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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보살에겐 선악 차별 없다

기자명 이미령

선악 구별은 중생 집착서 출발

개호(蓋護)라는 이는 중국 산양(山陽) 사람으로 옥에 갇혀 죽게 되었습니다. 사흘 낮 사흘 밤을 마음에 조금도 쉴 틈 없이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불렀더니 곧 관세음보살이 광명을 내어 그를 비추셨습니다. 이어 쇠사슬이 벗겨지고 옥문이 열려 광명을 찾아 그 곳을 떠나 이십 리를 갔더니 그제서야 광명이 멎었다고 합니다.(『응험전』, 『관음의소』에서 재인용)

1968년에 입적하신 금오(金烏) 대선사께서 젊었을 때의 일입니다. 1920년대 초기 금오 스님은 당대의 선지식인 수월스님을 뵙고 지도를 받으려고 만주 봉천땅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러시아 땅에서 공교롭게도 스님은 도둑이라는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결백을 주장 해보았지만 모진 고문만이 가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찌된 일인지 러시아 경찰들은 고문을 멈추더니 옥에 가두어 놓고는 며칠을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불안에 떨고 있다가 마침 감옥에 들어온 한국인 한 명을 만나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에 이미 범인들은 붙잡혔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들은 나를 석방시켜주지 않을까요?”

스님은 불안해졌습니다. 하지만 당시는 나라 잃은 백성 한 사람의 목숨은 파리목숨과 다를 바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스님의 무죄를 내놓고 말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러시아 경찰의 입장에서는 공연히 말썽거리를 만드느니 그냥 감옥에서 죽게 버려 두는 것이 더 나았던 것입니다.

‘이젠 꼼짝없이 죽게 되었구나. 이젠 불보살의 가피를 입어 탈출하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겠구나.’

스님은 그때부터 감옥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관세음보살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참선도 화두도 그만두고 오로지 관세음보살의 구원만을 갈구하며 부지런히 염불하였습니다.

그런데 사흘째 되던 날 밤, 어떤 사람이 철창 밖에 나타나더니 쇠창살 두 개를 뽑고는 다시 꽂고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닙니까? 그가 사라진 뒤에 비몽사몽의 정신으로 스님은 그 쇠창살 두 개를 뽑고는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생활 속의 기도법』중에서, 일타스님 지음)

관세음보살이 죄인이나 무고한 사람에게 똑같이 구제의 손길을 내려줄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자못 궁금해집니다.

‘죄는 자기 성품이 없어 마음 따라 일어나네(罪無自性從心起)’라는 『천수경』의 구절을 떠올려봅시다. 자성(自性)이란 처음부터 영원토록 변함없는 독자적인 성질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인간들은 다섯 가지 근간(五蘊)으로 이루어진 존재입니다. 그중 첫 번째인 색온(色蘊)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들이 지수화풍의 요소들이 화합하여 이루어진 존재라는 사실을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요소들은 인연화합에 따라 모이고 흩어지는 것이 원리인데 인간들은 그것을 견디지 못해 변하지 않고 바뀌지 않게 하려고 강하게 집착을 가하고 철썩 같이 붙여서 영원하게 만들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오온에 더해진 집착-이것이 오취온의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오취온의 인간에게 ‘아, 이것은 내 고유한 성품이다’라든가 ‘나는 이러저러해야만 한다’라고 고집부릴 구석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물며 그런 인간이 어리석어 저지른 죄악에 대해서도 ‘너는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사람’이라며 손가락질 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오온으로 이루어진 세상을 환히 비추어보는 관세음보살의 눈길에는 죄와 복, 선과 악의 차별은 사라졌습니다. 고정된 성품이 텅 비어버린 공성(空性)만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죄를 지었다며, 복을 지었다며 수시로 울고 웃는 중생들의 모습들이 결국은 진실한 세계와 하나가 되지 못한 불안한 집착의 표현임을 알기에 목이 터져라 불러대는 음성에 천 개의 손을 내밀 뿐인 것이지요.


이미령/동국역경원 역경위원

lmrcitt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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