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코로나로 힘들고 지쳐가는 가운데 나는 날마다 부처님의 은혜 속에서 살려지고 있다. 이처럼 어려운 시기, 작지만 소중한 신심이 전해지길 바라본다. 한없이 부족한 내가 힘든 모든 이에게 희망과 용기를 드릴 수 있기를 매일 기도한다.
불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결혼한 지 얼마 안 돼 데면한 시어머니의 이끌림에, 마지못해 사찰을 방문했다. 돌이켜보면 이것이 나와 부처님과의 인연의 시작이 아닌가 생각한다. 시어머니 따라 절을 방문하게 된 후,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지내며 1년에 한두번, 스트레스가 심할 때마다 절에 갔다. 아무런 신심도 없이 형식적으로 부처님전에 공양 올리고, 절했다. 그리고는 절밥을 먹었다. 이렇듯 불교와 절은 내게 있어서 큰 의미 없는, 잠깐 들러 쉬는 곳 정도였다.
하루하루 일상을 살아가기 바빠 부처님을 잊고 지내던 어느 날이었다. 당시 여름방학을 맞아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우연히 광주 근처 어느 사찰 템플스테이에 참석하게 됐다. 그곳 스님이 누구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스님은 내게 몇권의 책을 선물해주었다. 받은 책들은 다양했지만 그중 문사수법회주 한탑 스님이 저술한 ‘반야심경의 재발견’이란 책이 있었다. 호기심에 책을 읽던 중 “이거야”라는 환호가 나도 모르게 절로 나오며 가슴이 탁 트이고 환희심으로 가득 차올랐다.
나는 이 귀한 인연을 만나보리라 다짐하고 사람들에게 물어 전남 담양에 있는 정진원 정토사로 찾아갔다. 비록 그날 회주스님은 뵙지 못했지만 ‘진리의 벗’(문사수법회 월간지)이라는 책 몇권을 받아 돌아왔다. 그리고 틈만 나면 그 책에 실린 글들을 읽으며 진리의 말씀과 다른 법우들의 알찬 신앙생활에 심취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처님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절을 꾸준히 방문하기 시작했다. 공양하는데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가 문사수법회 경전학당의 통신반 강좌를 신청해 공부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삶이 한없이 어리석었음을 알게됐고, 부처님의 가르침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온 나 자신을 깨달았다. 나는 참회하고 또 참회했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도 부처님 가르침을 듣고자 경전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끈을 놓지 않기 위해 공부를 계속하고 있음은 분명 나의 홍복(鴻福)이다.
문사수법회를 만나 수계식을 통해 향여(香如)라는 귀한 법명을 받았다. 법명을 받으니 그동안 지난 세월들을 더욱 더 뒤돌아 보게 됐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탁한 거울과 같은 과거 나의 마음. 이러했던 마음이 맑은 거울이 될 때까지 닦아 나가야겠다고 발심했다. 그리고 발심을 이루고자 시작한 염불수행은 이젠 나의 일상이다.
아침에는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이라 읊조리며 기상한다. 그리고 부처님전 아침예불 동참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점심, 저녁을 비롯해 시시때때로 염불을 되뇌인다. 자만과 교만으로 가득 차 있던 나 자신을 바뀌게 하려면 오직 나무(南無)해야 함을, 스스로 항복 받는 길 밖에 없음을 깨달으며 늘 ‘나무아미타불’ 염불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부처님께서는 ‘금강경’에서 “여래는 모든 보살들을 잘 호념(護念)하였으며, 모든 보살들에게 잘 부촉(付囑)하느니라”라고 하셨다. 이 말씀에 수보리 조사는 머리 숙여 “그러하오이다. 세존이시여, 바라옵건대 듣고자 하옵니다”하고 대답했다. 이처럼 진작에 부처님 가르침을 믿고 따를걸, 진작에 나무할 걸, 왜 그동안 내 자신은 아등바등 거리며 바쁘게 살았고, 아집에 가득 차 살아왔는지. 그저 한없이 부끄럽다.
오랫동안 해온 교사생활을 마무리하는 정년퇴임을 앞두고 절에서 천일기도가 시작됐다. 부처님께서 나의 부족함을 아시고 부름을 주신 것 같아 매일 법당에서 예불에 동참하고 염불하며 참회의 기도하고 있다. “나의 참생명 부처님 생명. 부처님 생명으로 살아가길 간절히 원하옵니다”라고 끊임없이 기도한다. 지난날 교사로 재직하며 내 소중한 제자들에게 한 사랑의 매질 한번까지도 마음이 쓰려오고 미안한 마음에 소리 내어 울며 참회하고 있다.
[1588호 / 2021년 6월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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