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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의 넌더리

기자명 윤원철
  • 사설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어느 컴퓨터 통신 게시판에 “버스, 지하철에서 노인에게 자리 양보 반대!”라는 제목으로 토론방이 개설되었다고 한다. 한 일간지에 이에 관한기사가 실렸다. 그 기사에 보면, “누구는 서서 가고 누구는 조금 더 살았다고 앉아서 가는 세태는 고쳐야 마땅하다”거나, “연장자 우선 원칙은 한국인의 병폐적 고정 관념이니 선입견과 금기를 과감히 타파하자”거나, “

제대로 된 사회라면 생산 활동에 종사하지 않는 노인보다 미래의 주인공인어린이를 우대해야 한다”는 의견을 소개하였다. 또한 이를 꾸짖는 의견은주로 한탄조였고, “섣부른 감정으로 이성적인 토론장을 망치지 말라”는반박과 “양보 불가론의 대세 속에 묻혀버렸다”고 하였다.

미처 그 기사를 읽지 못하고 지금 여기에서 처음 접하는 독자들도 참 아찔한 기분일 것이다.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면, 젊은이들이 노인이나 아이데리고 타는 부녀자에게 자리 양보하는 것이 예외적인 풍경이 되어 버렸음을 보면서 심사가 뒤집혀서 못 견디겠다. 이러다가는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 너무 싸잡아서 미워하게 되지 않겠나 겁이 나서 가급적 버스나 지하철을 안 타고 싶다. 이 나라의 앞날에 대한 온갖 희망을 다 얹어주고 싶은 그 젊은이들을 미워하고 불신하게 하는 풍경은 참으로 견디기 어렵다. 아무리 진상이 엄연히 그렇더라도 차라리 피해 버리는 비겁함을 택하고 싶다. 그런비겁함은 그 젊은이들 이외에 어디 달리 희망을 걸 곳이 없기에 택하는 고육지책의 몸부림이다. 그러면서 도대체 어떻게 되어 먹은 아이들이기에 저럴까, 정말 저것이 거스를 수 없는 세태의 도도한 주류일까, 정말 희망을거두어야만 하는가, 내내 궁금하였다. 그 기사를 보고서는 답을 찾은 것 같았다. 아, 정말 세태가 그렇구나! 내가 우연히 못된 아이들만을 본 것만은아니구나. 워낙 아이들 생각이 대체로 그렇게 흘러가는구나. 굳건히 자리지키고 조는 척하는 것도 단순히 당장의 상황을 모면하려고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신념과 명분을 세워놓고 하는 행위구나. 일종의 양심범이라는 얘긴데, 양심이라는 것 자체가 그 지경으로 몰락했구나. 희망이 없구나! 기본적인 약속을 깨면서 당내 대선 후보 경선 결과에 불복하고 저도따로 살림을 차리고 나선 대통령 후보의 지지자에 젊은 층이 많다는 점도이와 연결해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진상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직접 그 토론방에 들어가 게시된 의견들을 낱낱이 훑어보았다. 신문 기사에서 말하듯이 “순식간에 수만 건”의 의견이 접수되었고 그 주류가 양보 불가론인 것은 아니었다. 수 백 건의의견이 게시되어 다른 토론방에 비할 수 없이 성황인 것만은 사실이었다.그러나 압도적인 주류 의견은 그런 토론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패륜이라는 것이고, 그렇게 분개한 이들이 많은 덕분에 성황을 이룬 것이었다. 진상을 왜곡한 그 신문을 성토하는 토론방이 별도로 새로이 개설되기도 하였다. 그러니 안심하시라. 우리의 젊은이들은 건강하다.

그러나, 정작 안심할 것은 동료가 많음을 확인하는 그 건강한 젊은이들이지 자리 양보의 대상인 기성 세대가 아니다. 그런 패륜적인 토론방이 개설될 빌미를 제공한 것은 빈자리가 났다 하면 박찬호처럼 수십 미터 밖에서도정확히 물건을 던져 그 자리를 맡아 놓거나 심지어 축지법인가 할만큼 잽싸게 밀치며 날아와 그 큰 엉덩이를 들이미는, 멱살을 잡을 듯 험악하게 윽박지르며 자리를 빼앗는, 자리를 받고도 고맙다는 말 한 마디 없는, 그 젊은이들 부모의 당당하고 무지막지한 횡포와 무례이다. 그런 행태에 넌더리를내면서도 참으며 건강한 생각을 잃지 않는 젊은이가 훨씬 더 많다는 것은참으로 경이로운 일이다.


윤원철/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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