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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제66칙 서암불출(瑞巖不出)

깨침은 이미 깨친 존재임을 자각하는 것일 뿐

‘탄생왕자’는 본래 존귀함 비유로
깨침을 구가하는 납자의 진면목
중생과 부처가 차별 없다는 말은
깨침에 평등함을 보여주는 개념

승이 서암에게 물었다. 탄생왕자란 무엇입니까. 서암이 말했다. 깊은 궁궐에 있어서 불러도 나오지 않는다.

서암은 서암사언(瑞巖師彦)으로서 암두전활(巖頭全豁, 828~887)의 제자이다. 서암이 암두를 참문하고 본래상주(本來常住)의 도리를 깨치라는 의미인 본상리(本常理)라는 호를 받았다. 왕자오위(王子五位)는 석상경제(石霜慶諸, 807~888)가 동산오위설(洞山五位說)에 기초하여 독자적인 입장에서 비유의 명칭을 활용하여 제창한 오위설이다.

왕자는 불종성(佛種性)을 상징하는데, 그 출생과 소질과 근기로부터 각각 수행정진에 의하여 제위(帝位) 및 불위(佛位)에 나아가서 그 덕을 드러낼 수가 있다. 그 수행에 다섯 종류의 차이가 있는데 그것을 왕자오위라고 명칭한 것이다. 첫째, 탄생왕자(誕生王子)는 황후에게서 태어난 적자의 황태자를 가리킨다. 둘째, 조생왕자(朝生王子)는 서생(庶生)이나 첩복(妾腹)의 출생이다. 셋째, 말생왕자(末生王子)는 신하의 소생으로서 노력해서 고위관료로 진출한 것이다. 넷째, 화생왕자(化生王子)는 지방에 나아가서 황제의 교화를 봉행하는 지위이다. 다섯째, 내생왕자(內生王子)는 궁궐 안에서 출생하였지만 적출이 아닌 경우이다.

이 가운데 탄생왕자는 지존의 대보(大寶)로서 본래존귀한 것을 비유한다. 중생(衆生)과 심(心)과 부처[佛]도 또한 그와 마찬가지이다. 비록 모든 사람이 본래존귀를 각각 원만성취하고 있을지라도 무시이래로 진(眞)에 미혹하고 망(妄)에 집착하며 각(覺)을 등지고 진(塵)에 합치되어 있는 까닭에 미오(迷悟)와 수증(修證)에 대한 점차(漸次)의 계급으로써 그것을 비교하여 분류한 것이다.

승은 이 가운데 처음에 나오는 탄생왕자에 대한 것만 언급하여 질문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가운데는 이하 네 가지 왕자의 경우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탄생왕자는 타고날 때부터 천연적으로 미래 황제의 면모를 지니고 있는 까닭에 후천적인 공능을 통하여 성취된 것이 아니다. 불법으로 보면 본래성불의 의미로서 부처와 중생과 마음에 하등의 차이도 없는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이와 같은 탄생왕자의 위엄이야말로 깨침을 구가하는 납자의 진면목으로서 본색작가의 안목에 상응할 수가 있다. 이에 대한 승의 질문에 서암은 그와 같은 탄생왕자의 본래면목은 깊은 궁궐에 깃들어 있는 까닭에 웬만한 미혹과 번뇌의 작용으로는 조금도 흔들어놓지 못하는 까닭에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고 답변한다. 

그것은 달마로부터 연원되는 중국 조사선풍의 사상적인 바탕이 되어 있는 본래성불의 편만성과 평등성과 본래성을 비유로 보여준 것이다. 제아무리 본래성불을 자각하고 싶어도 애초부터 갖추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지 그렇지 못하는 경우에는 언감생심이다.

그런데 일체의 중생은 본래부터 불성을 구비하고 있는 존재라는 것이 불교 일반의 설이다. 따라서 부처의 마음과 중생의 마음은 이런 점에서 동일하여 조금의 차이도 없다.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탄생왕자의 모습에 다가가는 것이다. 따라서 이하에 등장하는 조생왕자‧말생왕자‧화생왕자‧내생왕자의 경우에도 중생이 자신의 본래면목을 자각하는 경우라면 언제라도 탄생과 조생 등의 왕자의 지위에 오른다. 그것이 선수행에서 제기하는 불법의 보편적인 속성이다. 

나아가서 선수행에서는 그것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본래부터 성취하고 있다고까지 말한다. 그것이 바로 굳이 수행을 할 필요가 없는 도불융수(道不用修)이다. 깨침[道]이란 깨치려는 조작적이고 분별적인 마음으로 하는 수행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까닭은 자기 자신이 이미 깨쳐 있는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는 것일 뿐이지 수행을 통해서 깨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알고 보면 이미 부처일 뿐인데 굳이 부처가 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이런 점에서 탄생왕자는 중생과 부처와 마음에 차별이 없다는 말은 신분은 물론이고 수행과 깨침에조차 평등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개념이기도 하다.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588호 / 2021년 6월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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