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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이발사의 푸념 

지난 초파일 오전 동네 이발소에서 머리를 잘랐다. 부처님오신날 정갈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곳은 여느 날과 달리 사람들이 많았다. 필자가 이발을 시작했을 때는, TV에서 조계사 초파일 행사를 중계하고 있었다. 이발하는 중에 갑자기 그 나이든 이발사가 푸념처럼 말했다.

“알아듣기 쉽게 하면 좋을텐데,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요.” “좀 알아들을 수 있게 하면 안 되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듣기 싫어서 하는 말이 아니고,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으니 답답해서 하는 말입니다.” “저게 어느 나라 말이예요.”

그때 TV에선 ‘반야심경’을 봉독하고 있었으며, 이어 종정스님의 형이상학적 법어로 이어졌다. 노이발사의 질문은 필자를 씁쓸하게 했다. 마치 내가 잘못해서 알아들을 수 없는 경문을 중계하고 있는 것처럼 다가왔다. 누구나 듣고 쉽게 이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매년 중계되는 초파일행사로 보다 많은 시민들과 소통할 수 있지 않을까?

불교가 인도에서 중국에 전래된지 2000년이 넘었다. 기원전 2년을 중국불교 전래의 초년으로 삼고 있는 것이 중국불교협회의 공식적인 견해이다. 오랜 시간 한족 문화에 동화된 불교, 특히 동북아시아의 불교문화는 한자를 공통의 소통 키워드로 삼고 있다. 그간의 역사적, 문화적 자산이 한자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한자를 무시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이미 한국민의 대다수는 한자에 익숙하지 않다는 점이다. 한자를 전혀 몰라도 한국사회에서 생활하는데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영어에 익숙한 젊은 세대는 불교와 만나는 일이 어렵게 느껴진다고 한다. 한자어를 중심으로 형성된 불교문화의 여파라 생각된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번역이 필요한 일이다. 제2의 번역, 제3의 번역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불교의식에 관한한, 한글화 작업은 다른 분야에 비해 더더욱 더딘 것으로 느껴진다. ‘석문의범’을 중심으로 시행되는 의식은 그것을 진행하는 주체자는 어떤지 모르지만, 행사에 참여해 듣는 참여자나 신도들에게는 불가해한 언어이다. 장시간 알아듣지도 못하는 의식에 동참하는 일은 많은 상당한 인내를 필요로 한다. 의식문의 내용이나 상징성이 고원한 종교문학의 정수를 나타내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은 아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한국불교의 현실은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고 있지만 그것에 대응하는 기민성이 떨어진다. 혹자는 전통이란 이름으로 고집할 수 있다. 그런 점은 전통문화의 보존과 현실성의 감안이란 점을 동시에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즉 전통문화로서의 의식은 보존과 연구를 지속할 필요가 있지만, 현실성을 고려하면 시대성과 신도들을 위해 한글화, 간소화 작업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20여년 전의 기억이지만, 중국사회과학원 불교연구실 주임이자 박사지도 교수였던 양증문(楊曾文) 선생님과 교보문고를 방문한 적이 있다. 교보문고를 둘러본 뒤에 양 교수님은 중국과 한국은 문화적 공통분모가 사라졌다고 하셨다. 역사학이나 철학, 종교학의 일부로 한자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교보문고를 차지하고 있는 서적의 90% 이상이 한글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기대(?)가 무너졌는지도 모르겠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다. 소통 없이 불교의 대중화는 불가능하다. 대중과 소통이 되지 않으면서 불교신도의 증가를 바라는 것은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때문에 대중과 소통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기실 불교의 한글화 작업을 강조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많은 선각자들이 지적해 왔다. 그럼에도 여전히 몇몇의 전문가 만이 알아 들을 수 있는 불교가 남아 있다. 그런 점에서 초파일 중계는 아쉬움이 아닐 수 없었다. 노이발사의 푸념이 가슴 아프게 다가온 이유이다.

차차석 동방문화대학원대 교수 svhaha@hanmail.net

[1590호 / 2021년 6월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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