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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 이야기 17 - 풍경

기자명 법보신문
  • 사설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인간 내면을 울리는 영혼의 소리

사찰의 대웅전이나 기타 큰 건물의 네 귀퉁이 추녀 끝에 풍경이 달려 있어 바람이 부는대로 소리를 낸다. 작은 종(鐘)에 추를 내리고 그 끝에 물고기의 형상을 달아 바람을 받도록 했다. 이 풍경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고 문학 작품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게 된 것은 아마 1931년에 이은상의 시조 〈성불사의 밤〉이 발표되고서부터가 아닌가 싶다. '성불사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 소리 / 주승은 잠이 들고 객이 홀로 듣는구나 / 저 손아 마저 잠들어 혼자 울게 하여라.' 이렇게 시작되는 시조는 풍경 소리를 통하여 산사에서 느끼는 밤의 고적감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산사에 왜 하필이면 물고기의 형상을 달아 풍경 소리를 내게 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거나 관심이 없다. 물고기는 눈을 감고 자는 법이 없다. 죽어서도 눈은 개안(開眼)이다. 이처럼 수행인도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경책(警策)의 의미가 들어 있다. 경책이란 좌선을 하다가 졸음에 못이기는 사람이 있으면 잠을 깨우기 위해 가볍게 때리는 긴 막대기를 말한다. 그러나 이런 물리적인 수단을 버리고 추녀 끝 풍경소리를 듣거든 물고기의 눈을 떠올리고 항상 정신의 눈을 번쩍 뜨라는 옛 선사들의 상징적인 가르침은 오히려 낭만이 넘쳐 흐른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이 풍경소리는 단순한 쇠소리가 아니라 인간의 내면을 울리는 영혼의 소리로 화한 것이다.

적막한 산사에서 밤을 지새본 사람은 알 것이다. 바람에 흔들리며 땡그랑 땡그랑 하는 그 소리는, 육신이 고단한 사람에게는 깊은 잠 속으로 안내하는 천상의 악기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인생의 깊은 상처나 애환에 잠못드는 사람에게는 영혼을 때리는 아픔으로 들릴 것이다. 그래서 어느 시인은 노래했다.

땡그렁 바람따라 풍경이 웁니다 / 그것은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소리일 뿐 / 아무도 그 마음속 깊은 적막을 알지 못합니다 / 만등(卍燈)이 꺼진 산에 풍경이 웁니다 / 비어서 오히려 넘치는 무상(無上)의 별빛 / 아 쇠도 혼자서 우는 아픔이 있나봅니다.

그렇다. 풍경 소리는 한 음의 단조로운 소리밖에 낼 줄 모른다. 그리고는 늘 침묵과 적막으로 돌아간다. 깊은 침묵과 적막만을 배경으로 거느리기 때문에 그 소리는 듣는 사람에 따라 내밀한 비밀을 던져준다. 석굴암 부처님의 미소도 그렇다. 깊은 침묵과 적막 속에서 흘러나오는 미소이기에 영원을 뛰어넘은 비밀이 된 것이리라.

마음이 괴로운 사람 있거든 깊은 산사로 가보아라. 되도록 혼자 가면 더욱 분명해지리라. 가는 도중에도 줄곧 따라오고 있는 괴로운 자기 마음을. 절에 가서 괴로움 보따리 끌러 놓고 기도해 보아라. 금부처가 자기의 괴로움을 없애주리라고 굳게굳게 믿으면서. 절실하면 눈물까지 흐르리라.

이윽고 그대는 하산할 것이며, 절을 등지고 멀리 내려올 수록 분명해지는 것 있으리라, 잠시 흩어졌던 괴로움들이 하나 둘 모여 다시 괴로운 마음 이루어 뒤따라오고 있음을. 그렇다. 참으로 마음을 비우지 않는 한 괴로움이 사라지지 않는다. 침묵과 적막은 비워둠을 의미한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너무 많이 채우려 하므로 비워둠의 여백이 없다. 그래서 아무리 지식이 많고 말을 잘하고 설교를 잘해도 한갓 소음에 지나지 않는다. 소음은 귀를 스쳐 지나갈 뿐이다. 산사는 앎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침묵과 적막을 가르치는 곳이다. 다시 산사에 가서 하룻밤을 묵으며 지새보라. 한없이 깊은 적막과 침묵 속에서 들려오는 단조로운 이 풍경 소리가 어째서 우리의 영혼을 맑게 씻어주는 가를 생각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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