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울 수 없는 죄 부처님께 참회하며 용서 구합니다

기자명 법보

[신행수기 당선작] 교정교화전법단장상 - 조○○

어머니와 동반자살 시도…혼자 살아남아 ‘존속살해’로 5년형 받아
동료 재소자 권유로 불교거실 전방 신청…생애 첫 불교 공부 시작
매일 부처님 만나며 탐진치 버리고 가르침 따라 정진하겠다 다짐

그림=육순호
그림=육순호

여주교도소에서 전체 형기 5년 가운데 2년째 복역 중이다. 제대로 적응하며 생활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는데 뜻밖의 행운을 만났고, 그 행운으로 지난 잘못을 참회하며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 행운은 부처님과 인연을 맺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하게 된 것이다. 

2020년 7월 모든 재판이 끝난 후 이곳 여주교도소로 이감됐다. 같이 공장출역을 하던 동료 재소자가 “종교거실이 따로 운영되고 있다”며 “함께 불교를 공부해 보자”고 권유했다. 사회에 있을 때 어머니와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몇 번 절에 방문한 적은 있지만, 불자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던 터라 망설여졌다. 그러다 ‘이 기회에 불교와 부처님에 대해 공부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에 불교거실로 전방을 신청했다. 불교를 담당하는 어윤식 주임(혜도 법사)을 만나 면담을 거쳐 2020년 10월 전방을 승인받았다.

막상 자리를 옮기니 모든 게 생경했다. 사찰 경험이라는 게 도량 한 바퀴 둘러보고 주는 공양 먹는 게 다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반야심경’과 예불문을 외우느라 처음 일주일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몰랐다. 불교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교리도 익혀야 했기에 ‘부처님의 생애’ ‘불교입문’ ‘불교이야기’ 등의 불서를 공부하고 시험도 치렀다. 시나브로 경전의 내용을 접하면서 차츰 불교에 대한 이해도 깊어졌다. 부처님 곁으로 한 걸음 다가서는 느낌도 들고, 마음도 편안해졌다. 

불교에 무지했던 내가 불과 6개월만에 예불을 집전하고, 서툴지만 목탁도 친다. ‘반야심경’을 한글과 한문으로 암송하고, 틈틈이 사경하며 108배도 올린다. 무엇보다 매일 아침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며 탐진치를 버리자고 다짐한다. 지난날에 대한 참회와 인연 있는 모든 이의 행복을 기원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는 일과다. 이따금 변화된 나의 모습에 ‘사람이 이렇게도 변할 수 있구나’하며 놀라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부처님의 자비와 가피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행복한 마음을 갖고자 노력한다. 비록 이곳이 교도소일지라도 말이다.

“부처님 법을 만난 후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 닥쳐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많은 분들이 부처님 가르침을 만나 인연을 맺고 참다운 길로 들어섰으면 합니다. 불교를 알리는 것이 불자의 의무입니다.”

지난해 신행수기 공모에서 총무원장상을 받은 무설회 이채순 회장님의 당부다. 나 역시 더 많은 동료 재소자에게 불교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해야겠다고 매 순간 다짐한다. 불교봉사원 소임을 맡고 있어 교도소 내 전법이 곧 나의 일이다. 그리고 부처님 법을 계속해 공부하고 정진할 것을 다짐한다. 

이렇게 좋은 부처님과의 인연이 조금 일찍 맺어졌더라면 지금과 같은 영어(囹圄)의 몸이 되지는 않았을까? 눈으로 보고 입에 담기에도 거북스러운 단어 ‘존속살해’ 이것이 내 죄명이다. 말 그대로 친부모를 살해했다는 것이다. 이 죄로 5년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는 모른다. 어머니와의 동반자살을 시도했는데 어머니만 돌아가시고 나는 살아남았다. 내가 자살을 결심하지 않았다면 어머니는 살아계실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건 나로 인해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만으로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고 마음이 아프다.

어머니는 몸이 편찮으셨다. 2014년 치질 관련 수술 이후 요의와 변의 통증으로 괴로워했다. 실제로는 소변과 대변이 나오지 않는데 나올 것 같다는 강박증으로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웠다. 어머니의 고통이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는 없다. 다만 병원에서는 “진찰결과 특별한 이상이 없다. 참고 견뎌라”는 말과 함께 약을 처방해 줄 뿐이었다. 유명하다는 병원 여러 곳을 찾아가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매번 마찬가지였다. 

누나와 나는 의사들의 조언대로 ‘마음의 문제’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어머니를 달래가며 강박증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되는 약물치료를 받도록 했다. 그 와중에도 어머니는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며 병원 응급실을 내 집 드나들 듯했고, 급기야 자살을 시도하시기에 이르렀다.

난생 처음 겪는 일이라 당황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중환자실 병상에 누워있는 어머니를 보며 그동안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다. 어머니의 마음 병은 좋아지다가 악화되기를 되풀이됐다. 자살시도는 연례행사라도 된 듯 어떤 때는 제초제를 마셨고, 어떤 때는 저수지에 몸을 던졌다. 곁에서 지켜보는 우리 남매는 매일매일을 가슴 졸이며 살아야 했다. 누나의 전화가 걸려올 때면 ‘또 무슨 일이 벌어졌나’ 했고, 매번 어머니가 계신 응급실로 뛰어가야 했다. 

그러던 중 어머니는 “마지막 소원이니 장루수술을 받게 해달라”고 했다. 우리는 “마음의 문제이니 정신과 치료를 받자”고 했다. 어머니는 받아들이지 않으셨다. 2018년 12월 서울 한 대학병원에 장루수술을 예약했다. 마지막 소원이라는데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수술을 한 달여 앞두고 또 자살을 시도했고, 결국 담당의사의 권유대로 폐쇄병동이 있는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 

장루수술은 자연스레 취소되고 정신과 치료가 시작됐다. 조금이라도 차도가 있기를 바랐지만,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정신과 치료 중에도 의사, 간호사를 붙잡고 “죽을 정도로 아프니 장루수술을 꼭 받게 해달라”고 고집을 부렸다. 그 요구가 너무 강했던지 의사는 “어머니가 원하시는 장루수술을 한 번 받게 해드리는 게 좋겠다”고 우리 남매에게 말했다. 결국 어머니의 바람대로 수술대에 올랐고, 상태가 호전되기를 바라며 회복을 기다렸다. 

그러나 이번에도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수술 이전처럼 요의와 변의를 느끼며 통증을 호소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다는 말이 가슴으로 와닿았다. 어머니는 무엇보다 살아가시는 내내 배변주머니를 옆구리에 차고 살아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더 이상 치료할 게 없다”는 의사의 말에 일주일 만에 퇴원해야 했다. 

너무나도 경황이 없던 터라 요양원이나 노인병원도 알아보지 못했다. 어머니가 지내실만한 시설을 알아보기 전까지 누나가 집에서 모시기로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누나 집이 싫다’며 한사코 혼자 지내시기를 고집했다. 그리고 계속 “죽고 싶다”는 말만 되뇌었다. 

당시 나도 엉망이었다. 직장인이었던 나는 수년간 겪어온 회사 사장과의 잦은 마찰로 직장생활이 힘들었다. 

보통의 가장들이 그러하듯 가정을 위해, 가족을 위해, 회사생활의 어려움을 참으며 지냈다. 내 속은 썩어 곪아가는 것도 모른 채 창업 때부터 근무해왔다는 이유와 적지 않은 급여 등으로 스스로를 위로해가며 회사를 다녔다. 직상생활 만큼이나 가정생활도 순탄치 않았다. 회사에서 안 좋은 일이 있는 날이면 퇴근 후 집에 와 아내와 큰소리로 다투는 일이 잦았다. 회사생활의 괴로움, 어머니 문제, 아내와의 불화, 아들의 비행까지 정말 마음에 여유를 갖게 할 만한 그 무엇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퇴원 당일 어머니는 계속 “살기 싫다” “죽고 싶다”며 울부짖었다. 저 역시 ‘어느 한 군데 의지하거나 위로받을 곳이 없다’고 생각한 나머지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결심했다. 어머니와의 동반자살이었다. 처음 어머니는 “너는 젊으니 더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하지만 내가 계속 울면서 고집을 피우자 “그래, 알았다. 그럼 같이 가자”고 했다. 결국 어머니 집에서 번개탄에 불을 지피는 정말 크나큰 잘못을 저질렀다. 나만 살아남았기에 존속살인이라는 엄청난 죄명을 평생 짊어지고 살아가게 됐다. 이로 인해 난생 처음 재판도 받고, 교도소 생활도 하게 된 것이다. 

‘이것도 불교에서 말하는 인과 연, 그리고 업일까. 불교를, 부처님을 미리 알았더라면 그래서 마음을 조금이나마 다스릴 수 있었다면 이런 비극은 맞이하지 않았을 텐데.’ 

후회와 아쉬움만이 가득한 채 오늘도 먼저 돌아가신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부처님과 보살님들께 기도하며 살겠다고 다짐한다. 또한 내 아내와 자식들에게도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기에 매일 반성하며 용서를 빈다. 출소 후 가족을 위해 헌신할 것도 약속한다. 다시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겠다는 맹세는 두말할 것도 없다.

교도소 재소자 신분으로 매일 부처님과 마주한다. 부처님께서는 “불교에 귀의하는 데는 신분과 주변 여건이 중요치 않다”고 하셨다. 교도소인 이곳에서, 사회에 복귀한 이후에도 탐진치 삼독심을 버리겠다는 마음을 유지하며 항상 부처님을 모시고 살아갈 것을 발원한다. 

불교봉사원의 주요 역할 중 하나는 여주교도소 330여 불자들에게 불교서적, 신문 등의 간행물을 배포하는 일이다. 법보신문을 통해 지난해에 이어 올해 연등회도 코로나19로 취소됐다는 소식을 알게 됐다. 올해 봉축표어가 ‘희망과 치유의 연등을 밝힙니다’라고 한다. 이 표어처럼 올해는 꼭 코로나로부터 자유를 얻는 희망이 이루어지길 두손 모아 간절히 염원한다. 

덧붙여 지난해 11월 종교집회 이후 지금까지 법회를 모시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종교행사가 금지됐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하루속히 종식돼 법회가 마련되고 여러 스님과 법사님들을 모시고 법문 들을 그날을 기도한다. 훗날 사회로 돌아가면 지금 많은 분들의 법보시로 불교서적과 신문을 받아보는 것처럼 그동안 받은 보시를 돌려주는 불자가 되기를 서원한다. 

불법에 대한 의심이 완전히 사라진 수다원을 발원하며 세상 모든 분들이 언제나 건강하고 행복하며 부처님의 가피가 가득하기를 매일 기도하겠다. 

[1586호 / 2021년 5월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