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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지혜의 인연 맺어준 모두가 나의 부처님입니다

기자명 법보

[신행수기 당선작] 총무원장상 - 김분애

불교 강요하는 어머니에 반감…‘배워서 맞서자’며 불교대학 입학
‘나의 주인은 나’ 가르침에서 사고의 전환…미움·원망도 사라져
매일 사경·염불하면서 모든 이에게 감사·모든 중생의 행복 기원

그림=육순호
그림=육순호

“용왕전에 가자.” 
“네? 용왕전이 어딘데요?”
“날 따라와라. 절에 오면 반드시 용왕전에 가서 절을 해야 한다.”
“왜 거기서 절을 해야 하는데요?”
“너그 신랑이 ‘용띠’라서 너는 꼭 ‘용왕전’에 절해야 한다.”

결혼 후 첫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시어머니와 가까운 절에 갔을 때 나눈 대화다. 결혼 전 10여년간 교회를 다녔다. 중고등학생 시절은 물론 청년예배에도 참석했고, 성가대 활동도 열심히 했다. 친정어머니가 믿은 불교는 무속신앙에 가까웠고, 그 무속신앙이 싫어 교회에 발을 들여놓았다. 무엇보다 8남매 여섯째 딸로 태어나 사랑에 목말라하던 나를 항상 밝게 맞아주는 목사님과 여러 선배들의 관심이 너무 좋았다. ‘주님’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교회에서 나름 행복했고, ‘나’라는 존재를 인정받는 것 같아 즐거웠다. 

늦은 나이에 만난 남편이 불교에 깊은 믿음을 가졌다는 건 결혼 후 안 사실이다. 남편은 대학생 때 아르바이트를 하다 손을 다쳐 장애가 있었고, 내가 아니면 누가 이런 사람과 결혼하겠나 싶어 부모님의 반대에도 결혼을 강행했다. 결혼해 보니, 신혼살림을 차린 시어머니 전셋집에는 시어머니의 남동생인 시외삼촌이 이혼 후 두 남매를 데리고 함께 살고 있는 상황이었다. 남편과 시어머니가 결혼을 위해 나를 속였다고 생각하니 시댁이라는 곳이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나에게 무작정 절을 하라니 시어머니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들었다. 

‘왜 이유도 없이 저런 것에 절을 하라는 거야? 정문을 두고 왜 옆문을 들어가라는 거지? 절은 또 왜 이렇게 많이 시켜? 부처는 우상인데 곳곳에 돈도 넣어야 하네. 분위기는 왜 이렇게 어둡고 칙칙한 거야.…’

부정적인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결국 “싫어요. 왜 제가 절을 해야 하죠”라고 대들었다. 서른살에 혼자돼 3남매를 키운 시어머니의 고집과 나의 고집이 맞부딪치면서 몸과 마음은 점점 힘들어졌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남편도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시외삼촌이 남매를 두고 교통사고로 세상을 뜨는 불행한 일이 발생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 사건으로 우리 부부는 3년 만에 분가해 오롯이 우리만의 가정을 이루게 됐다. 

분가와 함께 종교의 자유도 가지게 됐다. 그런데 고민이 뒤따랐다. 항상 진실한 남편의 모습 때문이었다. ‘저렇게 진실한 사람이 불교를 가까이할 때는 분명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결과적으로 ‘우선 알고 나서 거부를 하더라도 하자’고 마음을 먹었고, 가까운 사찰에서 진행하는 불교대학에 입학을 신청했다. 

1년간 불교대학에 다니면서 ‘절은 왜 하는지’ ‘불교의 가르침은 무엇인지’ ‘왜 산신각이 있는지’ 등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됐다. 그리고 ‘불교는 부처님의 형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 말씀으로 마음공부를 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정의를 내렸다. ‘나의 주인님은 주님’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온 나에게 ‘모든 것은 내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지고, 나의 생각과 행동은 이 모든 것의 주인인 내가 행동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생각의 변화가 시작됐다. 

더불어 주변에도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우선은 시어머니와의 관계에 변화가 생겨났다. 시어머니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결국 나를 힘들게 하고, 가정을 힘들게 하고, 주변을 불행하게 한다는 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하루는 아이가 내 휴대전화를 가져다주면서 “엄마, 할망탕구가 누구야? 할망탕구한테서 전화 왔는데?”라고 물었다. 시어머니가 너무 미워 휴대전화에 ‘할망탕구’라고 저장해 놨는데 마침 시어머니에게 전화가 와 아이가 보게 된 것이었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마음 밑바닥에 자리한 시어머니에 대한 미움과 원망의 감정부터 정리해야 했다. 

‘이러한 감정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 

스님에게 여쭈었더니 “우선 108배를 해 보라”고 했다. ‘시어머니 사랑합니다’라는 발원으로 하루 108배 정진을 시작했다. 그렇게 21일째 되던 날 왈칵 눈물이 쏟아져 한동안 엎드려 일어서지 못했다. 내 마음이 들여다보였다. 시어머니에 대한 감정이 쭉 뻗은 아스팔트가 아니라, 여전히 자갈밭처럼 울퉁불퉁했다. ‘내가 왜? 내가 왜 엎드려 기도해야 해?’라는 마음과 마주했다. 그 마음을 바라보며 108배를 이어가자 나도 모르게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튀어나오며 눈물이 쏟아진 것이다. 

변화된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기 위해 휴대전화의 시어머니의 이름부터 ‘관세음보살님’으로 바꿨다. 그랬더니 시어머니가 점차 관세음보살님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찰을 방문해 부처님께 절을 올렸다. 시어머니의 기도가 무엇인지, 내가 어떤 원을 세웠는지 서로 알 순 없지만, 묵묵히 함께 ‘천수경’과 ‘금강경’을 읽고 공양을 했다. 그전에는 시어머니와 무엇을 함께한다는 자체가 짜증나는 일이었는데, 어느새 아무것도 아닌 일이 돼 버렸다.

남편과의 관계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남편은 힘든 어머니를 위해 큰소리 한 번 내본 적도, 자신의 뜻을 내세워 보지도 못한 사람이다. 이러한 남편의 모습은 답답함을 너머 원망의 마음에 이르게 만들었다. ‘도대체 삼십이 넘도록 아무런 결정권도 없는 도대체 이 사람은 무엇인가?’ 이런 남편을 위해 ‘내 부처님’이라는 원을 세워 아침마다 ‘천수경’을 읽고 사경을 시작했다. 한 권, 두 권, 세 권…. 사경 부수가 늘어날수록 궁금한 것들이 생겨났고, 자연스레 남편과의 대화시간도 늘어났다. 부처님 공부를 오래한 남편은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아 그렇구나. 이것이 불교구나.’

예전에 내가 믿었던 종교는 저 멀리 하늘 위에 계시는 감히 거역할 수 없는 분을 주인으로 섬겨야 했다. 그러나 부처님은 멀리 계시는 분이 아니라 바로 옆에서 항상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어떤 판단을 하던, 어떤 생각을 가지던 스스로 알아차릴 때까지 기다려 주는 그런 분이다. 마치 남편이 나의 변화를 기다려 준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휴대전화에 남편의 이름을 ‘내 부처님’이라고 저장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남편을 만난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조금 더 가까이 접근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일었다. 그러던 중 절에 너무나 열심히 다니는 한 보살님을 알게 됐다. 부처님 말씀이 눈에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던 시점이라 그분께 묻고 또 물었다. 불자의 삶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주시던 보살님은 내게 우룡 스님이 쓴 ‘생활 속에 금강경’이라는 책 한 권을 선물해 주었다. 

법회에 가면 스님들이 법문 중에 “‘금강경’이 좋다”는 말씀을 많이 했고, “독경을 하면 내 생활에 분명한 변화가 일어난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그냥 읽기만 한다는 것이 조금은 짜증이 나던 차였다. 내 손에 주어진 ‘생활 속의 금강경’은 환희심을 가져다 주었다. 

‘아, 부처님께서 ‘금강경’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말씀이 이런 것이었구나. 아, 이러한 마음을 내라는 것이었구나.’ 

마음속 미숙한 알아차림이 올라왔다. 그리고 행복했다. 부처님 말씀 가운데 오묘한 인간의 마음을 거울 들여다보듯 기록해 놓은 것이 ‘금강경’이었다.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그렇게 일곱 번을 읽었더니 약간 실증이 났다. ‘금강경’에 오롯이 들어있는 뜻을 생활 속에 다 옮기지도 못하면서 지겹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야말로 오만이었다.

‘금강경’ 안에 있는 글귀 하나하나를 생활 속에서 찾아보자는 생각에 이르렀다. 우선 ‘아상’이라는 것을 내 안에서 찾아보았다. 언제 어느 곳에 가든 아상은 항상 내 옆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동안 누군가 나에게 조언을 하면 ‘또 가르치려 한다’며 짜증을 냈다. 그것이 일반적인 나의 행동이었다. 다행히 좋은 도반들이 옆에 있어 나의 잘못된 습관을 알게 됐고, 스스로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처음엔 미움으로 시작됐지만,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준 고마운 시어머니. 지금은 먹을 것 하나를 사이에 놓고 허물없이 서로에게 양보하는 그런 사이가 됐다. 친정엄마만큼 편해지기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이 같은 감정의 변화가 어찌 혼자만의 노력으로 가능했겠나. 내가 변해야 주변이 변하고, 상대도 함께 노력해야 가능하다는 것을 이제는 잘 알고 있다. 물론 내 허물들이 모두 없어졌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작은 빗방울이 모여서 개울을 이루고 그 개울이 모여 강물을 형성하고 바다가 되듯,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부처님 말씀으로 다가가고자 한다. 

오늘도 나는 나만의 법당에 삼배를 올린다. ‘금강경’을 읽은 후 입과 마음으로 ‘관세음보살’을 부른다. 그리고 사경을 하며 부처님 향한 서원을 되새긴다. 

‘오늘 하루도 모든 중생이 함께 행복하기를. 함께 감사하기를. 함께 기도하기를 서원합니다.’

[1586호 / 2021년 5월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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