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 위한 삶' 아닌 '삶을 위한 깨달음'을 얻자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좀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불교의 최종 목표는 깨달음'이라는 명제가 과연 참인가? 만약 이것을 `우리가깨닫기만 하면 인간의 할 바를 다한 것이다' 또는 `깨달음은 삶의 완성이다'는 의미로 해석한다든가, 더 나아가 `따라서 깨달은 사람은 죽어도 좋다'는 의미로까지 확대 해석한다면 이 명제는 분명 거짓이다.하지만 이 명제를 `깨달음 그 자체는 궁극적 목표가 아니며, 깨달음을통해서 진정으로 뜻있고 자유롭고 참다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한다면 그것은 참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불교의 최종 목표는 깨달음이다'는 명제는 문장상으로 볼 때 분명히 오해의 소지가있다. 따라서 이러한 진술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 단적으로 말해서,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깨달음의 완성'에 있는것이 아니라 `삶의 완성'에 있다. 말하자면 `깨달음을 위한 삶'이 아니라 `삶을 위한 깨달음'을 불교는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불교인들이 깨닫기만 하면 사람으로서 할바를 다해 마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은 아마도 깨달음에 대한 신비주의적 또는 관념론적 이해 때문에 야기되는 현상이라추측된다. 물론 깨달음은 상식과 논리로써 파악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따라서 우리들 중생의 입장에서 보면 깨달음은 상당한 신비로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깨달은 당사자가 볼 때는 깨달음은 신비가 아니라 당연하고도 평범한 세계일 수도 있다. 요컨대 깨달음의 세계에는신비적 측면이 없지 않겠지만, 신비가 깨달음의 본질이 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실제로 부처님께서 깨달은 진리는 연기(緣起)의 진리였고, 연기법의요지는 `인생의 괴로움(老死憂悲苦惱)은 조건에 의해 일어나므로, 그조건을 알아 제거하면 괴로움에서 벗어나 열반을 성취할 수 있다'는것이다. 깨달음은 우리들 삶의 괴로움, 아니 `생활세계' 그 자체와 맞물려있는 매우 실천적이고 구체적인 개념인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대각(大覺)을 이루시고 곧바로 열반에 들지도 않았고, 무위도식으로 여생을 보내지도 않으셨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통해참으로 보람있고 가치있는 삶의 길을 발견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은 중생과 함께 하는 삶 속에 있음을 아셨다. 그리하여중생의 고통을 어루만지고 중생의 미혹을 깨뜨려 주시기 위해 중생 속으로 뛰어드셨던 것이다.
깨달음은 결코 삶의 완성이 아니다. 깨달음은 참다운 삶의 시작인것이다.
박경준/동국대 불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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