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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악업 지은 중생도 구제하는 관세음 보살 마음 본받아야

기자명 이미령
또 어떤 사람이 죄가 있거나 없거나 간에 수갑과 쇠고랑에 손발이 채워지고 몸이 묶였을지라도, 관세음보살의 이름만 부르면 이것들이 다 끊어지고 풀어져 곧 벗어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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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쇄난(枷鎖難)입니다. 신임 사또의 수청을 거부하다 옥에 갇힌 춘향의 목에 채워진 형구를 가(枷)라고 부르고 죄인들의 몸과 몸을 잇는 형구를 쇄(鎖) 즉 쇠사슬이라고 부릅니다 (『관음의소』참고).

그런데 ‘죄가 있거나 없거나 간에’라는 말이 들어 있군요. 이 부분을 읽다보면 “어, 그래? 그럼 실컷 못된 짓이나 하며 살다가 정작 붙잡혀서 고초를 당하게 될 때면 관세음보살-이라고 염불만 하면 다 풀려난다는 말인가?”라는 의문이 생겨납니다.

게다가 『관무량수경』의 다음 구절을 읽을 때면 설마…하는 의혹은 절정을 이룹니다.

“오역죄와 십악업과 온갖 나쁜 짓을 저질러 지옥에 떨어져 오랜 겁을 두고 고통받는 하품하생(下品下生)인 사람이 죽어갈 때 선지식이 나타나 위로하고 설법하면서 염불할 것을 가르친다. 그러나 이 사람은 고통에 시달려 염불할 틈이 없다. 이때 선지식이 ‘네가 염불할 수 없거든 나무아미타불이라고 불러라’. 이렇게 해서 이 사람이 지성으로 열 번만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면, 이 공덕으로 한 번 부를 때마다 80억 겁의 생사 중죄가 소멸된다.”

하품하생은 이윽고 황금 연꽃 속에 담긴 채 극락세계에 태어나며 12겁 뒤에 관세음과 대세지보살의 설법을 듣고 비로소 보리심을 일으킨다고 합니다. 죄 없는 이가 ‘관세음보살’이라고 외쳐서 풀려났다면 사필귀정이라며 박수를 치고 환영할 일이지만 죄가 있는 이까지도 그런 혜택을 받는다? 게다가 나도 가기 힘든 극락세계에 아미타불 이름을 열 번 외친 공덕으로 극악죄인이 연꽃을 타고 간다?

곰곰 생각하니 이건 좀 아닙니다.

나는 지금까지 될 수 있으면 덜 먹고 덜 가지며 남에게 피해 입히지 않으려고 움츠리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저 못된 사람들도 나와 다름없이 구원을 받는다는 말입니까?

고백하자면 정말로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이 부분을 읽는 자리에서는 거의 빠짐없이 사람들의 질문이 불거져 나왔습니다. 그들도 저와 똑같은 불만을 품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떻게든 대답을 하여 그 순간은 넘겼습니다만 좀 껄끄러운 감정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다 어느 날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였습니다.

마치 시험시간에 옆의 친구가 컨닝한다고 선생님께 이르려고 자기 시험지를 열심히 풀어갈 생각은 하지 않은 채 친구만을 지켜보는 초등학생 같은 내 자신을 말입니다. 『법구경』의 ‘남의 소를 세는 어리석은 사람’처럼 결국 나는 나보다 못된 사람이 무거운 벌받기만을 바라느라 정작 내 자신이 해야할 일을 소홀히 하고 있음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종교는 사람이 살면서 저질러온 죄악에 따른 무서운 과보를 일러줍니다. 하지만 형량을 내리고 처벌을 가하는 역할을 하지는 않습니다. 관세음보살은 저울과 법전을 들고서 대법원을 상징하며 서 있는 정의의 여신이 아닙니다.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으로 일단 살려놓고 봅니다. 일단 풀어주고 봅니다. 일단 귀기울여 들어주고 봅니다.

악업을 지은 사람은 스스로의 양심에 비추어봐서 괴로울 것이요, 인과법의 원리에 따라 벌을 받을 것입니다. 내가 그 사람에게 ‘너는 고생 좀 해야 되’, ‘그렇게 벌받을 줄 알았다’, ‘네 한 짓에 비해 벌이 가벼운 걸 다행으로 여겨라’라고 말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나는 인과법에 무지한 채 못된 짓을 한 그 사람을 안타깝게 여겨야하는 것입니다. 관세음보살의 마음을 조금은 닮아야하지 않겠습니까?


이미령/동국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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