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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주장편소설-산은산 물은 물이로다34

기자명 정찬주
  • 사설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제6장 아, 봉암사(5)

그런데 위와 같은 비구니 스님의 옷 벗는 얘기는 전혀 다르게 전해지고있기도 하다. 성철이 비구니 스님에게 가사 장삼을 벗어라는 식으로 시험했을 리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화엄경》을 달달 외울 정도로 공부하여 지견(知見)이 좀 생긴 그 비구니 스님이 자신의 견처(見處)를 점검하기 위해스스로 가사 장삼을 벗고 법당 안의 비구 스님들 주위를 한바퀴 돈 다음,성철의 한마디를 듣고자 했다는 것이다.

훗날 몇몇 사람의 얘기에 의하면 그 비구니 스님이 교사 출신이었던 묘찬(妙璨)이라고 한다. 그리고 당시 승려 사회에서는 교사 출신의 지식인이 드문 편이었으므로 묘찬은 바로 성철의 각별한 지도를 받았다고도 한다.

성철의 말귀를 알아듣는 묘찬 역시 하루 종일 법문을 해도 바닥이 나지않는 성철의 무진장한 식견에 놀라 `죽어서는 여자 몸을 벗고 남자로 태어나 큰스님 상좌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고백할 정도로 성철에게 홀딱 반했던 것도 사실이고.

그러나 묘찬은 중물이 잘못 들었던지 튀는 기행을 일삼아 성철의 기대를져버리고 만다. 자신의 생리대를 간짓대 끝에 매달고 다니며 젊은 비구 스님들을 당혹케 하거나, 성철의 스승인 노승 동산에게 대들며 선문답을 흉내내다가 끌려나오는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처럼 되고 만 것이다. 봉암사를 떠나 고성 문수암에서는 성철이 도우를 불러 탄식을 토해내기까지 했다.

“도우 수좌, 저리 좀 가자. 묘찬이 저년을 사람 하나 만들어볼려고 해도안된데이.”
묘찬의 기행이 날로 더하고 고쳐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때 도우는 성철에게 질투가 나고 왠지 섭섭한 생각이 들어,
“하나를 만들어도 붕알 달린 놈을 만들어야지 왜 자꾸 비구니를 데리고그럽니까” 하고는 상주 갑장사로 가버렸다고 한다.

아무튼 보살계가 설해지던 날 오후였다. 봉암사의 비구니 스님들은 향곡이나 성철이 무서워 큰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부엌에 있는데, 향곡이 소리를질렀다.
“오늘 보살계에 모인 대중들은 방으로 모이시오.”
밖에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이미 마당은 질척하여 걸을 때마다 신발에 진흙이 달라붙어 다니기가 아주 고약한 상태였다. 그래서인지 방으로 모이라고 향곡이 운집종을 또 치고 있었다.

향곡이 치는 운집종에 거절할 대중은 없었다. 대부분 뒷문을 통해 큰방으로 들어가는데, 묘엄은 앞문으로 들어갔다. 어느 땐가 성철에게 물어봤는데,그때 성철이 `향곡이 부를 적에는 앞문으로 들어가 있다 달아나라'고 주의를 받은 적이 있었던 것이다.
이윽고 향곡이 모인 대중 앞에서 육환장을 짚고 게송을 읊조렸다.

諸佛是我怨
衆生是我親
(모든 부처님은 내 원수요,
모든 중생은 나의 친구로다.)

게송이 끝나자마자 향곡은 육환장을 무릎에 대고 반동강을 내버렸다. 그리고는 노전채를 향해서 우렁우렁 소리쳤다.

“문수야, 이리 오너라.”
대답이 없자 더 큰소리로 불렀다.
“문수야, 이리 오너라.”
노전채에는 성철이 있었으므로 `문수'는 성철을 두고 부르는 말이었다. 대중은 잠시 노전채 쪽을 응시했다. 문수란 석가모니불의 왼쪽에 자리해서 중생들에게 지혜를 주는 보살을 일컬음이었다.

한참 후, 성철이 방문을 활짝 열고 나오면서 큰소리로 말했다.
“보현아, 구덩이 파라.”
갑자기 향곡에게 구덩이를 파라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말을던진 성철은 어느새 허리를 펴고 서서 허허허 웃고 있었다.
“보현아, 한구덩이에 죽자.”
보현은 석가모니불의 오른쪽에 자리해서 중생들에게 행덕(行德)을 주는보살을 말했다. 향곡이 자신을 문수라고 불러주니, 그에 대한 답례처럼 향곡을 보현이라고 부르고 있는 성철이었다.

향곡과 성철이 갑자기 서로를 문수야, 보현아 하고 불러대니 대중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면서도 `한구덩이에 죽자'는 말을 듣고는 두분이 이제도(道)가 같아졌나 보다 하고 생각이 들 뿐이었다.

두 사람은 대중이 모인 방 안에서 잠시 티격태격하다가는 밖으로 나갔다.멱살잡이를 하여 나가면서부터는 향곡이 성철에게 거친 욕설을 퍼붓기도 하였다.
“장좌불와가 별것이냐, 씨브랄 놈아.”
그러나 성철은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이놈아, 지금 내게 한마디 일러라.”
비가 와 계곡물이 무섭게 흐르는 용곡에서는 향곡이 성철을 물 속에 처박아 넣고 있었다.
“철 수좌. 너야말로 눈먼 희양산 사자새끼다.”
그러나 성철은 아무 대꾸도 안하고 당하기만 했다. 이런 광경을 본 응산(應山)은 이제 향곡의 법력이 성철을 앞서는구나 하고 지레 단정하기도 했다. 그런데 `향곡이 성철보다 확철했다'고 떠들고 다니던 응산은 무슨 살(煞)이 끼어들었는지 보경사를 찾아가 그곳의 폭포를 구경하다가 그만 발이미끄러져 죽고 만다. 이때 도우는 입으로 짓는 구업(口業)을 생각하며 성철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스님, 이 일이 어떻게 된 것입니까.”
그러자 성철이 혼잣말처럼 가만히 중얼거렸다고 한다.
“향곡이 소견이 좀 나가지고 기고만장한데, 무슨 소리를 한다고 귀에 들어가겠나. 그럴 때는 지는 게 낫데이. 오매일여라도 한발짝 더 나가야 하는기라.”

산중에는 여전히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대중들은 향곡과 성철이벌이는 얘기가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각자 나름대로짐작할 뿐이었다. 묘엄 같은 비구니 스님들은 한분은 문수보살이고, 또 한분은 보현보살의 화신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두 사람은 용곡까지 가서 옥신각신하다가는 다시 돌아왔다. 당시 봉암사는 용곡을 건너면 3층석탑이 있었는데, 탑 주위는 찔레넝쿨이 무성하게 웃자라 허술하게 방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대문 앞에는 헌식대(獻食臺)라 하여밥과 과일 등의 음식물을 산짐승들과 나누어 먹기 위한 떡판 같은 큰 돌이있었다.

이제는 향곡과 성철이 헌식대 앞에서 다투었다. 찔레넝쿨 위를 맨발로 한동안 왔다갔다 하는데도 두 사람은 신기하게도 찔레가시에 찔려 피 한방울나지 않고 있었다. 잠시후, 성철이 먼저 들어와 대문의 빗장을 걸어버리자향곡이 소리를 질렀다.

“문 열어라. 이놈아.”
“지금까지 무얼 수행했노. 그냥 들어와 보그래이.”
“좋다. 내 신통력을 보여주마.”
향곡이 자신의 신통력이라며 헌식대를 단번에 들어 대문을 향해 던졌다.보통 때는 들 수 없는 큰 돌인데, 그날만은 어디서 힘이 솟아났는지 불끈불끈 들고 있었다. 두번째로 헌식대를 들어 던지자, 대문이 확 열리면서 그 돌이 자신의 발등으로 떨어졌다.

향곡의 발등은 금세 시퍼렇게 부어올랐다. 부어올라 금방이라도 터질 것같은데 피는 나지 않고 있었다. 이 역시도 대중들은 법력(法力)이 있어 그러나 보다 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감히 두 사람이 벌이는 행동을 아무도 제지하지 못했다.
노전채로 들어간 두 사람은 다시 나와 구수회담을 벌여 합의를 본듯 서로를 추켜세우며 두 사람간에 오고간 법담을 마무리지었다. 향곡이 먼저 성철을 대중들 앞에서 추켜세웠다.

“사자새끼 눈떴다.”
그러자 성철이 손뼉을 치며 웃었다.
“허허허.”
이제 향곡은 헌식대를 들고 부엌으로 갔다. 그러더니 그날 대중들에게 준파격적인 법문을 마무리지으려는 듯 부두막에 놓인 무쇠솥을 내리치고 있었다.
“이놈, 밥 도둑놈들.”

무쇠솥은 단번에 박살이 났다. 뚜껑만 깨진 것이 아니라 솥밑도 깨져 돌이 재 속으로 들어갔다.
“밥 도둑놈들에게 무슨 밥을 주나.”
이렇게 소리지르며 순식간에 향곡은 솥을 두개나 깨버렸다. 이때 성철은전혀 제지하지 않고 방금 전 밀담을 나눈 듯 모른체 방관만 했다.

이에 격분한 비구 스님도 있었다. 보문(普門) 같은 이가 대표적이었는데,당시 봉암사에서 계행이 가장 반듯한 스님이었으므로 젊은 수좌들이 성철이나 향곡 못지않게 존경하는 스님이었다.

복천암에서 온 보문은 한암의 상좌라는 자존에다 계율을 철저하게 실천하는 스님이었으므로 향곡과 성철의 파격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저 사람들이 무슨 스님인고. 쯧쯧쯧.”
혀를 차다가 화를 삭이지 못하고 이런 오해를 하기도 했다.
“이는 필시 성철과 향곡이 짜고 하는 짓이다.”
마침내 보문은 복천암으로 돌아가버렸다. 수행을 잘못하고 있다고 솥을깨는 향곡에게 굴욕감 같은 감정을 느껴 더 이상 봉암사에 남아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향곡은 솥을 깨고 난 후부터 갑자기 조용해져버렸다.묵언에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는 성철과 소리치며 다니거나 혼자중얼거리며 행선을 했는데, 일주일 동안 침식을 거른 채 단 한마디도 내뱉지 않는, 그야말로 완벽한 묵언 정진이었다.

향곡은 그로부터 일주일 동안 눈 먼 장님이 되고, 말 못하는 벙어리가 되었다. 의식적인 묵언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삼매에 들어 자신의 몸뚱아리를 잊어버리는 경지까지 빠져들었다.

그런 향곡이 맨 먼저 본 것은 자신의 두 손이었다. 무심코 용곡의 다리를건너가다 발견한 자신의 두 손이었다. 향곡은 움직이는 두손이 솥을 깨트린살인수(殺人手;사람을 죽이는 손)가 되기도 하고, 부처를 이루는 활인수(活人手;사람을 살리는 손)가 된다는 진리를 홀연히 보고는 게송을 읊었다. 이른바 오도송이었다.

문득 두손 전체가 산 것을 보니
삼세 모든 불조(佛祖)가 눈 속의 꽃이네
경전의 많은 법문이 무엇하는 건가
이로부터 불조가 다 신명을 잃도다.
忽見兩手全體活
三世佛祖眼中花
千經萬論是何物
從此佛祖總喪身

다시 또 향곡의 입에서 게송이 터져나왔다.

봉암사 한번 웃는 것은 천고의 기쁨이요
희양산 두어 곡조는 만겁에 한가롭네
내년에 다시 한바퀴 달이 있으니
금풍이 부는 곳에 학의 울음 새로워라.
鳳巖一笑千古喜
曦陽數曲萬劫閑
來年更有一輪月
金風吹處鶴 新

이러한 용맹정진이 있었으므로 향곡은 훗날 법문을 할 때 `공부'에 대한부분에 이르러서는 어느 누구보다도 간절하게 사자후를 토하곤 했다.

`우리가 본래 출가한 목적은 다른 데 있는 게 아니고 견성 성불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니 가람을 짓고 수리하는 일체 불사도 견성성불하기 위해 공부하는 공부인을 위해 해야지, 거기에 명예나 욕심이 있어서 다른 생각으로하면 죄만 짓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르고 참된 신심과 불심과 의심을가지고 정진을 해야만 성과가 있을 것이다.
우리 중에 누구나 못 입고 못 먹어서 중이 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공부를 자꾸 늦추어서 내생에 한다는 생각을 내면 절대로 안된다. 금생에 이 몸뚱이 있을 때에 해결할 마음을 가져야 한다.

고인의 말씀에,
“한 생각 불견(佛見), 법견(法見)을 일으켜도 여태마복리(驪胎馬腹裡)에여전사(如箭射)(나귀의 태에 들어가고 말의 배에 들어가기 화살과 같다).”고 했는데 무엇을 믿고 내생에 한다고 미룰 것인가. 공부가 그렇게 쉽사리되는 줄 아는가. 꿈만 꾸어도 그 속에서 정신을 못 차리면서, 죽을 때에 정신 차려서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고 말이 말로 보이고 소가 소로 보일 줄 아는가. 전부 뒤바뀌어 보여서 정신이 어디 있는 줄도 모르는데 무엇을 바로볼 것인가.

참으로 이 정법을 만나 선방에 들어와서 공부를 하는 이라면 먹고 입는데팔려서는 도저히 안되는 것이다. 머리에 불 받는 사람같이 해야 하고, 감옥에 갇혀 고초를 받는 사람이 풀려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무시부절(無始不絶)로 간절한 것같이 공부해야만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편안하고 잘 먹는 것만 생각하면 도심(道心)이 일어나지 못하고 딴 망상과 분별과 번뇌만 일어나게 된다.

어떤 사람이 단식을 하고 나서 하는 말이,
“세상 사람들이 배가 부르고 나니까 온갖 야단들이구나. 명리도 여자도재산도 다 배가 부르니까 탐이 나는 것이지, 배고프니 아무 생각 없더라.”고 했는데, 그와 같이 공부도 다른 것 일체를 생각하지 말고 오직 공부 하나만 하면 안될 리가 없는 것이다.'

향곡이 확철대오하자 성철은 자기가 성취한듯 가장 좋아했다. 한 동안 두사람은 봉암사 경내를 애들처럼 어깨동무를 하고 다닐 정도였다. 대중을 모아놓고 따로 법문을 길게 한 적은 없지만 봉암사 대중은 실제로 향곡의 확철대오를 눈으로 확인하고는 더욱 분발했다.
한 젊은 스님이 자신의 손가락을 태우기도 했다. 그동안 `밥 도둑놈'이란말을 듣고 누명을 쓴 듯 억울해 했는데, 자신의 게으름을 스스로 참회하는의미로 손가락을 태웠던 것이다.

손가락 연비를 한 사람은 회개였는데, 그는 어디서 보고 들었는지 손가락을 밀초를 이용하여 태웠다. 밀초 덩어리를 만들어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만큼 구멍을 뚫고는 거기에 자신의 손가락을 넣고는 삼베로 동여맸다. 그런다음 불을 붙이고는 자신이 직접 한손으로 목탁을 치고 염불을 한 것이었다.

탁, 소리를 내며 손톱이 먼저 탔다. 그러나 회개는 전혀 아픈 표정을 짓지않고 있었다. 성철과 향곡의 법문에 신심이 나 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한손으로 치는 목탁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었다.

그러자 뒤에서 지켜 보던 스님들이 따라서 목탁을 치고 염불을 해주었다.묘엄은 등골이 오싹했다. 전율이 찌르르 흐르고 있었다. 손가락이 한마디를지나 어느새 삼베를 따라 두마디째 타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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