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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禪師 思想과 見性탐구 15 - 임제의 殺佛殺祖와 無位眞人

기자명 종님 스님
  • 사설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선사상의 궁극적 모습이자 생활적이고 현장적인 조사선의 세계를 창시한 인물이 마조도일이라면 그런 조사선을 완성하고 가장 극명하게 발현시킨 인물이 임제의현(臨濟義玄 ?∼866)이다. 임제의 선사상은 '무위진인'과 '조불'이라는 두 단어로 요약된다. 무위진인은 어떠한 차별적 위상이나 높고 낮음의 구분이 없다는 것으로 임제선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고, 조불은 지금의 현실에서 깨달음을 얻은 각자, 곧 부처와 똑같은 삶을 사는 존재로 그의 이상적 존재상이다. 살불살조는 이런 무위진인에서 조불로 가는 과정에 필요한 하나의 방법론이자 수단이다.

살불살조는 임제의 선기를 나타내는 대표적 용어이다. 그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며,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보살이나 나한 친척권속을 만나거든 대하는 즉시 죽이라고 말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해탈하여 어떤 것에도 구속받지 않고 일체의 모든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부처를 구하고 법을 구하는 것은 지옥으로 가는 지름길이며, 심지어는 오무간업을 지어야만 해탈할 수 있다고도 한다. 어찌보면 비종교적이고 비윤리적인 것이라 비판할 수 있는 여기에 깃들은 핵심적인 의미는 절대적 가치관에의 얽매임, 곧 인혹(人惑)의 경계이다. 그가 말하는 부처등은 무형 무상 무주의 참된 부처가 아니라 구함의 부처, 념의 부처, 형상의 부처이다. 이런 부처를 추구하면 그의 말대로 부처라는 마귀에 사로잡히게 된다. 가치나 진리, 사상 그 어떤 것에든 절대적 관심을 갖게 되면 자연 거기에 집착할 수 밖에 없고 이는 선의 수행론에서 가장 금기시하는 요소이다. 분별을 통해, 격식화되거나 고정화된 사고관념을 가지고는 선의 세계를 결코 올바로 체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살불살조는 우선 이에 대한 강력한 경계의 설이다.

여기에는 또한 임제가 수행자들에게 남긴 섬광같은 충격과 서릿발같은 질타의 목소리가 함께 배어있다. '부처와 조사를 죽이고 부모를 죽여라. 그래야만 해탈을 얻을 수 있다.' 듣는 수행자들에게는 소름이 오싹 돋는 섬뜩한 말이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래 한 수행자가 그것은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이냐고 묻자 무명과 탐애를 없애고 마음에 분별심을 갖지 않는 것이 부모와 부처를 죽이는 것이라고 답한다. 싱거운 대답이랄 수 있지만 종교인이 교조를 부정하고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는 것이란 거의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듯 무명이나 탐애를 없애는 것도 그만큼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이를 행해 내겠다는 강한 의지의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는 역설적 가르침이다.

또한 여기에는 전통적 관습과 사회체제의 비판과 함께 이를 통해 인간이 가진 본연의 인간성 회복 그 제고의 의미도 깃들어 있다. 전통적으로 중국은 유교에 기인한 가부장적 가족 제도를 사회구조의 틀로 삼고 있고, 당시의 통치체제도 중앙 왕실에 대한 절대군주의 형태에 있었다. 이런 제도 속에 임금이나 부모는 절대적 권위를 가진 존재로 군림하고 있었고, 거기에 사람들은 복종과 순종을 강요당하며 종속적인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다. 임제의 살불살조 살부살모는 이에 대한 타파와 인간 본연의 존귀성 회복을 위한 선지식으로서의 할이었다.

사상의 근간이 되는 무위진인도 이런 바탕하에서 나온 가르침이다. 사상적으로는 인간 누구나가 가진 근본 불성을 의미하고 있지만 지위의 고하나 차별이 없다는 현실적 표현으로 나타내진 무위진인은 특히 절도사들에 의해 지배되던 당시의 하북 사람들에겐 생명의 법음이자 감로수였다. 임제 스스로는 당시의 사회체제에 대한 통렬한 질타였지만 중앙의 권위적 통치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신흥 지배층과 억압의 고통을 겪고 있던 일반 백성들에게는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정신적 이념이자 행동철학의 의지처였던 것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런 무위진인에 대해 그 스스로가 '똥막대기'라고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언어를 통한 그의 독창적 선세계가 빛나고 있는 또 하나의 부분으로 만일 무위진인이라는 것을 절대시하게 되면 그가 기껏 이야기한 무위세계가 새로운 형태의 유위로 바뀐 결과 밖에 되지 않는 것에 대한 또 다른 경계이다.

살불살조나 무위진인은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참된 마음의 평화는 절대적 존재에의 의지나 가치의 추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고요와 평온에 의해 이루어진다.


종호 스님/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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