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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불자 우리는 도반 - "투사"남편 신심으로 뒷받침

기자명 위영란
4.19때 서울대학생 신분으로 혁명운동에 가담 투옥된 것을 시작으로80년까지 세차례에 걸쳐 8년을 감옥살이한 김정태씨(55.세계대학봉사회한국위원회회장). 옥살이가 계급장은 아니지만 51년 매긴 구형태로살았다면 지금도 아찔하기만 하다고 한다.

부인 김진선씨(47.`수원장터'사장)를 만난것도 첫 출옥직후인 63년 그가입시학원강사로 생계를 지탱할 때 고3학생으로 강의를 들었고, 당시주요사찰 대상자로 수시로 수색을 당할때마다 이념서적들을 그녀의 책가방에숨기곤했던 인연이다.

"남들처럼 평온한 가정생활은 생각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어요, 당시선생님의 조국에 대한 애정이 제게 충격적인 감동이었고 뒷바라지라도내가 하자는 마음 뿐이었지요."

67년 2차 투옥을 마치고 두사람은 69년에 결혼했다. 시어머니의 독실한불심은 두내외를 불교로 이끌었고 민주화 대열에 나서느라 `가정을 몰라라'하는 남편 김씨뒤에는 시어미니와 봉녕사 법당에서 수천배 절을 하는 아내김씨의 눈물어린 신심이 가정을 지탱했다고 한다.

김씨는 86년 9.7해인사 승려대회때 불교의 자주화와 민주화에 대한특강을 했고 당시 태동한 청년불교사상연구소에서 도맡아 강의도 했다.무엇보다 그가 꼽는 자부심은 13대 대선때 김영삼후보를 위해 `2천만불교도에게 드리는 글'을 작성했던 것. 그러나 이 발표문은 YS의 타종교브레인들로부터 강렬한 저지로 빛을 보지못하고 수만부 인쇄물이 파기되고말아 가장 큰 고통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3당 합당뒤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재야민주화세력이 설땅이 좁아졌을때김씨는 삶을 반추하면서 불교에 본격적으로 들어섰다고 고백한다. 머리를삭발하고 아껴주셨던 스님을 찾아뵙고 출가보다는 불자 정치인으로서입지를 세우라는 충고는 그에게 또다른 생의 문을 열게했다.

부부는 본격적으로 집에 불단을 모시고 수원포교당 법회에 참석하고봉녕사에서 <유마경>강의도 들고있다. 부인 김씨가 운영하는 식당은음식거리를 장만하는 아침 1시간을 꼭 <예불문>과 <천수경>테잎 독경소리가 울려펴진다.


위영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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