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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전문 사서 외길 25년 이철교 씨

‘불교학 정보통’ ‘박사들의 박사’ 별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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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恩, 사서일로 보답”


책을 유난히도 사랑했던 한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책을 통해 세상에 눈을 떠갔고, 그 속에서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배워갔다. 6·25 동란 직후 전기는커녕 당장 한끼 식사조차 해결하기 어려웠던 시절, 어쩌면 소년에게 유일한 탈출구는 책 속 세상이었는지도 모른다. 책에 대한 애착은 갈수록 깊어갔고 호롱불 아래 밤을 지새우는 날들도 하루 이틀 늘어만 갔다. 시골에서 중학 과정을 마친 소년은 고교생이 되어서도 여전히 손에서 책을 떼지 않았다. 교과서뿐 아니라 문학반 활동을 통해 책이라면 가리지 않고 이것저것 섭렵해 나갔다. 그렇게 세월도 함께 흘러갔고 어느 덧 소년도 나이가 들어 이제는 반백의 중년이 되어있었다.



책을 유난히도 사랑했던 소년

불교 전문 사서(司書) 이철교(55) 씨. 그는 요즘에도 일주일에 한 두 번은 헌 책방이나 대형서점을 찾는다. 딱히 무슨 책을 찾기 위해서라기보다 어떤 종류의 책들이 나오고 어떤 책들이 사람들에게 읽히는지, 혹은 관심분야인 불교관련 서적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등을 알기 위한 오래된 습관이다. 또 종종 아는 학자들의 연구실을 방문해 새로 나온 불교논문이나 관련 서적들을 발견할 때면 바로바로 메모한다는 철칙을 여전히 준수하고 있다. 사서란 앉아서 하는 작업이 아니라 돌아다니며 수집하고 정리하는 일이라는 그의 신념에 따른 것. 그리고 그때그때 필요에 의해 한 권 두 권 모아온 개인 장서가 이제는 1만여 권을 훌쩍 넘어섰고, 그 중에는 불교관계 잡지 창간호도 250여 종에 이른다.

이 씨는 불교학계에서 ‘불교학 정보통’이니 ‘박사들의 박사’라는 별칭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하나의 전공만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과는 달리 다방면에 대한 박식함 때문이다.

그가 도서관에서 25년간 몸담으며 불교 관련 자료들을 수집하고 정리했던 점을 미루어보면 어쩌면 그도 당연한 일. 그래서인지 학계에 오랫동안 적을 두고 있는 학자들치고 직·간접적으로 그의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 또 각종 불교전공 학술지에 관련 논저목록을 제공함으로써 연구 경향을 상세히 소개하고 동일한 주제의 연구가 반복되지 않도록 돕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그가 지금까지 정리한 7만여 건의 불교학 관계 논저 목록을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작업에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불교 연구사에 있어 기념비적 의미를 갖게 될 이 목록작업은 1900년부터 지난해까지 100여 년간 일본·미국·중국 등에서 발표된 한국불교관련 저술이나 논문을 비롯해 국내외 석·박사 학위 논문 등이 총망라돼 있다. 이 씨는 동국대 도서관의 동료이며 후배이기도 한 이동규, 이강석 씨 등으로 도움으로 모든 작업을 연내에는 마무리지을 계획이다.



“그를 통하지 않으면 학위 어렵다”

“많은 학자들이 연구보다 자료조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또 이미 선배 학자들이 동일한 주제로 썼던 논문이 되풀이되는 경우도 많았고요. 이것이 완성되면 책으로 출판하는 동시에 CD로도 제작해 필요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누어 줄 생각입니다.”그러나 이 씨는 자신들의 작업이 분명한 한계를 갖고 있음도 고백한다.

“불교학을 발전시키는 길은 그 토대를 튼튼히 하는 길입니다. 비록 지금까지 나온 논저목록을 정리했지만 여기서 그친다면 그림을 떡일 뿐 이들 자료 모두를 전산화해 이를 제공할 때 참다운 의미가 있습니다. 그 역할을 동국대가 맡아야 합니다. 이를 위한 전담기구를 설치해 매년 나오는 논문들을 정리해 이를 간행하고 자료들을 체계화할 수 있는 시스템의 구축할 때 동국대는 명실상부한 불교학의 중심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동국대에서 불교학을 공부한 이 씨가 불교전문 사서의 길을 선택하게 된 것은 그의 말처럼 “어쩌면 이미 주어진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대학 시절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구도부에 가입해 방학 때면 머리를 깎고 성철, 청담 스님 등 큰스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기도 했던 그는 그 인연으로 69년 군법사를 지원하게 되고, 제대 후에는 민족문화추진위에서 한문공부를 시작하는 동시에 틈틈이 국립중앙도서관이 주관하는 사서강습에도 다녔다.

그러던 중 마침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실시하는 사서시험에서 1등으로 자격증을 취득한 후 곧 중앙도서관에 입사해 사서 실무 역할을 맡게 되고, 얼마 후 모교의 요청으로 동국대 도서관에서 근무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불교 사서인의 길을 걷게 된다. 어릴 때부터 그토록 좋아했던 책과의 인연이 결국 사서로 이어졌던 것이다.

“학자로서의 길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솔직히 능력이 부족하다는 생각도 했고, 스승으로서 학생들의 삶의 본보기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 길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책을 선택했죠. 그리고 불교를 접한 이래 받았던 불은(佛恩)을 사서라는 일을 통해 갚아나가기로 했던 것입니다.”



학자의 길대신 좋아하는 일 선택

그는 그동안 동국대 서울-경주캠퍼스 도서관을 오가며 근무했고 또 많은 기여를 하기도 했다. 특히 지난 95년부터 경주 도서관에서 학술정보서비스팀 팀장을 맡으며 도서관의 특성화에 주력했다. 그리고 고민 끝에 경주에 고미술 및 문화재가 많다는 것에 착안해 고고학-미술사 자료 코너를 따로 마련하고, 황수영, 한병삼 박사 등의 도서를 기증 받는 등 꾸준히 자료수집을 한 결과 현재 이 분야에서는 국내 최대 자료 보유량인 3만여 점의 도서 및 자료를 소장하게 됐다.

대학원에는 근처에는 못 가봤다는 이 씨는 그러나 불교학의 발전을 위해 누구 못지 않게 많은 공헌을 해왔다. 바쁜 일과 속에서도 지난 97년에는 1876년부터 1950년대 말까지 국내에서 발간된 각종 불교잡지 26종과 신문류, 도서류, 문건류 등 기타 귀중한 불교자료를 영인해 만든 한국근현대불교자료전집(민족사)을 간행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으며, 신규탁 연세대 교수 등과 공동으로 선학사전(1997, 민족사 간)을 편찬하기도 했다.

또 전혀 조명되고 있지 않던 이영재, 박봉석 스님 등을 새롭게 부각시켰으며, 일원상에 대한 역대 조사들의 글을 모아 놓은 종문원상집(宗門圓相集)을 발굴한 것도 그의 공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이 씨는 그동안 수집하고 정리했던 자료들을 토대로 조선후기 선논쟁, 혜능전집 등을 비롯해 불전해설사전, 불교인명사전, 불교연표 등을 펴내 불교학의 발전에 일조하겠다는 계획이다.

“남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보다 남에게 폐 끼치지 않는 삶을 살겠다”고 늘 말하는 이 씨. 그가 있기에 우리 시대의 불교학은 좀 더 풍요로워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철교의 ‘바른 불서 독서법’- “개설서 보다 경전을 읽어라”



▷정리된 개설서 몇 권보다 차라리 한 권의 경전을 직접 읽어라. 물을 맛보지 않고 어떻게 물의 맛을 논할 수 있겠는가.

▷선서(禪書)나 대승경전만 편식말고 아함경 등 초기경전도 읽어라. 신화화되지 않은 붓다의 모습과 교리를 만날 수 있다.

▷항상 독송할 수 있는 경전을 지니고 다녀라. 예로부터 ‘글을 백 번쯤 읽으면 뜻이 저절로 드러난다’ 했으니 언젠가 문득 고개를 끄덕일 날이 오리라.

▷‘지혜는 눈, 행동은 발’이니, 항상 수행과 실천을 염두에 두고 읽어라. 나와 책이 분리되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신뢰할 만한 번역서를 선택해 읽어라. 금강경이나 법화경의 경우 번역본이 이미 수십 종에 이르고 있으나 그 중에는 잘못된 것들도 많기 때문이다.


이재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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