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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의 뿌리를 봐야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다

66. 성자의 의미를 묻는 바라문 학인을 교화하다 ②

견해와 학식, 규범과 금계로
태어남과 늙음 넘을 수 없어
함정 같은 사유 사슬 끊어야
마침내 번뇌의 뿌리 보게 돼

난다(Nanda)라고 하는 젊은 바라문의 질문은 ‘성자’의 의미를 묻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에 대해 부처님은 ‘성자란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은 자로서, 번뇌를 떠나 고요한 자’라고 명확하게 정의를 내림으로서 난다의 질문에 답한다.

난다의 이어지는 질문은 ‘태어남과 늙음을 뛰어넘는 방법’에 대한 내용으로 넘어간다. 윤회하면 인도를 떠올릴 만큼 인도의 대표적인 세계관이긴 하지만, 고대의 다른 문명권에서도 윤회관은 등장한다. 즉 인간의 삶이 일회성이 아닌 반복성을 띈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세계관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생로병사’가 아니라 ‘태어남과 늙음’인 이유는 ‘태어남’이 ‘죽음’을 전제하고 있고, ‘늙음’이 ‘병듦’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즉 난다의 질문은 생로병사라고 하는 존재가 갖는 한계성에 대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한 문답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난다] 어떠한 사문이나 바라문들이라도 견해나 학식으로 청정을 주장하고 규범과 금계로 청정을 주장하며, 이와 같이 여러 가지 형태로 청정을 주장합니다. 존자시여, 그들은 그렇게 유행하는 동안 과연 태어남과 늙음을 뛰어넘는 것입니까?

[붓다] 난다여, 견해나 학식, 규범이나 금계로 청정을 말하는 그들은 결코 태어남과 늙음을 뛰어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합니다.

난다의 질문은 당시 인도 종교계나 사상계의 관점을 볼 수 있는 내용이다. 우선 ‘태어남과 늙음’을 ‘청정(suddhi)’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관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청정은 ‘견해(diṭṭhi)’ ‘학식(suta)’ ‘규범과 금계(sīlabbata)’를 통해 성취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견해나 학식이란 바라문적 전통 속에서 배우고 익힌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특정한 교리체계나 철학적 내용을 학습하여 자신의 견해를 세우는 것이다. 이것이 일반적인 방식이다. 규범과 금계 역시 마찬가지인데, 특정 종교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제안된 도덕적 규범을 지키거나 그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수용된 규범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준수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부처님은 이러한 태도를 통해서 성취된 청정을 통해서는 ‘태어남과 늙음’이란 근원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에 난다는 그럼 ‘신들과 인간의 세계에서 태어남과 늙음을 뛰어넘은 사람은 누구인지’를 여쭙게 된다. 

[붓다] 난다여, 나는 모든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태어남과 늙음에 갇혀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본 것이나 들은 것이나 인식한 것이나 규범과 금계나 모두 여의고, 다양한 모든 것을 떠나서, 갈애를 두루 알아 일체의 번뇌를 여의면, 그 사람들은 참으로 거센 흐름을 건넜다고 나는 말합니다. 

부처님의 답변은 예나 지금이나 놀라움을 안겨주기에 충분하고도 남는다. ‘본 것’이나 ‘들은 것’이나 ‘인식한 것’ ‘규범과 금계’ 등으로 주어진 것들은 특정한 교리적 체계나 철학적 주장에서 제시된 ‘사유의 체계’로 이는 우리를 특정한 세계관에 가두어 두는 것이 된다. 사과를 본 사람, 사과에 대해서 들은 사람, 사과를 인식한 사람들이 하는 말들은 특정한 측면에서는 옳다고 해도, 사과를 온전히 아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일체의 견해나 주장 등을 떠나서, 사과를 온전히 맛본 사람만이 사과를 온전히 알게 된다. 이러한 주의 주장, 그리고 자기 생각의 함정과 같은 사유의 사슬을 끊고 해방된 사람이 비로소 갈애와 같은 번뇌의 뿌리를 보게 되고, 번뇌로부터 자유롭게 된다. 이럴 때, 태어남과 늙음이란 존재의 한계성을 벗어나게 된다는 가르침이다. 

난다는 이러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자 자신을 가두고 있던 관념의 감옥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찾게 되었고, 환희하며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이필원 동국대 경주캠퍼스 교수 nikaya@naver.com

[1588호 / 2021년 6월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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