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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주장편소설-산은 산 물은 물이로다40

기자명 정찬주
제8장 숨은 도인(1)

설호스님이 정 검사에게 털어놓은 이야기는 거의 정확했다. 천제굴이 처음 지어질 때는 성철스님을 법전과 도우가 시봉했던 것이다. 또한사람 더 든다면 은봉암 시절에 행자로 들어온 문일조가 있었다.

문일조는 나이 든 사람으로 좀 특이하게 행자로 받아들인 경우였다.어린 행자는 별 시험없이 받아들였지만 성인인 경우 혹독한 시험을 치르게 하였던 것이다. 일종의 극기 시험인 셈이었다. 은봉암에 문일조가나타나서 스님이 되고 싶다고 했을 때, 성철은 이런 시험을 하였었다.암자 계단에 합장을 하고 하루 낮 하루 밤 동안 꼼짝않고 서 있게 하는 극기 시험이었다. 당시 불교계에서 잘 알려진 고봉이 추천하여 온그였지만 예외를 두지 않았음이었다.

그러나 문일조는 누가보더라도 놀랄 만큼 잘 견디었다. 바위처럼 움직이지 않고 하루 동안 그자리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는 손가락이 없는 사람이었다. 일제 때 징용으로 끌려가다 탈출하여 눈구덩이 속에피신해 있던 중 동상에 걸려 양손의 엄지손가락만 남겨두고 모든 손가락을 잘라냈던 인물이었다. 그러한 그였으므로 하루 동안의 `부동자세'정도는 아무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손가락이 없는 문일조에게 특기가 있다면 임기응변의 머리와 말솜씨였다. 천제굴이 별 차질없이 지어진 것도 문일조의 도움이 컸다. 법전과 도우, 비구니 인홍(仁弘)이 힘을 쏟고 문일조가 신도들에게 시주금을 모으고 미장이와 목수들을 다그쳐 결제철을 피해 서너달만에 오막살이 천제굴을 지어 성철에게 바쳤던 것이다. 여기서 잠깐 비구니 인홍이 성철을 만난 인연을 얘기하자면.

1949년 겨울, 성철도 봉암사를 나와 장경과 불서들이 옮겨진 월내묘관음사에 머물던 때였다. 인홍이 출가한 지 10년이 채워지기 직전무렵이었다. 묘관음사에 도인이 머물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인홍이 달려 왔는데, 그 도인이 바로 성철이었던 것이다. 성철은 이때도 인홍에게 문전박대를 가차없이 했다고 전해진다.

성철은 습관대로 묘관음사 앞에 있는 연못가를 포행하던 중이었다.법당에 들어 참배하고 나온 인홍이 연못으로 내려와서 말했다.
“노장님, 절 받으십시오.”
“내가 누군데 절을 할라코 그러노.”
성철은 인홍의 인사를 가로막았다.
“성철 노장님, 아니십니까.”
“성철이 누군고.”
“앞에 계신 분입니다.”
“그래, 잘 찾아보그래이.”
인홍이 머뭇거리자 성철은 그를 연못으로 밀어뜨려버렸다. 한겨울의연못에 빠진 인홍은 겨우 연못가로 나왔지만 옷은 이미 얼음이 쩍쩍달라붙었다. 그러나 인홍은 묘관음사 방에 들어갈 생각을 않고 젖은옷을 입은 채 땅바닥에서 그대로 정진하여 옷을 말려버렸다. 인홍으로서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이미 오대산 상원사에서 한암에게 수계를받아 스님이 됐지만 성철을 만나 비로소 출가다운 출가를 한 것 같은변화가 왔기 때문이었다.

한편, 수완 좋은 문일조는 훗날 성철의 눈밖에 나고 말았다. 한 어린행자 앞에서 이렇게 투덜거리고 있었는데 성철이 다 듣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말도 잘하고 얼굴도 잘생겼는데 왜 신도가 없지.”
“이눔아, 니는 협잡꾼이다. 그래서 신도가 안 따른다.”
공부에는 관심이 적고 신도나 세속적인 것에 관심이 많은 그가 결코성철의 눈에 들 리 없었다. 결국 그는 몇년 후 환속하고 말았다고 한다
.
오막살이 초가들로 세 채가 올망졸망 붙어 있는 토굴이 천제굴이었다. 조그만 법당 한 채와 묘관음사에서 옮겨온 장경들이 보관된 한 채,그리고 스님과 행자가 기거하는 한 채가 천제굴의 전부였다.

안정사 계곡에 천제굴이 들어선 다음해.
도우가 가고 법전만 남아 성철을 시봉하고 있던 초가을이었다. 똑똑하게 생겼지만 얼굴이 창백한 소년 학생이 왔다. 그 소년은 이미 봄에아버지의 49재를 지내러 어른들을 따라 왔던 중학생이었다.

학생은 절에서 살면 건강도 좋아지고 큰스님으로부터 가르침도 배울수 있을 것 같아 곧 머리를 깎고 행자가 되었다. 신도들이 보면 성철은 엄하고 인자한 아버지 같았고, 어린 행자는 철부지 아들 같았다. 이아들 같은 행자가 오늘날의 천제스님인데 그의 회고를 조금 옮겨보자면.

“합천 집이 6^25 전쟁중에 폭격을 맞아 타버리고 난 후, 아버지와나는 마산으로 갔습니다. 나는 공부를 잘한 편이서 마산상업중학교에들어갔지요. 당시 다들 어려웠지 않습니까. 학교 수업이 끝나면 나는종고모의 국수공장 앞에서 좌판을 펴놓고 양말 등 이런저런 장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병을 얻어 돌아가시고 나자 나도 심신이 피곤해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종고모를 따라 아버지 49재를 지내러 천제굴을 따라가 성철스님을 처음 뵌 것이지요. 그때 느낌은 마치 새아버지를 뵌 것 같았어요. 결국 그해 가을 어머니와 식구들하고 의논해서 절에 가서 살기로 했지요. 당시 스님은 이미 도인으로소문이 나 신도들이 너도나도 만나뵈려고 할 때였어요.”

진동업 소년이 성철에게 새아버지라고 느낀 것은 당연했다. 소년에게는 의지할 만한 어른이 없기 때문이었다. 의지하기는커녕 아버지는병들어 누워 있었고, 자신이 좌판을 벌여 쥐꼬리만한 수입으로 가정을꾸려나가는 형편이었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사람들에게 속아 상처를 받은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좌판의 양말 묶음을 팔았는데 받은 지폐가 앞뒤만 화폐였고 가운데는휴지 조각들이었던 것이다. 소년에게는 양말 묶음의 돈이 큰돈이기도하였거니와 6·25전쟁이 끝나가는 세상과 비뚤어진 어른들에 대한 실망으로 죽고 싶기까지 했던 것이다.

진동업 소년에게 비록 오막살이 초가집이지만 천제굴은 극락 같았다. 새아버지 같은 도인이 있고, 끼니마다 먹을 양식이 있고, 무엇보다도 날마다 성철에게 성현들의 말씀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행자가 된 소년에게 그해 가을과 겨울은 행복했다. 처음 밥을 지어생쌀이나 다름없는 선밥을 올렸지만 성철은 아무 내색도 안했다. 소화가 되지 않고 배탈이 나 수시로 뒷간을 내달리는 성철이었지만 조금도싫은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던 것이다. 배탈이 무려 보름 동안이나 꼬르륵꼬르륵 계속되었는데도 소년 앞에서는 빙그레 미소만 짓고 있을뿐이었다.

청소를 아무리 엉망으로 해놓아도 성철은 진 행자를 나무라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나무막대기로 마당에 글씨를 써 보여 주었다.

―수도하는 사람은 모름지기 가난을 배워야 한다.
나무를 하러 가면서도 성철은 진 행자의 질문에 친절하게 답해 주었다.
“스님, 신도들이 가지고 오는 물건들을 왜 물리치는지 궁금합니다.”
“신도들이 준다고 다 받아서는 안되는기라.”
“스님이 좋아서 갖다드리는 건데요.”
“앞으로 니도 스님이 되거든 받는 물건을 화살처럼 여겨야 된다.”
“스님, 화살을 맞으면 죽거나 다치게 됩니다.”
“그럼. 무섭게 여기라는 말인기라.”
지게를 지고 나무를 한짐씩 해온 그날 밤에는 행자더러 노트를 가져오게 하더니 직접 연필을 들어 `수시여전'이란 네 글자를 썼다.
受施如箭
진 행자가 보란듯이 또박또박 쓴 네 글자의 한문을 자상하게 설명을했다.
“낮에도 얘기했지만 시물 받기를 화살 같이 하라는 뜻인기라. 알겠나. 중생활하면서 시물에 탐을 내서는 안된다, 이 말이야. 시물은 화살같은 것이니 함부로 받아서는 결국 자신을 죽이는 것인기라.”

진 행자가 밥을 하고 성철이 옆에서 밥그릇을 씻었던 날 밤에도 노트를 다시 가져오게 하더니 호롱불 밑에서 이런 글을 적어주었다. 그리고는 진 행자더러 자신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대로 따라 읽게 하였다. 진 행자는 빈 방이 울리도록 큰소리로 읽었다.
―중·노·릇
심호흡을 한 진 행자는 다시 따라 읽어내려갔다.
―모든 사람을 부처님 같이 섬긴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을 받는 위대한 인물은 모든 사람을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다.
진 행자가 다 읽고 나면 성철이 훈장처럼 설명을 꼭 했다.
“중노릇이란 수행을 얘기하는 것인기라. 그러니 `모든 사람을 부처님 같이 섬긴다'는 말을 평생 수행 지침으로 삼아야 된다카이.”
그리고 나서 또 노트에 써준 글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평생의 지킴〉
어려운 가운데 가장 어려움은
알고도 모른 체 함이요
용맹스러운 가운데 가장 용맹스러움은
옳고도 지는 것이니라
공부 가운데 가장 어려운 공부는
남의 허물을 쓰는 것이니라.

말하자면 진 행자가 평생 잊지 말아야 할 세 가지를 그해 겨울 성철이 직접 적어 준 것이었다. 첫째는 시물을 탐내지 말라는 것이고, 둘째는 사람들을 부처님 같이 섬겨라는 것이고, 셋째는 평생 지켜야 할 덕목의 내용이었다. 그 밖에도 성철은 진 행자더러 〈신수장경〉을 가져와 부처님을 칭송하는 게송들을 한문 그대로 노트에 적어 외우게 하였다.

물론 성철이 인자한 것만은 아니었다.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신도들을 대하는 것처럼 엄했다. 몇개월이 지난 후, 또 한 행자가 왔는데 진행자 또래였다. 그래서 둘은 곧 친구처럼 몰려다니며 웃고 떠들고 하였다. 한번은 묵언 장소인 변소에서도 떠들다가 들키어 두 행자가 벌로 3천배를 한 적도 있었다.

뿐 아니라 단감나무 장난 사건도 있었다.
성철이 기거하는 방 앞의 단감나무에 빨갛게 익은 단감이 세 개가메달려 있었는데, 둘은 장난기가 발동하여 견딜 수 없었다. 한입 베어먹고는 싶은데 성철이 방에 있으니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던 것이다.

“진 행자, 저 빨간 단감 말이다. 어떻게 따먹을 방법 없을까.”
“이 행자, 아니다. 큰스님이 다 알고 있는데 따먹으면 야단 맞는다.”
“큰스님은 왜 안 따먹으실까.”
“맞아. 따먹지 않고 꽃 보듯 구경만 하시거든.”
“이 행자, 무슨 방법 없을까.”
그러자 천제굴에 늦게 온 이 행자가 진 행자의 귀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그러니까 말이다. 큰스님 방에서 안 보이는 쪽으로 베어 먹으면될거다.”
“아, 그런 방법도 있구나.”
둘은 박수를 치고 난 뒤, 성철이 뒷간 갈 시간을 기다렸다. 이윽고이 행자가 시범을 보였다.
“자, 보거라. 이렇게 먹는거다.”

이 행자가 재주 부리듯 가지에 손을 대지 않고 고개를 쑥 내밀어 감을 베어 물었다. 그러자 지켜보고 있던 진 행자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배꼽이 드러나게 뒤로 젖히며 깔깔깔 웃었다. 이 행자의 감 따먹는 모습이 희극배우처럼 몹시 우스웠던 것이다. 자연 뒷간에 있던 성철의귀에 행자들의 웃음 소리가 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당장 성철이 뒷간에서 다가와 엉거주춤 허리춤을 추스리며 물었다.

“니이들 와 웃노.”
“깔깔깔.”
“뭐가 그리 재미있노.”
“깔깔깔.”
그제야 성철은 감이 베어진 것을 보고는 야단을 쳤다.
“저거 누가 베어 먹었노.”
두 행자가 가만히 있자, 성철은 선배인 진 행자부터 나무랐다.
“진 행자, 니가 먹었제.”
“아닙니다.”
“뭐라코. 그라믄 이 행자 니가 먹었단 말이가.”
성철의 날벼락이 떨어지자, 진 행자는 그만 울상이 되어 손을 싹싹빌면서 용서를 구했다.

“스님, 제가 먹었습니다.”
“진 행자야, 까치가 내 밥 먹었다고 귀신이 되어 나타나면 어쩔라고 그러노. 허허허.”
진 행자가 뒤집어 쓰는 바람에 문제는 확대되지 않고 그쯤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두 행자는 방으로 들어와 데굴데굴 구르면서 한참 동안 웃고서야 잠이 들었던 것이다.

또 추석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성철은 방에서 좌선을 하고 있었고, 두 행자가 배추밭에 씨를 부리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그래서 두 행자는배추씨가 든 그릇을 밭에 두고 추녀 끝에서 소나기를 피했던 것인데,배추씨는 그만 그릇을 채운 빗물에 젖고 말았다.

비가 그치고 난 후, 씨를 뿌리려고 해도 씨들이 덩이가 져 뿌릴 수가 없었다. 할수없이 지난번 `단감사건'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이 행자가 꾀를 내었다.
“진 행자, 엉킨 씨들을 불에 말려 뿌리자.”
“그래, 내가 풍로를 내올게.”
온돌에 말리기에는 너무 젖어서 이 행자는 진 행자와 함께 불에 말리자고 꾀를 내었다. 그래서 이 행자는 풍로에 숯을 넣고, 진 행자는숯에 불이 잘 붙도록 부채질을 했다. 그제야 성철은 좌선을 풀고 나와두 행자의 행동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역시 내가 똑똑한 행자를 두었다카이.'
그러니까 풍로불에 배추씨를 볶은 것은 세 사람의 합작품인 셈이었다. 출가를 해서는 씨를 볶으면 씨앗이 죽어버린다는 세속의 일을 까마득히 잊고 산 것이었다.

며칠 후였다. 밭에 뿌린 씨가 싹트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성철은 배추씨를 갖다준 마산에 사는 신도를 원망했다. 소나기가내리기 전에 뿌린 씨들은 파랗게 싹을 틔우고 있는데, 그후에 뿌린 씨는 감감무소식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마산의 신도가 오자, 성철은버럭 화를 냈다.

“니는 어떤 씨를 사왔길래 저렇게 배추가 나고 안 나고 그러노.”
그러나 두 행자를 밖으로 불러내 자초지종 얘기를 들은 그 신도가도리어 항의를 하자, 성철은 허허 웃으며 말했다.
“우리들은 밭에 볶은 배추씨를 뿌린 바보들이야.”
아무튼 이같은 도인과 동자승 얘기는 천제굴 시절 내내 성철이 `나는 바보'라고 하며 우스갯거리로 삼았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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