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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정의 깨달음과 교수의 깨침 [15]

기자명 법보신문
몇년전 속퇴를 합리화하면서 내 스스로 가졌던 논리도 그와 비슷했던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때 나는 무언가 불만 스럽고 미진하다는 느낌을 금할 수 없었지만 뭐라고 딱 부러지게 반박하고 나설 개재가 아니었기에 잠자코 있었다. 아니 투철한 신념이 없었다는 것이 바른 말이리라.

그러면서도 나 스스로는 몇년 사이에 깨침에 대한 나의 관점이 다소변화하고 있구나 하는 나름대로의 자각을 느꼈던 것이다.

그날 동료들과의 대화 가운데는 깨침에 대한 그같은 인식이 이른바 과학적이며 실증적이라는 기저 위에서 보리수 아래의 깨침이래 석가모니 부처님이 행한 45년간의 구도 전법행각을 살펴 보면 그분 역시 때론 제자들을꾸짖고 칭찬하기도 했고 어떤 일에는 기뻐 했고 또 어떤 일에는 안타까와했던, 분명히 인간적인 희노애락이 남아 있었지 않느냐는 얘기까지 나왔었다. 또 인간 으로서의 석가모니 당신의 깨달음이 신통자재해 전혀걸림이 없는 것이라면 그 주변의 제자들 조차 모두 깨닫게 하지 못하셨냐는반문까지도 제기 되는 판이었다.

어떤 동료는 조심스럽게 아무런 걸림이 없는 신통묘용의 경지는 미래세계에 오실 미륵부처님이나 갖게 되는 것 아니냐는 나름대로의 일리있는해석을 밝히기도 했었다. 그러기 때문에 불교가 종교로서 신앙의 대상이된다는 것이 었다. 사실은 우리 동아리에서 간헐적으로 발행하는 일종의동인지 이름이 바로 `용화세계'였다.

아무튼 차속에서의 박교수의 질문에 나 스스로는 신통 묘용하다고 할수 있는 깨침의 자유자재한 경지를 인정 하고 있다고 대답했고 또 늘그것을 참구하고 있다고 스스로 다짐 하고 있었지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못내 그것이 미심쩍었고 불안한 감 마저 느껴야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날 기념법회에서 청화스님은 이렇게 말씀 하셨었다.

"선사의 어록을 보면 `견도여파석이란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진리를깨닫는 것은 돌을 깨는 것과 같다는 말입니다. 마치 돌을 깰때는 순간에팍 깨지듯이 견도 할때는 문득 활연대오해서 훤히 깨달아 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말 끝에 꼭 붙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수도여우사'란말입니다. 수도는 연뿌리의 실과 같다는 말입니다. 즉 수도가 연뿌리를자르는 일과 같아서 쉽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우리가 연뿌리를 딱 분지르려 하면 끈끈한 실이 있어서 쉽게 부러지지 않습니다. 그와 똑 같이수도는 돌깨듯 하는 것이 아니라 두고두고 오래 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는바로 훈습 때문입니다."

청화스님도 분명히 깨침의 경지를 얘기하고 있었다. 스님의 말씀은 획기적인 것도 새로운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말이 내귀에는 새록새록 의미있게 들렸었다. 내 스스로가 깨침의 경지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고 있었기때문이리라. 노스님의 법문은 돈점논쟁에 관한 나름대로의 판정이기도했다.

"이렇게 오래오래 닦아 나갈때는 구구성성이라, 두고두고 일구월 심으로닦아 나가서 비로소 참다운 구경지인 성인의 지위가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성자와 범부의 한계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문득 깨닫는 그 자리부터 성자라고 합니다. 왜그런고 하면 진여불성 자리를 현전에 증명 했기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때는 벌써 성자입니다. 그러나 불지를 성취한 성자는아니라 말입니다. 습기 때문에 두고두고 일구월심으로 닦아야 참다운 구경각을 성취 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보조국사는 고운점수라 하였습니다. 이도리는 화엄경에서 말씀한 도리하고도 똑같고 달마 때부터서 6조 혜능까지의 말씀하고도 틀림이 없습니다."

배교수는 깨침이라는 것은 분명히 존재 하는 것이며 이는 개인적 체험의차원이 아닌 우주적인 일대 사건이라고 했다. 배교수는 확신에 차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충분히 검증될 수 있는 실존적인 체험이라고 했다.

"깨친다는것은 한사람만의 개인적인 체험 수준이 일이 아니죠. 한사람이깨달아 우주와 인생의 실상을 모두 알았다는 것은 주변 사람에게 자신감과희망을 던져 주는 일 아닙니까? 모두가 축하해야 하고 또 분발해야 한다는강렬한 메시지를 던져 주는 일 아니겠습니까? 오매불망 깨침의 경지가 어떤것인지 궁금해 하는 많은 수련자들에게 일대 희망과 용기를 주는 일이기때문 입니다. 그래서 나는 늘 깨침은 검증 되어야 하는 일대 사건이라고말하고 있죠. 그래서 지난번 송광사에서도 종정 스님에게 언제 오매일여의경지에 들어 가셨으며 언제 거기서 나왔냐는 사건적 표현으로 여쭈었던 것입니다."

나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고 묵묵히 있었다. 그런데 내가슴 속에는어떤 이름모를 기운이 용솟음 치고 있었다.

배교수의 집은 아담한 단층 가옥이었다. 밤늦은 시각 이었음에도 배교수의 부인은 나를 무척 반갑게 맞아 주었다. 배교수의 부인이 소아과 전문의라는 사실은 이미 들어 알고 있는 터 였다. 부인의 차분한 얼굴을 보는순간, 나는 배교수가 어린 두딸과 부인을 놔 둔채 종정 스님문하로 출가하려 했을때 이 부인이 어떻게 반응 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떠 올랐다.그러면서 배교수가 부인과 상의를 한 뒤 머리를 깎았을까, 아니면 아무런통보도 없이 그냥 막무가내로 출가를 했을까 하는 점이 문득 궁금하게다가왔다. 또 어느날 돌연 배교수가 집으로 돌아왔을때 부인은 그 느낌이어땠을까?

웬지 이 부인이라면 대문에 들어서는 배교수를 보고 씩 하고 한번 웃고말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 광경이 눈에 선 했다.

집안 역시 두 양주의 분위기와 어울리게 차분하면서 고풍스럽게 단장되어 있었다. 배교수의 장성한 두 딸이 모두 출가했기에 집에는 두 부부만이 단출이 살고 있다고 했다.

거실에는 동양화며 서예 액자들이 몇점 걸려 있었다. 그중 거실 입구쪽에나란히 쌍으로 걸려 있는 액틀의 글은 나에게도 낯이 익은 유명한 노장스님의 글씨였다.


사음수성독 우음수성유

우학성생사 지학성보리

(뱀이 물을 마시면 독이 되고 소가 물을 마시면 젖이 되듯 어리석게배우면 낳고 죽음을 이루고 지혜롭게 배우면 보리를 이룬다.)

당수 허회문지 필유 기발지시(당수 허회문지 필유 기발지시)

(마땅히 모름지기 생각을 비워서 법을 들으면 반드시 공부를 깨달을때가 있으리라.)

두 구절 모두 보조 스님의 계 초심학인문에 나와 있는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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