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2월 6일 방한 ‘거지성자’ 페터 노이야르 씨

기자명 권오영

“자유를 원한다면 모든 걸 버려라”

“재산이란 가진 자를 기쁘게 하고 못 가진 자의 부러움을 사지만 아무리 가져도 만족하지 못한다. 나는 아무 것도 가지지 않았고, 아무 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거지성자』 중에서)


99년 한국빠알리성전협회 회장 전재성 박사가 쓴 『거지 성자』란 책으로 우리나라에 처음 알려진 독일인 페터 노이야르(63·사진)씨. 그가 12월 6일 방한했다. 전재성 박사가 석가모니 시대 언어인 팔리어로 된 초기 경전 『맛지마니까야』를 한글로 완역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서다.


『킴』 읽고 불교에 매료

일일이 기워 만든 낡은 코트와 모자, 그리고 맨발에 샌들. 첫눈이 내린 날 조계사 인근 찻집에서 만난 그의 첫인상은 머나먼 이국 땅에 와서도 거지 행색을 벗지 않았음을 알게 했다. 범부의 잣대로 보기엔 분명 거리의 부랑자 같은 행상이지만 오랜 수행 생활에서 뿜어져 나오는 눈빛의 광채는 유럽에서 만행을 떠나온 수행자임을 금새 알게 했다.

전쟁과 폭력이 난무하는 현대사회에서 유일한 해결책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라며 말문을 열기 시작한 그는 스스로 타인을 포용할 줄 아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함을 강조했다.

<사진설명>가진 것이라고 낡디 낡은 누더기 뿐이라는 페터 노이야르 씨. 그는 철저한 무소유만이 인간을 자유롭게 만든다고 믿는다.

“전쟁과 폭력은 가장 기본적인 도덕적 덕목, 즉 부처님이 말씀하신 계율을 지키지 않아서 생기는 것입니다. 내가 죽임을 당하지 않으려면 남을 죽이지 말아야 하고, 속지 않으려면 속이지 말아야 하는 자명한 이치를 지키지 않는 데서 문제가 발생하지요.”

1941년 독일 라인란트팔츠에서 태어난 그는 기술학교에서 측량기술을 배운 뒤 해군에서 3년 간 복무했으며, 이후 제지공장에서 노동자로 생활했다.

그러나 1968년 전 유럽을 휩쓴 학생혁명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그에게 새로운 인생의 전환을 가져왔다.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학생들과 기성세대간의 가치관이 충돌하는 현장 한 가운데서 그는 주변의 고통과 어려움을 바라봐야만 했다. 고민과 번뇌의 시간이 계속될수록 그는 자신이 그 동안 믿고 있던 기독교적 사고로는 한계가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가 불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우연한 기회에 노벨상을 수상한 키플링의 『킴』이라는 책을 읽고 그는 불교에 매료됐고, 번역판으로는 부족해 원전에 직접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불교 공부가 깊어질수록 그는 암흑과도 같았던 그의 삶에 서광이 비치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기독교의 근본은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사랑을 강조할 뿐 실천은 없었지요. 우연히 알게된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수행을 통해 삶에 적용함으로써 실천을 강조했고 실천 속에서 만족감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영국으로 건너간 그는 불교사원에서 선불교를 접했다. 『벽암록』과 같은 선어록을 읽으며 공부를 계속했다.

그러나 공부가 계속되면서 선불교와 대승불교의 근본은 초기불교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유럽의 선불교는 일종의 유행과 같은 형식 위주로 흘러가고 있었고 이는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과는 거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팔리 경전을 공부하기 시작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는 80년 다시 독일로 돌아오면서 팔리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쾰른대 중앙도서관에서 팔리 경전을 독학으로 공부했다. 그러면서 쾰른 강가에서 ‘아나가리카’(팔리어로 집 없는 자란 뜻)로 생활했다. 쾰른대 숲 속 나무아래서 하루 한끼로 생활하며 이후 시간은 도서관에서 불교, 유교, 기독교 서적을 보며 자신의 철학세계를 넓혀갔다.


하루 한끼, 식용잡초로 생활

철저한 무소유를 실천하기 위해 그는 새벽 4시에 기상해 야생 식용잡초를 구해 식사를 대신했고 2∼3일에 한번 씩 무공해식료품가게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구해 주식으로 삼았다. 때론 자신의 행색 때문에 불량배들에게 위협을 당하기도 했고 엉뚱한 사람으로 몰려 주위 사람들로부터 외면 당하기도 일수였다. 그러나 그는 그들을 원망하거나 질책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그들에게 어떻게 보이는 가는 그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는 그들에게 적대감을 갖기보다는 그들을 포용하려 노력했다.

“불은 연료를 공급하면 계속 타오르지만 연료공급을 중단하면 꺼집니다. 적대감도 마찬가지입니다. 적대감을 갖고 상대를 대하면 그는 연료를 공급받은 불과 같이 활활 타오르게 되지만 존경과 포용으로 대하면 갈등과 대립은 저절로 사라지게 됩니다.”

가진 것이라곤 낡디 낡은 누더기를 두른 것이 전부지만 그에게는 부족함이 없다. 가진 것은 없지만 가지려는 마음이 없으니 부족함 또한 없는 것이다. 그는 철저한 무소유만이 인간을 오히려 자유롭게 만든다고 믿고 있다.


“소유에 대한 집착을 버려라”


“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다고 해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많이 소유할수록 인간은 스스로 구속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살아가는 데 최소한의 것만을 소유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소유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살아간다면 영원히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집 없이 돈 없이 여자 없이’ 철저하게 무소유로 살아가는 그는 분명 문명의 이기에서 벗어나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23년 간 계속된 만행을 통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사문의 길을 선택했던 2500여 년 전 부처님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었다.

올해로 세 번째 한국을 방문했다는 페터 씨는 “한국의 불자들이 전재성 박사에 의해 번역된 『맛지마니까야』를 통해 부처님 가르침을 일상 속에서 적용하고 선을 봉행하고 악을 멀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