 터이다.

물론 이런 가상은 세상 이치를 모르는 한가한 소리일 수도 있다. 어차피한 사람만 당선되는게 선거이며, 입시며, 입사시험이다 등등 모든 세상사도경쟁이고 보다 내 코가 석 자인데 어찌 한가하게 남의 일 걱정이냐는 반문도 일리가 있지 않은가.

그러나 같은 처지의 경쟁일지라도 순번이야 어쨌건 자기 뒤를 따르는 사람을 짓이기거나, 앞 선 사람의 다리를 부여잡는 식의 야비성은 나쁘다는것이 곧 이 이야기의 초점이다.

지금 우리 앞에서 전개되고 있는 대통령 선거운동을 보노라면 “과연 이중 한 분이 당선되고 나면 나머지 낙선자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언론매체들은 이상하게도 후보자 난립을 ‘정치부재’로 비판하기 바쁜데 따지고 보면 대통령 후보가 많고 정당이 모였다 흩어지고 하는 현상은 오히려 우리 정치사에서 볼 때는 엄청난 민주적 발전의 반증으로 봐야 할 것이다. 지난 번 선거 때까지 대통령이 ‘후계자’를 지명하던 정치가 이번 선거부터 자유화 되었다는 그 자체가 선거혁명이라면 혁명이다.

또 어떤 분들은 후보자의 자격 여부를 따지기도 하지만 전직 대통령들의면면을 보노라면 지금 입후보자들도 충분히 ‘한국의 대통령’으로서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누가 되든 아마 우리나라는 잘 되어나갈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거미줄을 탄 사람들 끼리의 치사한 싸움에 있다. 마치 100미터 경주에 나선 선수들이 서로가 남의 코스에 장애물을 갖다놓기를 경쟁하는 것 같은 희안한 경기가 벌어지고 있다. 자신이 빨리 달릴 생각은 않고남의 다리 걸고 넘어뜨리기나 장애물로 훼방 놓는 일에 전념하는 꼴이니까말이다. 석가님(유권자)은 훌륭한 경기를 원하지 야비한 음모를 원하지 않는다. 제발 석가님으로 하여금 아예 거미줄을 탕 끊어버리고 싶도록 부아를 돋구지 말아줬으면.


임헌영/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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