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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교 신자입니다

기자명 성진 스님

얼마 전 젊은 불자 한 분이 일상생활 속에서 종교의 표현문제로 겪은 어려움을 상담한 적이 있다. 아파트 어린이집 어머니들의 모임이 있는데 구성원들 또한 다들 비슷한 연령대이고 서로 아이를 함께 돌봐주기도 하고 생활의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기도 해서 모임에 참여하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난감한 문제는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다른 종교를 가진 분들이 자신에게 칭찬이나 고마움을 표현할 때 “하나님, 이렇게 좋은 분을 저희에게 보내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 아멘”이라며 여럿이 함께 모여 있는 자리에서 이렇게 기도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당황하기도 했고 함께 있는 다른 분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기에 행여 자신이 불편하다는 말을 하거나 불교를 믿는다고 하면 분위기를 해칠 것 같아서 참고 돌아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이런 식의 표현이 계속되다 보니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는 것이다.

많은 불자들이 이런 일들을 겪어 봤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 불교 신자들은 사회생활에서 종교가 없는 무종교인이나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의 화합을 해치지 않기 위해 자신이 불교 신자라는 것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다른 종교, 특히 개신교의 경우에는 자신의 종교를 적극 표현하고 주변에 같은 교인이 있는지 찾아서 함께 모임을 주도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과연 사회적 모임에서 다른 종교를 비방하거나 종교를 강요하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종교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잘못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다종교 사회 속에서 외형적으로 종교의 형태가 인식되지 않을 때 자신의 종교를 정확히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자세이다. 위의 상황에서도 당당하게 “저는 불교 신자이고 오늘 이렇게 좋은 인연을 맺게 되어 감사하며, 서로의 믿음과 생각을 존중하고 좋은 일을 위해 함께 화합 하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자신의 종교를 명확히 표현하는 것은 다종교 사회에서 기본자세이다. 그래야 다른 구성원들에게 자신의 종교가 무엇인지 알게 해줄 수 있으며, 존중받을 수 있는 첫걸음이 되는 것이다. 이미 다문화 다민족 사회의 국가에서는 다수가 특정 종교를 강요하거나 폄훼하고 차별하면 그것은 중대한 사회문제로 엄중하게 처벌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한국사회는 아직 다종교 사회의 기본적 규범을 사회적으로 종교적으로도 확실하게 공론화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얼마 전 부처님오신날 조계사 일주문 앞에서 벌어진 일부 몰지각한 개신교 단체의 불교 폄훼와 법회 방해는 이러한 면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이러한 부분을 각자의 종교적 양심이나, 저쪽은 원래 저런 성향이니 다른 쪽에서 늘 그렇듯이 인내하며 넘어가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행동이 사회공동체 간의 갈등을 증폭시켜 공공의 질서가 무너질 수 있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되지 못하는 것이다.

2019년 8월, 독일 린다우에서 열린 제10차 ‘세계종교인평화회의(Religions for Peace)’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표어처럼 사용되었던 문구가 있다. ‘Different Faiths-Common Action’ 서로 다른 믿음을 존중하면서 인류 공동번영을 위한 행동을 함께하자는 말이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한 것은 ‘참된 종교의 이름이 바로 평화’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평화는 다른 것에 대한 자비와 사랑, 존중과 배려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나는 불교 신자입니다” “나는 천주교 신자입니다” “나는 개신교 신자입니다” “나는 이슬람교 신자입니다” “나는 종교가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표현이 자연스러워졌으면 한다. 어느 집단에서도 서로의 종교를 존중할 수 있어야 하며, 이러한 표현이 차별적 환경과 갈등을 만드는 빌미가 되는 것이 아닌 갈등을 없애고 다른 믿음을 가진 ‘우리’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환영의 손짓이 되기를 바란다.

성진 스님 조계종 군종특별교구 부교구장 sjkr07@gmail.com

[1588호 / 2021년 6월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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