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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전 비구, 사유재산 갖고 건축감독·무역에도 종사

  • 불서
  • 입력 2021.06.21 11:32
  • 수정 2021.06.24 16:04
  • 호수 1590
  • 댓글 0

‘근본설일체유부율’ 근거해 교단 내 비구 생활상 재구성
1~6세기 비문과 교차 비교하는 철저한 고증으로 뒷받침

대승불교 흥기시대 인도의 사원 생활
그레고리 쇼펜 저 / 오다니 노부치요 일역 / 임은정 한역
운주사 / 384쪽 / 2만3000원

그레고리 쇼펜 교수는 ‘대승불교 불탑 기원설'을 정면으로 반박했을 뿐 아니라 ‘근본설일체유부율’을 통해 당시 비구들의 생활상을 재조명했다.
그레고리 쇼펜 교수는 ‘대승불교 불탑 기원설'을 정면으로 반박했을 뿐 아니라 ‘근본설일체유부율’을 통해 당시 비구들의 생활상을 재조명했다.

“옛날의 현명한 사문이나 비구는 육체적으로 금욕을 지켰고, 명상에 전념했고, 수행에 힘썼고, 신성한 모범을 보여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자아내게 했다.”

1854년 알렉산더 커닝엄이 출간한 ‘빌사의 불탑’에 언급된 문장이다. 책은 당시 사람들에게 널리 읽혔으며 인도불교사의 영문 해설을 최초로 제공한 책으로 간주된다. 책에서 보여지는 커닝엄의 확신에 찬 어조는 인도불교와 승가의 모습에 대한 보편적 이미지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 책에 대해 1996년 당시 텍사스대학 교수였던 그레고리 쇼펜 교수는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이것이 완전히 지어낸 이야기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커닝엄은 자신이 무엇을 쓰고 있는지도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날선 비판은 비단 커닝엄만을 겨냥한 것은 아니다. 쇼펜은 1~6세기 인도 전역에서 조성된 비문과 ‘근본설일체유부율’이라는 부동의 텍스트를 세밀하게 분석하고 대조해 막연히 추론하던 당시 승가의 성격과 구조, 비구들의 생활상 등을 현실적으로 재현해냈다. 그 시도의 일부를 담은 ‘대승불교 흥기 시대 인도의 사원 생활’은 오늘날 한국의 불교계와 불자들이 갖고 있는 대승불교에 대한 보편적 이미지를 낱낱이 해체시킬 뿐 아니라 때로는 거침없이 타파해 버린다.

대승불교 흥기시대 인도의 사원 생활
대승불교 흥기시대 인도의 사원 생활

책은 1996년 11월과 1997년 10월 일본 오타니대학에서 각각 2주간에 걸쳐 진행된 특별세미나에서 쇼펜 교수가 진행한 강연의 강의록과 원고다. 그를 보좌했던 오다니 노부치요(오타니대학 교수로 재직)가 일본어로 출간했던 것을 동국대 인도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한 임은정씨가 우리말로 번역했다.

쇼펜 교수는 히라카와 아키라 교수의 ‘대승불교 불탑기원설’을 정면으로 반박한 학자로 익히 알려져 있다. 율장과 비문을 씨줄과 날줄처럼 교차해 분석하는 독창적 방법을 사용해, 대승은 부파교단 내에 세력이 약한 소수그룹으로 혼재돼 있었으며 4세기경까지 대승교단은 인도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제기한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비구는 사유재산을 소유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통념에 대한 통렬한 비판으로까지 이어진다. 

이에 오다니 교수는 “쇼펜 교수가 근본설일체유부율로 연달아 소개했던 율 제정에 얽힌 이야기는, 우리가 마음속에 막연히 그리고 있던 ‘고대 비구들은 3의1발, 여수낭, 좌구 이외에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청빈에 만족하며 정진하는 수행자였다’는 이미지까지 깨뜨렸다”고 놀라움을 감추지 않는다.

책은 붓다 재세시 율의 제정 과정부터 대승불교가 완전히 그 모습을 드러내기 이전, 부파 안에 혼재해 있던 시기까지 승가의 모습을, 특히 경제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춰 탐색해 가고 있다.

쇼펜 교수는 각각의 율과 남아있는 비문들에 대한 교차비교와 대조를 통해 당시 사원에서 비구는 사유재산을 소유했으며 사원 자체도 부동산과 고가의 장식품 등 대규모 자산을 소유하고 있었음을 구명했다. 또 명상이나 독송에만 몰두했을 것으로 여겨지던 비구들은 실상 사원 건축을 감독하거나 인부들의 임금 지급 등 직접적인 금전 관리에도 매우 비중있게 종사했음을 명확히했다. 쇼펜 교수는 근본설일체유부율에서 언급한 사유재산 관련 조항들을 통해 △비구의 손해보상과 부채상환 의무 △비구의 소지품에 대한 과세 △지명기부에 대한 비구의 개인 소유 △사유재산 표시를 위한 인장 제도 △비구의 유산 상속권 △재산의 규모로 판가름되는 사회적 명성 등을 세세하게 밝혀나갔다.

승가의 비구들에게 명상과 독송뿐 아니라 다양한 ‘업무’ 또한 의무였다는 점도 파격이다. 비구들은 사찰 관리, 불사 진행, 재가불자들 애경사 참석 등에 적극 임해야 했다. 이런 업무를 위해  안거 중 외출이 허락될 정도로 중요하게 수행해야 할 비구의 업무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했다. 이밖에 비구들은 개를 기르기도 했고 짐을 나르거나 무역을 하기도 했으며 그림을 그려 사원을 장식하기도 했다. 물론 이 가운데는 남의 눈에 띄지 않게 해야 하는 일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일반인들이 상상하지 못했을 정도로 많은 종류의 일에 비구들이 종사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하다.

쇼펜 교수는 이 책 전체의 3분의 1에 달하는 100쪽 이상의 분량을 할애해 ‘대지도론’과 간다라미술에 대한 분석, 쿠샨왕조 시대의 비문 등 방대하고 치밀한 자료를 분석해 이 모든 주장의 근거가 되는 근본설일체유부율이 “현존하는 다른 어떤 율보다도 1~5세기 인도 북부에 있던 부파의 사원제도를 잘 보여주고 있다”는 자신의 견해를 빈틈없이 뒷받침한다. 이 책의 제목 그대로인 ‘대승불교 흥기시대 인도의 사원 생활’이 우리의 상식과 막연한 이미지를 가차없이 타파하며 놀라움을 넘어 때론 경악스러운 충격을 주고 있음에도 쇼펜 교수의 주장에 쉽사리 반박할 수 없는 이유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590호 / 2021년 6월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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